◉ 류시화 관련 잡지 기사
류시화 시인과 관련된 잡지 기사 중 활동 초기 시점인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의 잡지 기사 중 일부를 게재합니다. 즉 최신 정보도 아니고 전체를 아우르는 것도 아니며, 오래된 잡지 기사 일부를 일종의 아카이브(보관)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 그림 출처 : 『지구별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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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05.30. : [심층취재] 인도 10번 다녀온 명상시인 류시화씨
한 나라를 별 이유없이 내리 열번을 갔다 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더구나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인도 관련 명상서적을 여러권 낸 바 있는 명상 시인 류시화(39)씨는 10년동안 인도를 열번이나 다녀왔다. 일년에 한번꼴로, 한번 나갔다 하면 꼬박 반년은 걸려야 돌아오는 그런 장기여행이었다.
그 10년의 여행기를 마침내 그가 책으로 엮었다.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열림원). 현지에서 체험한 숱한 이야기들중에서도 엉뚱하고 기발하고 감동적인 일화만 추려 34편을 담았다.
"내가 왜 그렇게 인도라는 나라에 충실했나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뭔가에 단단히 홀리지 않았다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한해의 절반을 인도에서 살다오면 그는 한달은 영락없이 병원신세를 져야했다. 그러고나면 다시 이듬해 인도로 떠나기전까지 그는 매일 날밤을 새우다시피하며 `미친듯'(그의 표현대로라면)글을 써댔다. 류씨는 알짜중의 알짜 인도얘기만 싣고 싶었다.
그래서 출판사로 원고를 넘기기까지 글을 고르고 다듬는데만 3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번에 책을 낸 것도 따지고 보면 순수하게 그의 의지만으로 된 일이 아니었다. 무슨 보물마냥 차곡차곡 쌓아만 둔 원고를 보다못한 아내가 이제 그만 책으로 엮으란 성화를 안했다면 그는 아직도 여행담들을 혼자만 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이번 책에는 보통 여행기들에서 접하게 되는 풍물소개 한줄이 없다. 그런데도 34편의 일화만으로 인도의 온모습을 온마음으로 느낄 수가 있는 건 무슨 연유일까. 온통 선문답같은 얘기들만으로 채워져 있을 뿐인데….
"한사람하고 꾸준히 만나다 보면 어느 결엔가 흉허물이 없어지게 마련이죠. 인도는 제게 그런 곳이었습니다"
`하늘호수…'의 감동은 평범한 인도인들의 생활을 통해 인생의 깊은 교훈과 통찰을 전하는 데 있다. 류씨가 만난 거리의 인도인들은 모두가 철학자였다. 낯선 이에게 서슴없이 구걸의 손을 내밀어도 그들은 진주보다 더 영롱한 영혼을 갖고 있었다. 그는 권말의 `인디아 어록'에다 인도인들의 순수한 영혼을 모아 담았다.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올드 델리의 어느 택시 운전기사) `행복의 양과 불행의 양은 같은 겁니다.신이 내게 주지 않은 것보다 준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지요'(캘커타의 어느 행상)
예측불허의 시대에 독자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읽어내는 작가. 언제부턴가 류씨에게는 이런 수식어가 붙어있다.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와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 시집출판계에서는 유례없는 판매실적을 기록하고 있고, 최근 폭발적 호응을 얻고 있는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도 그가 번역한 작품이다.
여태 그는 그 흔한 유럽이나 남미여행 한번 해보질 못했다. 인도편력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에 대한 반증이다.
"조만간 인도를 한차례 더 다녀오려고 해요. 그곳의 우기를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거든요"
(뉴스피플)
▣ 1997.07.10. : 어두운 시대의 가벼운 책읽기
베스트셀러는 그 시대 그 사회의 자화상이다. 베스트셀러가 꼭 좋은 책이라고 할 순 없지만(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어쨌든 한 사회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책들에는 작품성을 떠나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베스트셀러를 통해 바라본 97년 상반기의 한국사회, 한국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중략)
‘불황’과 ‘복고’로 얼룩진 사람들의 쓸쓸한 마음은 ‘따뜻한 이야기’를 원했다. 4월부터 <아버지>를 제치고 베스트셀러 1위로 올라온 <마음을 열어주는 101 가지 이야기>는 짤막한 글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 모음집이다. 이 책은 나름대로 세파에 지친 시민들의 위로자 구실을 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경향은 소설과 비소설 분야 양쪽 모두에서 나타나 생텍쥐페리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이해인의 <사랑할 땐 별이 되고>(샘터), 원태연의 <사랑해요 당신이 나를 생각하지 않는 시간에도…>, 포리스터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아 름드리), 이창훈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싶은 책>(오늘의 책) 등 ‘사랑’과 ‘따뜻함’을 갈구한 책들이 많이 읽혀졌다.
시 분야에서 유일하게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류시화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도 역시 이러한 기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 사랑하고 싶다”는 그의 고백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사랑에 굶주려 있고 외로움을 타고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집이 인기를 끌면서 91년 출간된 류시화의 예전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푸른숲)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고 이와 함께 그는 인도여행기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을 내놓고, <마음을… >의 공동역자로도 참여하는 등 올 상반기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하략)
이처럼 베스트셀러로 돌아본 한국사회의 오늘은 어두운 그늘이 더 많아 보인다. 하지만 지친 심신을 위로해주고, 또 한편으론 다시 비상을 꿈꾸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베스트셀러는 나름의 소임을 다한 건지도 모른다. 그 다음은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의 책임이다. (한겨레21 제165호 : 권태호 기자)
▣ 2001.02.09. : "복잡한 세상…단순한 게 좋다"
‘심플한 게 좋다. 복잡한 것은 가라.’ 사는 게,그리고 사회가 너무도 복잡해서일까. “골치 아프다”는 말들을 무시로 내뱉는 요즘 사람들이 “보다 단순하게, 보다 짧게”를 모토로 한 문화에 빨려든다.
‘단순함의 미학’에서 휴식을 얻기 위해 미술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부쩍 많아졌다. 이미 이런 흐름을 간파한 출판계는 지난해부터 짧은 글 속에 긴 사색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잠언집류의 책들이 출간 봇물을 이루고 있다.
“나는 심플하다. 나는 깨끗이 살려고 고집한다. 이 말은 내가 내 일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떳떳한 정신생활을 그림을 통해서 표현한다. 표현은 정신생활이고 정신의 발현이다. 표현이 쉽고도 어려운 것은 자기(自己)를 내어놓는 고백이 되기 때문이다.”
‘심플’이란 단어를 남달리 사랑해 살기도 심플하게 살았다는 장욱진은 그림도 심플하게 그렸다. 가족과 까치, 강아지, 소 등 일상의 동물들, 그리고 집과 나무, 해, 달 등 친숙한 사물들을 꾸미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솔직하게 표현해냈다. ‘묘하게 그리려는 ’욕심이 없다. 자연 그의 그림에는 탐욕 같은 물성(物性)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엔 ‘인간의 따사로운 마음’이 들어앉았다.
그런 장욱진에 대한 대중의 사랑이 유별나다. 2월 1일까지 장욱진의 단순하지만 순수한 세계를 보고자 찾은 관람객은 2만여명. 갤러리 현대는 당초 2월 15일까지 잡았던 ‘해와 달·나무와 장욱진’전을 보름 정도 연장, 2월말까지 관객을 맞기로 했다. 예상인원 3만명.
장욱진 그림의 가장 큰 특색은 ‘누구나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점. ‘단순하면 차가워져 불편하다’는 명제는 적어도 장욱진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단순해질수록 따뜻해지는 역설을, 우리는 그에게서 목격한다.
그는 ‘따스함’을 ‘우리의 색’을 통해서도 구현한다. 어디선가 많이 본, 한복에서 이미 낯익어 온 정감있는 색들이다. 튈 것같은 ‘노랑, 분홍’이 이상하게도 튀지 않는다. 게다가 ‘파랑’도 그의 그림에선 결코 차갑지 않다. 아마도 그림에 바른 물감을 자꾸 긁어내는 ‘비움’을 통해 ‘화학안료’에 ‘마음’을 입힌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장욱진이 우리를 이끌고 가는 곳은 ‘까맣게 쪽 뻗은 까만 아스팔트도로’가 아니라 ‘쉴 만한 의자가 띄엄띄엄 놓여있는 작은 산책길’이다.
젊은 동양화가 김덕기(31)도 이런 점에서 장욱진과 연결돼 있다. 갤러리 사비나에서 열리고 있는 ‘김덕기의 가족일기전’(12일까지)을 둘러보자. 그는 집이나 나무 등의 구체적인 세부를 과감하게 생략한다. 집도, 나무도,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한다. 마치 어두움이 세상의 미추(美醜)를 모두 감추어 주듯, 먹물을 듬뿍 묻힌 그의 붓은 세상의 비애를 ‘가족간의 사랑’으로 모두 덮어버린다. 항상 남의 말에 귀를 곧추세우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적어도 이 순간만은 모든 구속을 풀어도 되는 시간이다.
색상의 절제도 돋보인다.몇 작품을 제외하곤 묵색(墨色)만을 사용했다. 여기에 간혹 노란 달빛이 ‘감초’처럼 끼어들어 화면의 따뜻함을 강조한다. ‘어두운 밤이 까맣게 조각해 놓은 나무 위와 지붕 위로 은은한 달빛이 가볍게 떨어져 앉고, 창밖으로 흘러 나오는 노오란 등불이 은은한 달빛과 따뜻하게 조응하는 ‘고요한 달빛’에서 그런 기분은 절정에 이른다.
‘김덕기전’을 돌아본 이승진씨(29 서울 남가좌동)는 “먹과 노란색 만으로 ‘가족의 따스함’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며 “단순한 게 편안하다”는 점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연말 서울, 부산, 대구 등 5개 도시에서 열린 이철수 판화전 ‘이렇게 좋은날’에 대한 호응도 ‘단순함’에 대한 대중의 사랑을 입증해 준 자리였다. 인사동과 사간동 학고재화랑에서 열린 서울 전시의 경우 당초 계획보다 15일을 연장, 12월31일까지 진행됐다. 주말이면 400∼500명씩 몰려 여느 전시의 3∼4배 관객을 모은 이 전시는 3천세트를 찍은 엽서가 매진됐을 정도. 몇몇 인기작의 경우 30∼40장 찍은 판화 어디션이 모두 팔렸다고 화랑 관계자는 전했다.
15년째 충북 제천 천등산 박달재 밑에서 논밭 3천평을 갈아 먹고 사는 판화가 이철수의 작품은 몇 번의 절차탁마를 거쳐 고갱이만 남은 ‘선화(禪*)’에 가깝다. 여기에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짧은 글귀’가 반드시 끼어든다. 하나의 세트처럼 말이다.
“해가 뜬다 / 집집마다 하나씩 해가 뜬다 / 좋은 날이다 / 이렇게 좋은 날이다.” “가득할수록 텅 빈 것에 가깝다” “당신이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르겠지.” 한 두 줄의 글이 사색의 긴 골짜기로 이끌어 준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과로와 스트레스에 찌든 도시인들이 여유와 안식을 찾는다.
이철수 판화가 불러 일으키는 ‘따스함’은 농삿일, 계절의 변화,그리고 가족과 이웃에 대한 따스한 성찰의 시선에서 유래한다. 여기에 “세상살이가 힘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그래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상의 소재와 언어를 택해서 쉽게 표현하려고 다듬고 또 다듬는 작가의 마음씀에서 온다.
‘글은 짧아도 뜻은 길다.’
출판가는 미술계보다 한 템포가 빨랐다. 진작부터 여유와 관조의 미학을 담은 ‘짧고 심플한 글’을 내놓았다. 좀 이르긴 하지만 이런 흐름을 선도한 건 시인 류시화가 엮은 잠언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열림원. 1998)이었다. 이 책은 일찌감치 서울 시내 대형서점의 스테디 셀러로 자리잡았다.
시인 안도현이 이 책의 미덕을 “꾸밈 없는 리듬, 옆사람에게 조용히 읊조리는 듯한 어조, 난해하거나 모호하지 않은 언어들이 소리없이 흐르는 것 같다”고 얘기한 것처럼 시집에는 인디언, 수녀, 랍비, 걸인 등 세계 어디서나 마주치는 보통사람들의 내면의 목소리가 갈고 다듬어져 ‘잠언’이 되었다.
‘짧은 시와 잠언류 서적’이 붐을 이룬 것은 지난해부터.‘ 돌위에 새긴 생각’(열림원), 중국 한시를 모은 두 권의 한시집 ‘치자꽃 향기 코끝을 스치더니’‘이태백이 없으니 누구에게 술을 판다’(이상 민음사), 그리고 타이완 작가 지미(幾米)의 3권의 그림이야기책 ‘미소짓는 물고기’‘어떤 노래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청미래)와 최근에 나온 중국 산문집 ‘배는 그만두고 뗏목을 타고 가지’(학고재), 일본 중세 와카시인 요시다 겐코의 수필집 ‘도연초’(바다출판사)등이 눈에 띈다.
한양대 정민 교수(국문학과)가 상재한 ‘돌 위에 새긴 생각’은 명나라 말엽 장호(張灝)란 이가 명대의 유명한 전각가들이 옛 경전에서 좋은 글귀를 골라 새긴 인장을 모아 엮은 책. ‘지나간 일은 생각지 말자. 생각하면 자꾸만 슬퍼지느니(往事勿追思 思思多悲愴)’‘문 닫아거니 바로 거기가 깊은 산일세(閉門卽是深山)’‘배운 뒤에야 부족함을 안다(學然後知不足)’등 글귀를 새긴 전각과 풀이글이 한 면에 한 편씩 자리잡았다. 말미에 붙은 정 교수의 해설도 군더더기가 없다. 짧지만 긴 여운을 준다.
‘저녁이 아름다운 집(夕佳軒)’아래 “사람은 저녁이 아름다워야 한다. 젊은 날의 그 명성을 뒤로 하고 늙어 추한 그 모습은 보는 이를 민망하게 한다”고, ‘뜻같지 않은 일이 늘 열에 여덟 아홉이다(不如意事 十常八九)’란 제목 아래엔 “세상사 뜻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으랴. 어그러지기만 한다. 되는 일이 없다. 열에 한 두번 찾아올까말까 한 그 득의의 순간을 기다리며 나는 수굿이 견딘다. 독수리처럼.”이라고 덧붙였다.
‘어떤 노래’등 3권의 ‘어른을 위한 동화’를 만든 타이완 작가 지미는 ‘타이완판 이철수’다. 투명한 수채물감으로 그린 그림은 이철수의 선화보단 손질이 더 많이 갔지만 글의 짧기와 무게는 비등비등하다.
그의 책은 서점 진열대에선 어린이 그림책으로 오해 받기 십상이지만 속내는 전혀 다르다. 그림 하나에 한 두 줄의 짧은 글을 덧붙였는데 글과 그림의 ‘내공’이 만만치 않다. 백혈병을 앓아 죽음의 문턱을 수차례 다녀왔다는 저자의 삶의 이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어떤 노래’를 잠깐 엿보자.
“거미의 함정으로 굴러 떨어진 그 순간 / 나는 비로소 긴장이 풀리고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 내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 ‘축하해, 당신, 이제는 다른 거미 함정에 또 굴러떨어질까봐 /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지, 그렇잖어? 정말로 축하해.’”
‘어떤 노래-바람벽’에서 발가벗은 인간은 거미줄에 걸렸건만 되레 행복하게 미소짓고 있다. 진흙 튀길까 걱정하기보단 아예 진흙탕물을 첨벙대며 즐기겠다는 여유가 느껴진다.
나머지 두 권의 책 가운데는 심지어 글이 하나도 없는 면도 있다. 줄이고 줄여,할 말이 없는 경지까지 이른 모양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부쩍 ‘짧고 단순한’것에 열광하는 걸까. 물론 단순함을 예찬하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90년대 단순하고 절제된 미학에 기초한 미니멀리즘이 대유행했다. 그러나 이 때의 미니멀리즘은 대리석처럼 ‘차가운 얼굴’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단순함은 ‘질박하지만 두툼한 외투’를 껴입은 모습이다.
이에 대해 학고재화랑의 박미정 큐레이터는 “이철수 판화전의 경우 단순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녹여내 관객들에게 행복한 느낌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며 “전시장을 나서는 사람들의 표정까지 마냥 푸근했다”고 밝혔다.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마음의 안식을 얻었다는 얘기다. 글도 마찬가지다. “따뜻한 생각을 갖게 해서(최미진), 행간행간에 숨어있는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박효경), 그리고 마음이 정화돼서(김백설)좋다”는 독자들의 찬사가 출판사 게시판에 쏟아진다. 그렇다면 대답은 명확해 보인다. 구조조정이니 임금삭감이니 하는 삭풍 부는 추운 겨울날 누가 추운 곳으로 발걸음 하겠는가.당연 온기 있는 곳에 모이지. (뉴스피플 소현숙 기자)
▣ 2001.04.06. : [인도열풍] 나를 찾아 떠나는 신비의 '고행'
인도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인도마니아를 자처하는 사람도 많다. 문명에 찌든 젊은이를 인도가 부른다. 자신을 정화하듯 젊은이들은 인도로 달려간다.
60년대 미국, 80년대 일본에서 불었던 인도풍이 한국에 불어닥친 ‘유행’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막연한 관광이 아니라 명상센터를 방문하거나 수행자의 도시 강고트리로 가거나 힌두교의 건축을 보기 위해서 등 ‘목적’을 갖고 떠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는 ‘1년에 100만원이면 충분하다’는 싼 물가와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고,무엇이든 볼 수 있는 인도가 배낭여행 1순위로 꼽힌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인도가 제격이란 인식이 자리잡았다. ‘인도를 다녀오지 않고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도 하고 ‘젊다면, 깨어있다면 한 번 가야할 곳’으로 인도를 꼽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최근 인도관련 서적과 인도전통음식점은 물론 인도풍 액세서리 가게도 늘어가기만 한다. 내년에는 처음으로 인도 현대작가 초대전이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나라. 윤회를 믿으며 육신에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은 아이의 시체가 떠내려 오는 갠지스강(강가)에서 목욕을 하고, 옆에선 순례자들이 경배를 한다. 이 기이한 나라가 문화의 키워드로 젊은이들 사이에 자리잡았다.
지난해 인도로 간 한국인은 1만 5천 335명이었다. 이는 1999년에 비해 16%나 늘어난 사상 최고치이다. 최근 겨울마다 인도전문여행사들은 몸살을 앓는다. 여행객이 몰려 인도행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의 성화 때문이다. 인도여행 최적기인 겨울방학시즌이면 인도에는 ‘인도사람 말고 한국사람이 더 많다’고 할 정도이다.
왜 인도바람이 부는가?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한 일시적 유행으로 잠시 지나갈 돌풍인가? 인도에 대한 관심은 70년대 중반이후 불어닥친 라즈니쉬의 명상붐에 93년 인도에서 돌아온 현대무용가 홍신자씨가 펴낸 ‘자유를 위한 변명’과 97년 류시화씨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등 인도관련서적으로 불붙었다. 특히 류시화씨는 인도를 여행하며 체험한 엉뚱하고 감동적인 일화를 엮은 기행문으로 인도를 단숨에 ‘재미있는 나라’란 인식을 심어줬다. 책이 나온지 4년이 지난 지금도 교보문고 스테디셀러로 꾸준하게 팔리고 있는 이 책은 정작 현실이 아닌 ‘우화’라고 해야한다는 인도마니아들의 낮은 평가에 불구하고 일반사람들에게는 인도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준 책으로 꼽힌다.
배낭여행 붐이 일면서 여행안내서 붐이 한창 계속됐다. 국내 최초의 인도 여행 안내서 ‘우리는 지금 인도로 간다(정무진,민서출판사)’ 소설가 강석경씨의 ‘인도기행’을 위시해 ‘텅빈 인도(임현담,초당)’‘슬픈 인도(이지상,북하우스)’‘길 끝나는 곳에서 길을 묻는다(임헌갑,웅진닷컴)’‘10루피로 산 행복(이해선,바다출판사)’‘미소가 인도에 간 까닭은(박미소,자연사랑)’‘마음이 아픈 사람은 인도로 가라(강태기,답게)’‘달라이 라마 나의 티베트(게이런 로웰,시공사)’‘내 사랑 별이 되어오다(현몽,창해)’ 등 인도를 무대로 한 다양한 장르의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80년대 강렬한 현실비판의 글을 썼던 소설가 송기원씨(53)는 ‘자신을 방생하기 위해’ 인도로 떠났고 그후 인생도 소설도 달라졌다 한다. 99년 ‘안으로의 여행’에 이어 지난해 ‘또하나의 나’를 발표한 그는 소설화했지만 자신이 인도에서 받은 충격과 만난 사람들을 소설에 녹였다. “어린 시절부터 사생아라는 열등감에, 황폐한 내 삶에 대해 가졌던 그 많은 자책감은 인도가 모두 벗겨줬다. ‘나쁜 나’로부터 도망치려고 인도로 갔는데 정작 나쁜 나가 바로 나란 사실을 인정하고,자유로워졌다.” 그는 ‘인도에 가면 자신감을 얻는다’며 젊은 층의 인도행을 반겼다.
‘최소한 한 달’, 인도로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인도마니아들이 하는 충고다. 한 달정도는 봐야 인도를 조금 알 수 있고, 마음 공부도 최소한 한 달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10년전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또 무엇인가’는 질문에 빠져 헤맸다는 방사선과 의사 임현담씨(47)는 병원문을 닫아걸고 인도로 갔다. 그후 해마다 한 두 달은 반드시 인도와 히말라야에 간다. “고도 3,000∼6,000m의 산을 걸어서 가다가 먹다가 자다가 하고 돌아온다. 건조기에 가면 좀 낫지만 우기에 가게 되면 우림지대도 지나고, 산사태도 맞는가 하면 극단적인 어려움에 부딪히지만 조금만 서울에서 지내면 나자신을 닦기 위해, 정화하기 위해 인도로 간다.” 그는 인도에 대한 관심이 절대로 일시적인 유행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유행처럼 시작된 관심이라도 결국엔 물질이 아닌 자신의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잡은 셈이라는 것이다.
최근 대학생들사이에 불고 있는 인도풍 액세서리는 가장 쉽게 인도를 만나는 방법이다. 이대앞의 ‘인도나라’, 인사동의 ‘인도그리기’등과 홍대 부근의 ‘헤나’에서는 인도풍 액세서리와 향, 가방 등 소품을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 이마에 붙이는 ‘빈디’는 3천원이면 구입할 수 있고, 붙였다가 쉽게 뗄 수 있어 젊은 층에서는 거부감없이 즐긴다.
사리 등 인도전통의상도 판매하는 ‘헤나’에서는 손바닥과 손등,어깨와 다리, 발과 등에 인도식 문신 염색을 하는 ‘헤나’를 직접 가르치기도 한다. 미장원에서 흔히 색다른 멋을 위해 배워가고 있어 날로 늘어날 전망인데, 테크노 바에서 열리는 레이브(rave)파티에 참석할 때면 ‘튀기 위해’ 어깨와 등에 염색을 하는 여성도 있다. 여름에는 샌들에 드러나는 발이 심심하다며 발등에 염색을 하기도 한다. 자신도 인도마니아인 ‘헤나’의 김철영 사장은 “일본에서는 인도풍이 붐을 이루고 있다. 최근 일본여행객들이 가게를 찾아와 헤나를 하고 가기도 하고, 젊은 여성들 사이에는 신비한 멋내기로 통한다”고 말했다.
인도문화중 인도식 전통음식점을 뻬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인도나 회교국가의 주한대사관 직원들을 주고객으로 88년 문을 연 이태원 해밀턴 호텔의 ‘아쇼카’ 이후 최근에는 일반고객을 겨냥한 세련된 감각으로 퓨전화하는 업소들이 많다. 이태원 ‘강가’에 이어 압구정동과 강남역, 대학로 등에 지점을 둔 ‘델리’와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문을 연 ‘달’은 강한 향신료의 전통 인도음식도 한국인들의 새로운 별미로 자리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올해 초 문을 연 ‘달’은 인도인들이 즐겨먹는 ‘콩’이름을 땄는데 레스토랑 컨설팅전문가이자 식당 경영을 하며 배재대와 경기대 석사과정 외식산업의 강사로 나가는 신성순씨가 경영하고 있다. 그는 “인도음식은 프랑스와 중국요리에 이어 세계 3대 요리중 하나인데 정작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아 앞으로 가능성이 많다”고 말한다. 인도음식은 인도전통의 민간요법인 아윌베다(ayurveda)를 철저하게 지켜 식물성에 전통의학과 문화가 함께 버무려진 것이라고 한다. 인도음식은 손을 직접 사용하는 것이어서 ‘음식과의 커뮤니케이션’임을 강조하는 그는 상업성 때문에 파격적인 일은 벌이지 않았지만 머잖아 손으로 먹는 문화가 인도식당에선 낯설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달’의 내부에는 인도 카펫같은 특유의 인도냄새는 없다. 그러나 짙은 녹색은 식물성을,봄베이 핑크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도의 정신표현이란 점에서 보다 상징적이라고 소개했다.
인도철학자 이거룡씨(동국대 연구교수)는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갈수록 인도문화는 중심에 놓일 것이라고 진단한 뒤 정신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반가운 일이며, 이 기회에 인도문화의 키워드인 ‘느리고 다양함’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시간적으로는 느리고, 공간적으로 다양함을 가진 인도의 정신을 바로 건강한 문화로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히말라야에 가면 누구나 성자가 된다는 말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세계에 대한 관심이거든요.”
한편 새로운 인도문화를 접할 기회도 잦아지고 있다. 큐레이터 윤재갑씨(갤러리 아트사이드)는 내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인도 현대작가들의 초대전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그림을 그리는 중간에도 뉴욕화랑에서의 주문이 밀려 개인전을 열 수 없을 만큼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인도화가 수랜드란 나이르와 인도최고의 미술평론가 겸 교육자인 구라무하메드 샤이크 등 6사람의 그림을 보면 인도가 한국에 끼친 영향까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피플 허남주 기자)
▣ 2001년 5월 : 류시화는 혹시 가짜가 아닐까?
한 때, 시인이었던 류시화가 인도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은 이후, 그리고 명상과 수행을 하는 시인이라는 색다른 타이틀을 지니게 되면서그의 손은 미더스의 그것이 되어 대한민국 출판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경이로운 판매 기록을 남기는 류시화 현상을 두고한 문학평론가가 통렬한 비판을 보내왔다. (월간 GQ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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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는 나에게 우선 상상력의 시인 안재찬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면 <구월의 이틀>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멀리까지 손을 뻗어 나는 / 언덕 하나를 붙잡는다 언덕은 / 손 안에서 부서져 / 구름이 된다” 1980년이라는 숫자를 달고 있는 상징적 해에 한국일보를 통해 선을 보인 그의 시세계는 자아중심주의의 한 극점이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아를 통해 세계를 보겠다는 의지이자 표현이었다. 저 살벌한 80년대 내내 객관적 현실만이 세계의 전부라고 주장되던 분위기 속에서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 유일한 숨통이기도 하였다. 물론 그것을 두고 우리의 현실과는 무관한 ‘발명품’이라고 하는 비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꿈꾼 세계도 객관적 현실 못지않은 현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그 비난은 그다지 적절한 것이 되지 못한다. 문제는 그 발명품을 끝까지 밀고 나가 하나의 성채를 세울 수 있는가의 여부일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비난이 거세었기 때문일까? 어느 날인가부터 그의 모습은 지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저 젊은 날의 환상처럼 잠시 자신을 드러냈다가는 몇 번 눈길의 깜박임 속에 청춘이 지나가듯이 사라져버렸다. 물론 아주 사라진 것만은 아니다. 그는 류시화라는 이름으로 명상서적 계통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었다. 류시화가 그 안재찬이라는 사실은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지만, 어쨌거나 그는 객관적 현실이라 지칭되는 것과는 다른 세계를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세계를 알리는 그의 언어는 섬세했고, 그 섬세함은 거친 현실에 지친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래서인지 번역가로서는 이례적으로 그를 따르는 마니아 무리까지 얻게 되었다. 명상과 수행을 하는 시인 번역가! 그를 따라다니는 타이틀은 매력적인 것이다. 그러니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떠남을 보여주는 그의 글에 많은 대중이 매혹되는 것이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다.
그런데 그의 책을 그런대로 꾸준히 쫓아간 사람들에게 뭔가 석연치 않음이 감지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우선 수행자로서 그의 모습은 지나치게 행복하다. 현실적인 행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수행을 통해 운명처럼 주어질 뿐인 깨달음이 그의 생 속에서는 일상적인 반찬이 되어버렸다. 걷는 걸음마다 발끝에 차이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래서 차라리 그 깨달음의 진실성에 대한 의심까지 들 정도이다. 게다가 그의 깨달음 대로라면 명상과 침묵 속에 있어야 할 터인데, 그는 여전히 다변(多辯)과 미문(美文) 속에 있다. 마치 사이비 종교의 설교자나 얼치기 도사처럼 말이다. 그 부조화가 그에 대한 신뢰를 거두어들이도록 만든다. 물론 수행자로서의 그의 행복이 모두 실제적인 진실일 수 있으며, 다변과 미문 또한 그 드문 행운에 겨워 자신도 모르게 내지르는 노래일 가능성도 있다. 세속의 인간들에게 부조화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니까.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 이미지를 통해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 괴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부조화와 괴리라는 말만큼이나 류시화는 혹시 가짜가 아닐까?
내가 애초에 쓰기로 했던 것은 그런 류시화를 비판적으로 읽는 글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을 두고 산발적으로 읽었던 그의 글들을 한꺼번에 모아 읽으며 나는 그 일이 그다지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의 어떤 글은 어느 순간 짠하게 내 가슴을 엉클어놓기도 했고, 때로는 나에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고장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을 감염시키기도 하였다. 적어도 대중들이 왜 그의 글에 무장해제 당하는가 하는 이유만큼은 알게 된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글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이 개운한 것만은 아니다. 위에서 이미 암시했듯이 오히려 불쾌하기도 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태도일 것이다. 정직이 반드시 최선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믿는 편이지만, 어쨌거나 류시화가 그만큼 영리하거나 영악한 글쟁이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닌 언어를 자신의 것으로 믿게 만드는 탁월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의 글은 ‘조립품’이다. 이 말에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우리들 가운데 그 누구도 ‘영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영향을 자신의 몫으로 살아냈는가의 여부이다. 적어도 나로서는 류시화의 글을 쫓아가면서 그 자신의 생의 무게를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그의 글은 고통을 말하는 순간에도 그 고통에 온통 몰입하지 않고 독자가 자신의 글에 빠져드는가를 지켜보는 눈을 달고 있다. 나는 그 눈이 불쾌했다. 차라리 그 순간에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어야 할 그 눈 말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두고 이런저런 분석과 해석을 다는 일은 그만두기로 하였다. 아주 전문적인 독자가 아닌 바에야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며, 도처에서 번득이는 그 영리한 눈의 존재를 검시관의 카메라처럼 찍는 일은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그가 조립품으로서의 언어에 숨어 그렇게 흘끔거리는 근원적 이유가 궁금했다. 무엇 때문에 그는 자신의 안을 향해 눈을 돌리지 못하는가? 명상과 수행을 말하는 그가 말이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나는 잠시 에둘러 갈 생각이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루비콘 강을 건넌 근대는 만민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꽃을 피워나가고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적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적의 이름은 바로 ‘시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역설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자연과학의 만개와 산업혁명을 근간으로 한 근대가 그것의 상징적 산물인 시계의 대량 생산과 발 맞추어, 시계 속에 살고 있는 바로 그 시간과 악전고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즉 보이는 시계 속에다 시간의 얼굴을 그려놓은 뒤부터 더욱 시간에 쫓기며, 시간 앞에서의 패배라는 강박의 그림자를 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간은 어떻게 우리의 적으로 형질이 변경된 것일까? 그 물음에 답하려면 근대 이전으로 존재 이월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
근대 이전의 구체제는 신분에 바탕을 둔 불평등 억압사회이다. 그렇지만 그 억압사회를 떠받치고 있던 분명한 믿음이 있었으니, 근대의 발생지인 서양으로만 보자면 기독교 신앙이다. 그 사제 권력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세속 권력으로서의 봉건적 전제 군주를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다. 페스트가 창궐하고, 일상적 전투와 질병에 시달리던 중세 봉건제도 속의 사람들은 죽음을 늘 곁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당시의 문헌을 뒤지면, 근대인에게는 두려운 종말일 뿐인 죽음을 그들이 마찬가지로 두려워했다는 기록은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중세인의 믿음 속에는 시간을 주재하는 더 큰 존재인 신의 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며, 다만 신의 질서 속으로 들어가는 것뿐이다. 그러한 현상은 사제 권력이 약화된 뒤에도 세속 권력의 성채 안에서 여전히 지속된다. 한 개인의 유한하고도 초라한 삶을 뛰어넘는 특권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으로 서두를 찢은 근대란 바로 그런 특권적 존재를 해체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제 ‘나’를 넘어서는 그 어떤 우월한 존재도 없다. 그 세계의 처음을 장식한 것이 바로 시간이다. 그 이전까지 신의 영역이었던, 그래서 인간이 직접 나서서 드잡이할 이유가 없었던 시간이 이제는 인간 자신의 상대가 되어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시간에 멈춤이란 없다는 사실이다. 만일 어느 한쪽이 멈추어야 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인간의 몫인 것이다. 게다가 인간은 주체의 종말 이후의 세계를 스스로 용도 폐기해 버렸다. 합리적 이성의 이름 아래 검증이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를 삶에서 추방해버린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 실증의 세계에서 천당과 지옥이란 그다지 약발이 뛰어나지 않은 협박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시간이다. 적어도 시간만큼은 주체의 종말 이후에도 뭔가가 지속될 것임을 부지런히, 그것도 정확하게 반복하며 지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간의 조바심과 절망이 탄생한다. 지금의 이 생 이후에 무엇이 있을지 근대인은 알지 못하며,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믿지 못한다. 그에 따라 세계는 앎의 대상인 안과 그렇지 않은 바깥으로 명백히 나뉘어졌다.
이제 바깥의 세계는 돌아갈 품이라기보다는 귀찮거나 차라리 두려운 어둠인 것이다. 그 어둠의 역할이란 그것으로 인해 지금의 생이 유한한 빛에 불과하다는 것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든 것뿐이다. 조바심은 거기에서 나온다. “나는 끝날 것이다.” 그 이후가 어떻게 될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것은 동시에 절망적인 것이다. 아무리 무시하려 애써도 ‘그 이후’는 여전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세 고딕사원의 종탑이 그 사실을 일깨우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인간은 이미 시간 앞에서 패배한 것이고, 그 순간 세계의 안과 밖은 단절된다. 안과 밖을 연결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을 정도로 근대인은 그 단절에 진저리를 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단절의 근대는 그것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을 낳았다. 종말론자들이 그들이며, 사이비 도사들이 또한 그들이다. 실증적 과학이 ‘안’이라고 말하는 이 객관적 현실과는 다른 보이지 않는 ‘밖’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이용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계속해서 ‘바깥’의 매혹을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여전히 이 ‘안’의 단맛을 모으고. 그것이 어쩌면 우리 근대인들의 공허한 정신적 상황일 것이다.
물론 나는 검증 불가능한 세계를 거부하는 객관적 실증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존재와 삶의 보이지 않는 신비가 우리의 이 안쪽 세계에 연결되어 있음을 굳게 믿는 편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위해 헌신하는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노력에 기꺼이 머리를 숙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권태의 일상과 미지의 신비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결코 나뉘어져 있지 않다. 다시 보들레르의 예를 들자면, 세계는 무수한 상징들이 흩어져 있는 하나의 사원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소통의 길을 찾는 일이다. 그 길을 찾기 위해 불가의 고승과, 노·장의 선인들, 서양의 신비주의 사상가들이 오랜 역사를 통해 고통스런 방황을 거듭해오지 않았는가. 일상의 삶 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이나, 평이한 곳에서 수행이 시작된다는 그들의 말은 그 고통스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바깥’세계 장사치들의 안이한 깨달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바깥은 없다. 이 안이 곧 바깥이다. 빛과 어둠은 하나이며, 이 세계는 그것의 혼효(混淆)이다.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나는 위에서 류시화의 세계를 조립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통스런 수행의 몸짓으로 자신의 언어에 도달하기 이전에 이미 깨달음을 지식으로 습득한 사람이다. 그의 깨달음은 그래서 미문으로 잘 포장된 금언에 가깝다.
마치 서양의 구체제와 같은 신분제 사회인 인도에서 묵묵히 주어진 생을 받아들이는 무수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 자체로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나, 적어도 거기서 깨달음을 운위하는 류시화의 금언은 클리쉐cliche여서 살아 움직이는 에너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근대의 단절이라는 질곡을 ‘8천 4백만 번의 윤회’로 가리며 훌쩍 바깥으로 걸어나가는 그에게서 안과 밖의 경계와 소통에 대한 고뇌는 보이지 않는다. 남는 것은 조립공으로서의 그의 뛰어난 말솜씨뿐이다. 물론 그것도 재주임에는 분명하나 적어도 그것을 진정한 깨달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좀 심하게 말하자면, 욕망을 끊으라는 자신의 주장의 탁월함을 알리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 다니는 욕망 덩어리라고도 볼 수가 있다. 어쩌면 류시화는 그것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독자에게로 향하는 그의 눈을 감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를 ‘응시하는’ 진정한 깨달음의 눈 앞에서 그의 ‘깨달은 체’는 불안한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바깥은 없다. 이 안이 곧 바깥인 것이다. 나는 그가 현자인 양 날아오르려 하지 말고, 날개가 돋는 그 순간에도 이 땅 위에 눕는 겸손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이 대지는 우리들 언어의 영원한 집, 연금술사로서의 시인 안재찬은 귀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공중에서 회전하였다 / 날개 하나가 천천히 돋아나 / 불붙는 구름 그 끝없는 들판 위에 / 나를 눕힌다”
(월간 GQ : 글/ 박철화 문학평론가)
※ 참고 : GQ는 1957년 미국에서 <Apparel Arts/Gentlemen's Quarterly>라는 제호로 창간된 이후 현재 여러 나라에서 발행되고 있는 잡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