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시화 관련 신문 기사
류시화 시인과 관련된 신문 기사 중 활동 초기 시점인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의 신문 기사 중 일부를 게재합니다. 즉 최신 정보도 아니고 전체를 아우르는 것도 아니며, 오래된 신문 기사 일부를 일종의 아카이브(보관)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 그림 출처 :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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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11.11. :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류시화 (베스트셀러 뒤집기)
대중매체가 만든 허상인가/명상의 깊이를 가진 명작인가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 시의 베스트셀러 경제학은 독특하다. 시 독서 인구가 많은 것도 그렇고, 베스트셀러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 역시 특이하다. 감수성 예민한 10대를 감동시킬 만한 감상적 내용이나 20대 직장 여성의 핸드백 속에 들어갈 만한 앙증맞은 장정을 갖추었다면 적어도 실패는 면하게 돼 있는 게 우리 시 출판계의 현실이다.
1991년 낸 첫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40만부나 판매한 베스트셀러 시인 류시화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 또 홈런을 날렸다. 초판 6만부가 보름 만에 다 나가 출판사는 재판인쇄에 들어갔다.
책을 펴낸 열림원의 설명.
『류시화의 시집은 소녀 취향의 독자들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10만∼20만으로 추정되는 명상서적 독자층이 움직여 만든 베스트셀러다. 쉽게 쓴 작품이긴 하지만 일간지를 통해 등단한 시인의 작품인 만큼 깊이를 가지고 있다. 운율이 다듬어져 보는 시가 아니라 읽는 시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더욱 편안한 마음을 갖는다』
실제로 「외눈박이…」는 요즘 시에서는 사라진 미덕이 돼버린 내재율을 갖추고 있는데다 소재나 표현마저 매우 평이해 읽는 시로는 제격이다.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그 눈물이 있어/ 이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소금)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마리가 함께 붙어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외눈박이…)
하지만 세상이 별과 구름과 들풀같은 아름답고 애상적인 것들로만 이뤄져 있지 않다는 걸 깨달은 대다수의 생활인들에게 류시화의 시는 그야말로 음풍농월격이다. 시인은 사물의 미학적 가치를 아름답게 풀어내고는 있지만 정작 그것들을 가능케하는 다른 많은 것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평론가 이문재씨는 『시를 감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자유이자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요즘 류씨의 시는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더욱 성숙해졌다고 평했다. 시인 자신은 「휴식같은 책」이라고 자신의 시집을 이야기한다.
FM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낭송되는 시, TV로 광고하는 시집.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인기 시집인가, 명상의 깊이를 가진 명작인가.
「외눈박이…」에 대한 평가는 좀 더 두고볼 일이다. (한국일보 박은주 기자)
▣ 1997.11.03. : 류시화 열풍 어디서 불어오나/입에 감기는 운율·간결한 문장
독특한 외모·행적 호기심 자극/출판땐 사소한 것까지 꼼꼼히/서점가 썰렁해도 “잘나가요”
작가 류시화씨(40)는 제도권 문단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문학단체에 적을 두지도, 문학행사에 얼굴을 내미는 적도 없다. 매체와 인터뷰도 하지 않으며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법도 없다. 그러나 그는 지난 1년동안 가장 잘나간 작가다.
산문집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은 나온지 1년만인 10월말 현재 22만부가 팔렸으며 5개월전에 낸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열림원)도 16만부의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에 그가 번역해서 펴낸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전3. 이레 간)도 1년만에 1백만부를 돌파했고 올 4월부터 10월까지 서점 집계 종합 1위 자리를 지켰다.
91년에 펴낸 첫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푸른숲)가 6년동안 40만부나 팔린 것까지 포함하면 그는 분명 우리 시대의 스타 작가임에 분명하다. 류시화 열풍엔 어떤 이유가 숨어있는 것일까.
우선 그의 문장은 간결하고 단순 명료해 독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정효구씨의 분석. 『인간이 역사적 존재이기 전에 자연적 존재이자 우주적 존재라는 점을 생각할 때 그는 역사 이전의 세계의 합일감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자연스럽게 낭송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열림원 정은숙 주간은 『저작권협회의 집계는 류씨의 시편들이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낭송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티베트나 인도 등에서 장거리 여행중에도 시상이 떠오르면 입으로 외우고 중얼거려 운율이 밴 문장을 만드는 등 이미 입으로 순화된 시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입에서 이미 여러차례 읽혀진 시들이기 때문으로 라디오방송국의 DJ들도 가장 선호하는 것이다』
류씨는 80년대초 안재찬이란 이름으로 박덕규, 하재봉 등과 동인지 「시운동」을 구성했으나 83년 이후 작품을 중단하고 인도를 10여 차례 다녀오는 등 명상활동에 전념하다 91년에 와서야 「그대가…」를 발표한다.
치렁치렁한 머리칼에 찢어진 청바지, 남루한 옷차림도 작가에 대한 신비감을 배가시킨다. 지난 7월 6일 교보문고에서 열린 저자 사인회나 8월2일 열렸던 영풍문고 주최 사인회에도 그는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풀어 헤친채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독자들의 사인 요청에 응했다. 이처럼 그의 또다른 매력은 신비감.그는 지금도 은둔자적 삶을 고집한다.
여기에 끝나지 않고 그는 책이 나올 때마다 표지나 본문의 배치까지 일일이 신경을 써 출판사측에 의견을 제시한다. 독자에게 책이 넘어가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는 프로 기질이 최근 출판가를 얼어붙게한 불황을 녹이고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위상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민일보 정철훈)
▣ 1997.12.29. : 류시화 시인이 만난 '백석 연인' 김자야씨
류시화 시인이 만난 ‘백석 연인’ 김자야씨 (송년 문학대담)
“백석은 30년대 풍속 그려낸 애국시인” /
36년 함흥서 기생생활… 백석과 운명적 만남/
잡지 ‘삼천리’에 수필기고 ‘문학기생’으로 유명 /
류시화 시인 백 시인,김씨 만난뒤 깊은 사랑에 빠져 1년반 동안 시 안써/
김자야씨·김영한 할머니“시에는 충신의 혼 있어야”
1천억대 대원각 사회 헌납 ‘화제’
□ 백석 - 본명 백기행, 재북시인. 첫시집 ‘사슴’으로 등단. 해방 뒤 김일성대 교수. 60년 이후 행적 묘연
「재북시인」이자 탁월한 서정 시인이라는 이유로 남북 양쪽에서 버림받았던 백석(1912∼?). 그에게 일생일대의 사랑이 있었다. 김자야(81). 1천억원대의 요정 대원각을 길상사에,2백억원대 빌딩을 과학계에,2억원을 백석문학상에 각각 기증, 시정의 화제를 한몸에 받았던 김영한씨가 바로 그 「자야」다. 자야는 백석이 이태백의 시 「자야오가」를 보고 그에게 지어준 아호. 지난 24일 오후 2시 서울 동부이촌동에 있는 그의 자택으로 류시화 시인이 찾아갔다. 류시인은 길상사 주지 청학스님과 막역한 사이.
당뇨·동맥경화·심장병·치매 등으로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긴 김씨는 백석의 시와 삶, 극적인 사랑이야기를 2시간에 걸쳐 혼신을 다해 들려주었다.
『종교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다는데 난 영혼을 안믿어요. 꿈에 그 사람 늙은 모습은 안 나오고 60년전 인생이 나와요. 38선이 터지면 기어서라도 가서 산소를 찾을 거예요』
그녀는 아직도 절절한 순애보의 한 자락을 내비쳤다. 재산을 사회에 헌납한 이유를 『삼촌도 주고 사촌도 줄 수 있었지만 난 백시인에게 완전한 사랑을 받았고 나도 백시인을 완전히 사랑했으니 그러면 됐지』라고 설명했다. 『50년만에 담배를 끊었는데 니코틴보다 그리운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김여사께서는 백석시인에 대해 증언해 줄 유일한 증인입니다. 시인의 육필원고나 편지, 사진이 있다면 다 문학사의 귀중한 자료가 될텐데요.
『백석을 안다면 내가 그이 부모 다음일 거야. 그의 「하트(heart)」를 아니까. 그런데 다 없어졌어요. 6·25때 내가 중앙대 다니면서 근처에서 하숙을 했는데 삼청동 집에 다녀오는 사이에 한강다리가 끊어지면서 하숙집이 박살나 버렸어요』
그녀는 김동환이 운영하던 잡지 「삼천리」에 수필을 발표한 「명월관 문학기생」. 당시 여학교(안동고녀) 출신답게 세계문학전집은「기본으로」 읽었고 53년엔 중대 영문과를 졸업한 엘리트다.
『시는 충신의 혼이 있어야 해요. 한용운의 시에는 있는데 대부분 막걸리에 물탄 거같이 밍밍해. 난 백석을 당시 풍속도를 그려낸 애국자로 봐요. 어려운 시절에 영문학을 버리고 조선문학을 하고, 평안도 토속언어를 남긴 게 충신의 혼이에요』
시인과 자야가 처음 만난 때는 1936년. 금광을 하다 파산한 친척 때문에 기생이 된 자야는 함흥의 함흥관으로 간다. 함흥 영생고보 교사이던 백석이 그 자리에 있었다. 둘은 「나도 저도 모르게 정신이 연결돼 사랑에 빠지고」 백석이 39년 섣달 만주로 떠날 때까지 서울 청진동에서 산다.
시인은 첫시집 「사슴」으로 조선문단 최고로 평가받았습니다. 서울에 사랑하는 여인과 직장이 있었구요. 그런 사람이 왜 만주로 갔을까요.
『내 탓입니다. 미스터 백은 자식도 낳고 결혼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총각이 기생과 결혼하면 남자 집안이 망하던 세월이었지요. 그래서 나는 「당신 첩의 소실이나 될래요」 했지요. 거기서 실망한거야. 「사랑을 버려도 괜찮아? 말 다한 사람이군!」하면서 떠났어요』
백석은 부모의 강요로 세번 결혼한다. 그는 여인들을 설득해 되돌려보낸다. 김할머니는 『미스터 백이 그 여자들과 잠자리를 하지도, 호적에 올려놓지도 않았던 것같다』고 짐작한다.
왜 시인을 따라 만주로 가지 않았습니까.
『영 헤어질줄 알았다면 따라갔겠지. 잠깐인줄 알았어요. 전에도 한 열흘 집에 안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속으로 「너 함흥에서 결혼식올렸구나」 생각했었지. 또하나 급한 일은 동생이 일본에서 성악공부를 하는데 1년에 200∼300원이 들었어요. 그 뒷바라지도 해야했구요. 동생은 서울 부민관에서 콘서트도 했어요』
백석은 40년 「테스」를 번역해 서울로 왔으나 연인을 만나지 못하고 다시 만주로 돌아가 비참하게 산다. 해방 후 조만식선생을 돕다가 김일성대 교수를 역임한다. 한국전쟁에서 국군이 평안도를 수복하자 주민들의 추대로 정주 군수가 된다. 60년대 이후의 행적은 알려진 게 드물다.
시인은 김소월, 타고르, 일본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석천탁목)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이시카와를 존경해서 본명이 백기행인데 필명에 석자를 넣은 것 같아. 팔베개를 하고 그 사람 시를 많이 읽어줬어요. 하지만 백시인은 창씨개명을 거부해 만주의 한 회사에서 「화이어(해고)」당하고, 말이 없는 사람인데도 일본인이 한국말 없앤다는 얘기를 들으면 성을 발칵 냈어요』
류시인이 『백석의 일본 도쿄 아오야마(청산)학원 유학시절 주소가 길상사 1875번지』라고 일러주자 김씨는 『이게 무슨 인연인가』라며 놀라워했다. 길상사 청학스님도 『길상사는 중국에 있는 절 이름을 따서 법정스님이 프랑스에 세운 절이었다』고 말했다. 류씨는 『백석시인이 김할머니를 만난후 약 1년반 동안 시를 거의 쓰지 않았다. 그들이 사랑에 얼마나 탐닉했는지, 만주로 떠나는 백석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지를 느꼈다』고 대담 소감을 털어놓았다. 한편 김씨는 「요정정치의 산실 대원각의 주인」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길상사측은 『27년간 대원각을 임대해주었을 뿐 운영과는 전혀 무관하다』며 세간의 오해가 바로잡히기를 바랐다. (정리 : 경향신문 김중식 기자)
▣ 1999.05.14. : 자연의 따뜻함'그린 편역시집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
'자연의 따뜻함'그린 편역시집
현재 한국출판계의 미스테리가 번역가 겸 저술가 류시화다. 현재도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4, 5개 올라 있다. 벌써 1년 넘게 계속된 현상이다. 근년에 그가 펴낸 베스트셀러를 훑어보면 번역서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편역시집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열림원), 법정스님의 법문을 류씨가 풀어 쓴 산문집 ‘산에는 꽃이 피네’등 모두 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이다. 가히 ‘류시화 현상’이다.
저자의 책이 한꺼번에 이렇게 장기간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사태’는 한국출판 초유의 일이다. 저자 스스로도 자신의 책이 “왜 그렇게 팔리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출판하면 일단 베스트셀러가 되는 류씨의 책은, 그의 목록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우선 시인으로 출발한 그의 글쓰기 행적과 83년부터 시작한 명상서적 번역 작업이 지금에 이르러, 그를 대중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는 필자 겸 편집자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류씨가 지금까지 번역한 책은 70권이 넘는다. 위의 목록도 한 권만이 류씨의 자작 시집이고 나머지는 모두 류씨가 편역한 것이거나, 번역한 것, 풀어 쓴 것이다.편저자란 독특한 이름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류씨의 출판행위는 명상서적들이 가지고 있는 비의를 밝히는 잠언의 세계가 시인 안재찬이었던 류시화의 시적 상상력과 화학적 결합을 일으켜 류시화라는 상품명으로 출판시장에 다가온다.
실제로 같은 책도 류씨가 번역한 책이면 훨씬 대중적인 소구력을 가진다. 대표적인 경우가 중국 선종사를 소설처럼 드라마틱하게 풀어 쓴 오경능(吳經能)의 ‘선의 황금시대’(경서원·류시화 번역)다. 이 책은 여러가지 판본이 나왔으나 류씨 번역본이 가장 인기가 높다. 편저자로서의 그의 작업은 직접 쓰지만 않았을 뿐이지 일관된 흐름을 이룬다. 마치 편자가 직접 쓴 것처럼 작품은 골라내는 행위만으로도 새로 창작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쯤 되면 류씨에게서 골라내는 일과 쓰는 일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스스로도 자신의 작업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굳이 말하자면 ‘책읽는 사람’이라고 붙일 수는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제 시는 쓰지 않고 있고, 1년에 1백권이 넘는 명상서적 원서를 읽고 서너권 번역하고 있으니 번역자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명상시 한 편 발표하지 않았으니 명상시인도 아닙니다.” 최근 나온 신간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나무심는 사람)도 류씨의 편역 시집이다. 자연에 대한 잠언시들을 모았다. 약 3백권에 이르는 외서 중에서 77편을 가려뽑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 중 단 한권도 시집에서 뽑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연에 대한 사랑을 그린 다양한 책 속에 묻혀있던 좋은 문구들을 찾아냈다. 찾아내서 류씨의 문장으로 옮기니 ‘참한 시’로 살아났다. 자연에 대한 따뜻한 눈길을 느낄 수 있는 ‘착한 시집’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류씨의 편저작 방식을 비판적으로 보기도 한다. 창작의 고투를 지불하지 않은 성과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또 류씨가 보여주는 명상의 세계가 비판정신의 실종을 불러일으키는 최면역할을 한다는 지적도 있다.[이하생략] (문화일보 배문성 기자)
▣ 2001.02.10. : 출판계 '미다스의 손' 류시화
'문단의 찬밥, 출판계의 미다스 손'인 류시화씨(44)의 첫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푸른숲)가 출간 10년만에 100쇄를 돌파했다. 그 10년은 '류시화 신드롬 10년'이었고 밀리언셀러에 육박하는 그 시집의 100쇄 출간은 출판계 최대 인기작가의 입지를 확인시켜주는 것이어서 새삼 주목을 요한다.
문단에서 류씨는 "시인 안재찬론이 있는 반면 시인 류시화론은 없다"(이승하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평을 들을 만큼 '축출된 시인'이다. 안재찬은 1980년대 초 박덕규.이문재.하재봉씨 등으로 구성된 동인 '시운동'의 멤버로 활동하던 시절에 쓰던 류시화씨의 본명이다.
안재찬은 사회적.역사적 상상력이 지배하던 80년대에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수정하지 않아 문단으로부터 '외계인'(문학평론가 고 채광석 등)이라는 등의 치명적인 십자포화를 맞았다. 당시 안재찬은 "시인은 전쟁이 나도 다락방에서 사랑의 시를 쓸 수 있어야 한다"는 독한 고별사를 남기고 약 10년간의 은둔과 방랑에 들어갔다. 그 고별사는 '귀거래사'라기보다 훗날을 기약하는 '출사표'였다.
그는 첫 시집 '그대가…'를 내면서 본명을 버리고 91년 류시화로 부활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베스트셀러 시장에서 그의 첫 시집은 10년간의 류시화 신드롬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류시화는 97년 두번째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열림원)을 내고 약 80만부를 팔았다.
그에게는 수십만 독자들이 '아군'이었을 뿐 문단의 반응은 여전했다. 류시화론은 없었고 "저급함도 역겨움도 모르는 외눈박이 독자들에게나 매혹적인 시집이 될 것"('현대문학' 97년 8월호 '죽비소리')이라는 등 침묵이나 외면보다 가슴 저미는 촌평으로 대신했다.
하지만 류씨는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 제조기로 명성이 드높다. 지난 10년간 그가 기획.번역.저술한 책은 통틀어 1천만부쯤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권당 1,000원씩의 인세를 받았다면 1백억원을 벌어들인 '개인 벤처기업'이다. "류시화씨와 같은 탁월한 기획자가 몇명만 더 있어도 독서시장의 불황은 없을 것"(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이라는 말마따나 그가 손을 댄 책은 대부분 서울의 종이값을 올렸다(표 참조).
그가 기획.번역한 50∼60종의 책 가운데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이레)와 '성자가 된 청소부'(정신세계사)는 밀리언셀러이고 그가 기획한 법정.원성스님 등의 책은 슈퍼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가 쓴 인도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열림원)도 판매부수 50만부에 육박하고 있다. 그의 이름 석자가 책표지에 박히는 것만으로도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보통 책값의 3∼5% 수준에서 지급되는 번역인세가 그에게는 10%인 사정도 그가 고정독자 10만명을 지닌 '보증수표'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는 지난해 나온 '국민독서실태조사'(한국출판연구소)에서 중.고생이 좋아하는 작가로 3등과 5등에 꼽혔다. 또 99년 조도현씨의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사논문인 '베스트셀러 변화의 추이와 그 맥락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89∼98년 '베스트셀러 저자 베스트 10' 항목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같은 기간 교보.종로 등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가장 자주 올랐던 저자와 책 역시 각각 류씨와 '그대가…'로 나타났다.
결국 류씨는 80년대에 시대적 흐름으로부터 철저히 벗어났던 문학적 인물에서 90년대 들어 시대의 흐름을 가장 잘 읽어내는 출판 기획.번역자가 된 셈이다.
출판사 열림원에서 류씨의 책 3종을 냈던 정은숙씨(현 마음산책 주간)는 류씨의 성공비결로 '트렌드.독자를 읽는 힘과 감각'을 꼽는다. 자신이 기획.번역.저술한 책의 출간에 앞서 앞표지에서 뒤표지까지 철두철미하게 독자 표본조사, 대형서점 매장 담당자와의 토론 등을 통해 수정.보완한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출판계 일각에서는 그의 번역이 원문을 삭제.수정.보완, 독자가 원하는 문장과 메시지로 다듬는 '재창작'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이 역시 그의 '프로정신'의 발로라며 용인하는 분위기다. 그의 번역서는 학술서가 아닌 대중서이기 때문이다.
문단에서 보자면 류시화씨는 단 두권의 시집을 낸 '대중 명상시인'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출판계에서의 위상은 대중을 휘어잡는 명기획자이다. 물론 류씨는 1천만부 팔린 기획.번역서들보다 두권 시집에 마음의 무게중심을 놓고 있는 듯하다. 그는 현재 인도에 있다. 입 속에서 100번을 읊고읊어 낭송되기 쉬운 시를 쓰고 있을 터이다. (경향신문 김중식 기자)
▣ 2001.04.14. : 온돌같은... 스테디셀러 - 우리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 / 한미화 지음
s.t.e.a.d.y. 고정된, 확고한,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견고한, 한결같은, 착실한
스테디셀러는 이런 책일 게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되 둔감하지 않고, 화려하게 돋보이지 않지만 돌아보면 그 자리에 있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미화 실장은 다음주 초 출간되는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대중 곁에 오랫동안 머물러온 스테디셀러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준다. 저자는 "언급된 책들이 모두 '양서'라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저마다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저자가 첫머리에서 살펴본 분야는 성장소설이다. '새는 알에서 깨어나려 한다. 알은 곧 세계다. 새로 탄생하기를 원한다면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아포리즘으로 유명한 헤세의 '데미안'은 성장소설 계보의 출발점에 서 있다. 서구의 합리주의 전통보다는 동양적 구원의 세계에 바탕을 둔 점이 인기 요인이다.
1980년대에는 이문열씨의 '젊은 날의 초상'이 낭만적 성장소설로 우뚝하고 90년대에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가 맥을 잇는다. 이 책은 프랑스 삽화가 장 자크 상페의 그림이 독자들을 매혹시키면서 이후 성인 동화류가 쏟아져나오는 물꼬를 튼다.
어른을 위한 동화로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첫손에 꼽힌다. 아름다운 잠언들이 한국인의 내면에 가 닿았다는 평이다. 120여종이 중복 출간되고 97년 서울대 논술고사에 출제될 만큼 고전 반열에 올랐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셸 실버스타인)와 '갈매기의 꿈'(리처드 바크) 역시 성인동화 계보를 형성한다.
일본 소설 가운데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날렵한 문체와 문화적.지역적 구분 없는 동시대적 감각이 신세대에 소구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소설 스테디셀러의 말석은 '국화꽃 향기'(김하인)로 대표되는 멜로적 대중소설이 차지한다.
90년대 중반 이후 여성 독자를 겨냥한 커리어우먼 스토리가 발돋움하기 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사랑과 성공은 기다리지 않는다'(조안 리)와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전여옥)는 1세대 주자. '나는 나를 경영한다'(백지연)와 '남자처럼 일하고 여자처럼 승리하라'(게일 에반스)가 여성을 위한 처세 매뉴얼로 뒤를 이었다.
자기계발을 촉구하는 경제.경영서들이 스테디셀러 목록에 오르기 시작한 것도 90년대 중반이다.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코비). 이런 부류의 책들은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확고한 영역을 구축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선 곳에서의 아침' 등의 구본형씨는 "자신이 잘하는 일에 집중해 전문성을 축적하라"고 외쳐 직장인들의 우상이 된다.
속도와 적응의 논리로 무장한 이런 책들의 대척점에도 책은 존재한다. 자연주의적 삶을 추구한 소로의 '월든'과 헬렌.스콧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류시화씨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등은 본질적 자연주의에 다다르지 못하고 감상적 위안에 머물렀다는 평가가 내려진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스테디셀러 중의 스테디셀러'다. 76년 초판, 지난해 개정판이 나온 이 책은 1백70만부 이상이 판매됐다. 가히 '무소유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저자는 "이 책은 침묵과 무소유라는 서늘한 가치를 일상의 삶 속에서 풀어내 고단한 현대인의 삶을 위로했다"며 "인간의 본성에 다가가는 이러한 책들은 새로운 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 불꽃같은...베스트셀러-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 한미화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우연이 필연을 만드는가, 아니면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인가. 모든 출판인들의 꿈, 베스트셀러가 태어나기까지는 어떤 비밀스런 힘이 작용하는가.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의 쌍둥이 동생 격으로 다음주 초 선보이는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한미화.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는 최근 대박을 터뜨린 책들의 탄생비화를 담고 있다.
밀리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 외)는 원래 '부자들이 들려주는 돈과 투자의 비밀'이란 촌스런(?)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올 뻔했다.
지난해 2월 출간될 당시 경제.경영서 제목은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서술형이 유행이었다. '초단타 매매로 매일 40만원씩 번다'가 대표적 사례. 출판사인 황금가지는 원제 'Rich Dad Poor Dad'를 직역할 경우 독자에게 어필할 것인지 고민한 끝에 '부자들이…'로 제목을 달았다. 제목이 바뀐 것은 표지디자인 교정을 넘기기 직전. 장은수 편집장은 이렇게 술회한다.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나는데, 제목이 마음에 걸렸나 봐요. 갑자기 새벽에 일어났는데, 이 책 제목은 '부자 아빠…'가 아니면 도저히 안돼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역시 밀리언셀러로 등극한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정찬용)와 '가시고기'(조창인)는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절당한 뒤 우여곡절 끝에 제 둥지를 찾았다.
'영절하'는 ㅈ사에서 1년여 묶여 있다가 국내 굴지의 ㅁ사, 또다른 ㅁ사, ㅋ사 등으로 원고가 넘겨졌지만 다들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임자가 따로 있었던지 이 책을 낸 사회평론은 원고를 받아든 지 열흘만에 계약을 맺었다. 사회평론측은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하며 도박을 걸었다. 도박은 대성공이었다.
'가시고기' 역시 유수의 출판사를 거쳐 또다른 출판사에서 출간을 기다렸으나 차일피일 시간만 흘러갔다. 그 사이 밝은세상 김석원 사장이 작가를 설득해 원고가 햇빛을 보게 됐다. 김사장은 원고를 검토하다 내용이 너무 슬퍼 마지막 장은 읽지 못했다고 한다.
'메가셀러'로 불리는 해리 포터 시리즈(조앤 K 롤링)는 같은 회사에서 4전5기 끝에 출간됐다. 문학수첩 기획자인 김은경 대리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집계를 보고 이 책을 알게 됐다. 주문해 읽자마자 기획안을 올렸으나 결과는 퇴짜. 동화에다 마법사 이야기이고 출판사의 기존 이미지와 동떨어졌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기획서를 5번째 올린 후에야 승낙을 받아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영국에서도 블룸즈베리사가 출판을 결정하기 전 9개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경향신문 김민아 기자)
▣ 2001.05.09. : <한국의 출판기획자> (13) 시인 류시화
세계 '명상서적' 대중화 길터
시인 류시화(43)씨의 현재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은 독서가인지도 모른다. 계산해보니 매해 약 100여권의 책을 읽었단다. 모두 명상서적 원서들이다. 읽어야할 뉴에이지 관련 외서들이 쌓여있으니 다른 분야 책은 볼 기회 자체가 없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거의 매일 한권씩 뉴에이지 관련 원서를 읽어치운다. 철들 때부터 생긴 버릇대로 지금도 책 읽다가 불을 켜놓고 잠든다.
시인으로 출발해서, 명상가·번역가로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류씨의 일상은 ‘책읽는 일’로 이뤄져 있다. 본명이 안재찬인 그는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 등단했으며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다. 1983년부터 명상서적 번역작업을 시작했으며 여러차례 해외 유명 명상센터에서 생활했다. 15년째 해마다 겨울이면 인도를 방문해 구도기간을 갖는 등 명상과 책읽기, 여행으로 이뤄진 삶을 살고 있다.
혜화동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류씨의 작업실에는 황매화 노란 꽃이 지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는 평소 원칙대로 대화는 ‘비공식적’으로 이뤄졌다. 기자는 사사로운 대화처럼 물었고, 류씨도 평소 인연대로 대답했다. 기자는 류씨의 많은 면모 중 대표적인 정체성을 기획자로 파악했으나, 류씨는 자신이 기획자로 보여지는 것을 거부했다. “나는 기획을 한 적이 없습니다. 기획이라면 계획하고 계산해서 책의 모양새를 만들어가는 것일텐데, 난 그렇게 한 적이 없으니 기획자는 절대로 아닙니다.”
“명상서적 분야를 개척한 것은 한국출판에서 중요한 기획의 하나로 보여지는데요.” “제가 지금까지 번역한 명상서적이 70~80권이 됩니다. 그 중에서 80~90%는 초판도 팔리지 않았지요. 세간에서는 제가 책을 내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을 다릅니다.”
베스트셀러 적중률이 낮으니, 기획자로선 성공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해도 류씨가 한국출판에서 명상서적 분야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고, 주요한 출판목록으로 자리잡게 했다는 점에서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라즈니쉬, 크리슈나무르티를 비롯해서 인도 성자들의 사상과 삶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는데 류씨가 번역한 책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1983년 라즈니쉬의 장자 강의서를 번역한 ‘삶의 길 흰구름의 길’(청하)에서 시작한 그의 출판이력은 번역서 ‘성자가 된 청소부’(바바하리다스·정신세계사)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이레),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푸른숲), 잠언시를 편집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열림원), 법정스님의 강의를 류씨가 풀어 쓴 ‘산에는 꽃이 피네’(동쪽나라) 등, 한때는 베스트셀러의 상단 대부분을 류씨의 책이 차지할 정도로 그가 관여한 책은 폭넓게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정리하자면 류씨는 자신이 ‘미필적 고의’로 기획자가 돼버린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류씨의 작업을 보면 기획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천천히 오랫동안 진행되는 일들이다. 어떤 책이든지 출판을 전제로 읽지는 않는단다. 그냥 읽어가다가 좋으면 번역하다가 어느날 책으로 낼 만하다고 판단이 되면 그때서야 인연이 닿는 출판사에 연락해서 책으로 펴낸다. 출판가에서 류씨는 사전계약하지 않는 필자로도 류명하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가 한창이던 1998년에 나와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된 잠언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의 경우 류씨가 약 13년 동안 준비한 책이다. 13년 동안 하나씩 둘씩 가려뽑은 좋은 시들을 류씨가 편집한 것.
“만약 내가 그 시집의 시를 1년 동안 모았으면 그렇게 읽히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게 13년이란 세월 동안 천천히 모아온 것이기 때문에, 축적된 시간 때문에 읽힐 수 있는 거지요.”
기획자로서 류시화의 한 방식을 보여주는 말이다. 보다 빨리, 보다 먼저 책을 손에 넣고 유행이 지나가기 전에 빨리 책을 펴내야 하는 속도전 속에서 류씨가 보여주는 기획방식은 ‘천천히 하나하나, 확신이 들 때까지 묵혀두기’인 것이다. 류시화 기획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느리게 기획하기’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 전에 류씨가 읽었다. 그래서 저작권계약을 아주 싼 값에 할 수 있었는데, 책의 내용도 영어를 전공한 사람이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정도의 평이한 문장이었단다. 그 책을 류씨는 2년 동안 세번 번역을 하고 난 뒤에 책으로 펴냈다. ‘느리게 기획하기’는 류씨가 펴내는 책 대부분에 해당된다. 인도여행기를 담은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열림원)은 류씨가 인도 여행을 10년동안 하고 난 뒤에 적었다. 보름 갔다와도 여행기가 나오는 세상에 10년 여행 뒤에 책 하나 쓴 것이다.
류씨의 책을 많은 독자들이 찾는 이류가 ‘천천히 확신이 들 때까지 묵혀둔’때문만은 아니다. 구도, 명상 분야가 한국출판에서 면면히 이어오는 전통적인 베스트셀러 분야이기 때문이란 것이 류씨의 해석이다. 80년대 사회과학의 물결이 대세를 이룰 때 명상서적 출판이 시작된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류씨는 “명상서적이 가장 현실적이기 때문에 대중들이 관심을 가진다.
인간이 뭔가,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란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분야를 명상서적이 다루기 때문에 항상 이 분야의 책은 대중의 관심을 받아왔다”고 설명한다. 비단 인도 명상서적 뿐 아니라, ‘소설 동의보감’ ‘소설 토정비결’ ‘도올 논어’도 그런 대중의 소구력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
“반면 명상서적 분야 자체만으로 보면 이 분야가 아직 안정적인 출판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더 아쉬운 것은 명상서적 분야에서 꾸준하게 기획 번역 작업을 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화일보 배문성 기자)
▣ 2004.11.02. : "용서만이 갈등을 풀수 있어” / 달라이라마, 30년지기 챈 교수 통해 한국인에 메시지
"한국의 남북 문제와 진보·보수의 갈등은 용서를 통해서만 풀 수 있습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1일 이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한국에 보내왔다. 한국민에게 전하는 9분 분량의 메시지 테이프는 “세상은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고, 내가 행복하려면 먼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하며, 남을 행복하게 하려면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요지가 담겨 있다.
메시지는 달라이 라마의 30년 지기인 홍콩계 중국인 빅터 챈(59·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교수가 지난달 31일 한국을 방문하면서 가지고 와 이날 소개했다.
챈 교수는 달라이 라마의 숨은 이야기를 다룬 책 ‘용서’(오래된 미래·류시화 옮김)를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출간한 저자. ‘용서’에는 챈 교수가 30년 동안 지켜본 달라이 라마의 인간적인 면모가 가식 없이 실려 있다.
“3년 전 달라이 라마가 위독했을 때 인도의 한 병원에서 그를 검진했는데, 20대의 심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물리학자인 챈 교수는 달라이 라마에게서 “누굴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라는 이유를 듣고 ‘용서’는 마음의 안정은 물론 신체적 건강까지도 증진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티베트 망명정부 요원 중 18년 동안 중국에서 온갖 고문과 살해위협을 받으며 옥살이하다 나온 이가 있는데, 그 역시 “내가 감옥에서 가장 참기 어려운 고통이 중국인들에게 증오심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실토했을 정도로 달라이 라마 측근들은 이미 ‘용서’를 삶 속에 실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에 오기 전 부산의 서점에서 팬사인회를 가졌는데, “한국인들의 진지함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 비해 힘은 약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도 적(敵)이 없는 중재자의 힘을 갖고 있어 미·중 등 세계 강대국들을 조화시키는 중재국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챈 교수는 시인 류시화씨가 번역을 맡아 준 것과 관련, “류씨는 티베트도 몇차례 다녀오고 세상 보는 방식도 서로 같아 일치감을 느낀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달라이 라마는 정치지도자가 아니라 ‘용서’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진정한 수도승”이라는 그는 한국인들이 정치색을 배제하고 수도승 입장에서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면 방한이 실현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챈 교수는 실제 캐나다에서도 중국 정부의 반대가 심했지만, 지난 4월 국민들의 강한 요청으로 달라이 라마가 극적으로 다녀갈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세계일보 정성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