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번역서 『성자가 된 청소부』
바바 하리 다스(Baba Hari Das)의 『성자가 된 청소부』는 류시화 시인이 원본 <Sweet to Saint>(1980년 스리 라마 재단에서 발행)를 바탕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책 끝머리에 간추려 실은 “바바 하리 다스의 칠판에서”라는 글은 같은 재단에서 발행한 1982년판 <Silence Speks>를 사용했습니다. 참고적으로 스리 라마 재단은 바바 하리 다스의 가르침을 책자로 펴내는 비영리적인 단체입니다. 이 책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성자가 된 청소부
2. 말랑 사히브의 정체
3. 눈먼 시인과 아내
4. 연꽃처럼 피어난 영혼
5. 내면의 소리
6. 진정한 스승
7. 깨달음의 동굴
바바 하리다스의 칠판에서
▣ 『성자가 된 청소부』 / 바바 하리 다스 / 류시화 옮김 /정신세계사 / 1988년 초판 발행.
◉ 권태현의 베스트셀러 이야기 - 글/권태현(소설가/시인)
인도의 성자 바바 하리다스가 쓴 깨달음의 글
초판 4천부 찍은 책 표지 바꿔 백만부 넘게 팔려
1988년 1월의 어느날, 번역문학가 류시화는 출판계에 몸담고 있는 친구 한 사람과 만나 정신세계사 편집실에 들렀다. 류시화는 친구에게 자신이 책을 한 권 번역했는데, 원작자가 아주 뛰어난 사람이고 책의 내용 또한 몹시 훌륭하다고 자랑을 했다. 그러면서 제본소에서 막 입고된 책 한 권을 친구에게 선물했다.
"책이 어때? 잘 나온 것 같애?"
류시화는 책을 받아들고 서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그 친구가 출판계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에 책을 처음 대한 소감이 어떤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 친구는 한참 동안 책 표지를 들여다본 후에 이렇게 말했다.
"표지가 이게 뭐냐? 이런 표지로 독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겠어? 그러잖아도 요즘 나오는 책들의 표지가 얼마나 세련됐는데..."
류시화는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황급히 그 친구를 구석 쪽으로 잡아끌었다. 그들이 서 있던 자리 바로 옆에는 그 책의 표지를 만든 여자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그 책의 표지는 너무나 단순했다. 노란색 바탕에 초록색 칠판 하나가 달랑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책 제목이 얹혀 있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류시화의 태도에는 아랑곳 않고 계속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제목도 그래. 『바바하리다스의 칠판』이라니? 이런 제목이 어디 있어? 바바하리다스가 누군지 나도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독자들이 이 이름을 알고 선뜻 책을 집어들겠어? 책 제목도 바꿔야겠어. 내용이 아무리 좋고 훌륭해도 이런 표지, 이런 제목으로는 잘 나가기 힘들어."
그 친구의 말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초판으로 찍은 4천부를 서점에 배본했는데, 출판사에서는 굉장한 기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이 거의 팔리지 않았다. 재주문을 해오는 서점이 전혀 없었으며 창고가 작은 일부 서점에서는 성급하게 반품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갔다. 책이 처음 나오고 나서 6개월여 동안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책의 수명은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 책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기대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1988년 7월의 어느날, 류시화와 함께 출판사에 들렀던 그 친구는 신문에서 눈에 띄는 책 광고 하나를 보게 되었다. 그 책의 제목은 {성자가 된 청소부}였다. 그 친구는 책 제목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하고는 광고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책의 지은이는 바바 하리 다스였고, 옮긴이는 류시화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책을 펴낸 출판사는 정신세계사였다.
"아니, 이 출판사는 바바 하리 다스의 책만 내기로 작정한 모양이군. 그리고 류시화가 또 번역을 한 걸 보니 저자한테 반하긴 되게 반했나 보네."
그 친구는 광고를 다 읽어본 후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성자가 된 청소부}는 수개월 전에 발간됐던 『바바하리다스의 칠판』의 제목과 표지를 바꾸어 다시 서점에 내놓은 것이었다. 그 친구도 나중에 서점에 나가 보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까 그 친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책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 출판사 안에서도 그런 의견이 나와서 결국은 '표지갈이'를 하기로 결정이 내려졌던 것이었다.
그 친구가 서점에서 만난 『성자가 된 청소부』는 제목이 관심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표지도 단순하면서 산뜻한 느낌을 주었다. 이 책은 서점에 진열되자마자 조금씩 움직이더니 서서히 가속도가 붙어 마침내는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많은 책이 독자들의 손에 쥐어지게 되면서 『성자가 된 청소부』의 내용과 이 책을 쓴 바바 하리 다스에 대한 이야기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바바 하리 다스는 히말라야 산중 마을에서 태어났고 열두 살에 집을 떠나 밀림 속의 고행자들과 함께 생활한 인도의 성자. '침묵의 수행자'로 널리 알려진 그는 30년 동안 말을 하는 대신 허리춤에 매단 작은 칠판에 글을 써서 사람들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성자가 된 청소부』는 그중 일곱 편의 글을 소개한 것이다.
이 책 속에는 청소부로 태어나 성자가 된 사람, 감자 농사를 짓다가 생의 집착에서 벗어난 사람, 온갖 역경을 거쳐 비로소 자기 내면에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 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바 하리다스 특유의 미사여구 없는 평범한 문체, 단순한 구성으로 형상화되어서 읽는 이들이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주어진 삶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일단 책이 많이 팔리고 나자 그 내용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또 그 내용이 알려지게 되자 그 때문에 더 많은 책이 팔리는 효과를 낳았다. 게다가 때를 맞추어서 출판사 측에서는 대대적인 광고전략을 세워서 책의 판매를 부채질했다.
갑작스럽게 베스트셀러로 뛰어오른 이 책은 발간된 지 4개월 만에 50만부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또 같은 기간이 지나자 판매부수는 80만부로 뛰어올랐고, 그후에도 계속 나가 1백만부를 넘어서는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만일 『바바하리다스의 칠판』을 『성자가 된 청소부』로 바꾸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책은 그냥 4천부를 찍고 사라지는 불운한 운명에 머물렀을 것이다. 좋은 내용의 책이 포장 때문에 안 팔렸다고 판단한 편집자의 판단이 4천부짜리 책을 1백만부가 넘게 나갈 수 있게 한 것이다. (끝)
※ 글쓴이 소개 : 권태현(소설가/시인)은 1958년 대구에서 태어나 1983년 “국시” 1집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8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습니다. 그후 잡지사 기자, 출판기획자로 일하며 시와 소설을 발표해왔습니다. 저서로는 해학소설집 『바보들의 농담』 등이 있습니다.
※ 참고사항 : 위 인용글 “권태현의 베스트셀러 이야기”는 2000년 6월에 접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해당 사이트의 주소가 삭제되어 원본의 출처를 알기가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