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시집 형태로 된 류시화 시인의 시집이 새로 출간되었으며, 엄밀히 말하자면 선집입니다(신문 기사의 표현에 의하면 '엮음 시집'). 류시화 시인이 직접 쓴 시가 아니라서 좀 아쉽지만(다만 한 편은 수록되어 있음) 좋은 글들을 엄선한 것이기에 충분히 가치는 있을 것입니다.
이 시집은 책의 차례 앞 쪽에 "Healing Poems - Love as though you have never been hurt"라는 영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치유의 시'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류시화 시인은, 이 책의 첫머리에는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의 <초대>를 싣고 시집을 끝맺는 것도 역시 그의 시 <춤>을 싣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상처받은 자신을 초대하고 함께 춤추라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치유이므로...
담겨있는 시는 총 77편으로 류시화 시인의 지인인 이문재 시인의 시에서부터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의 시 등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 류시화 엮음 / 오래된 미래 / 2005년 3월 15일 1판 1쇄 발행
◉ 내용 보기
[시 1] 초대 -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
당신이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고,
자신의 가슴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꿈을 간직하고 있는가 나는 알고 싶다.
당신이 몇 살인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다만 당신이 사랑을 위해
진정으로 살아 있기 위해
주위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알고 싶다.
어떤 행성 주위를 당신이 돌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슬픔의 중심에 가닿은 적이 있는가
삶으로부터 배반당한 경험이 있는가
그래서 잔뜩 움츠러든 적이 있는가
또한 앞으로 받을 더 많은 상처 때문에
마음을 닫은 적이 있는가 알고 싶다.
나의 것이든 당신 자신의 것이든
당신이 기쁨과 함께할 수 있는가 나는 알고 싶다.
미친 듯이 춤출 수 있고, 그 환희로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까지 채울 수 있는가
당신 자신이나 나에게 조심하라고, 현실적이 되라고,
인간의 품위를 잃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 않고서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당신의 이야기가 진실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한이 있더라고
자기 자신에게는 진실할 수 있는가
배신했다는 주위의 비난을 견디더라고
자신의 영혼을 배신하지 않을 수 있는가 알고 싶다.
어떤 것이 예쁘지 않더라도 당신이
그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가
그것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더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가 나는 알고 싶다.
당신이 누구를 알고 있고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당신이 슬픔과 절망의 밤을 지샌 뒤
지치고 뼛속까지 멍든 밤이 지난 뒤
자리를 떨치고 일어날 수 있는가 알고 싶다.
나와 함께 불길의 한가운데 서 있어도
위축되지 않을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내면으로부터 무엇이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자기 자신과 홀로 있을 수 있는가
고독한 순간에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을
진정으로 좋아할 수 있는가 알고 싶다.
[시 2] 여인숙 - 잘랄루딘 루미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시 3]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알프레드 디 수자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운영자 주(註) : 시 원문에 대하여 살펴보면, 류시화 시인의 설명에는 이 시의 저자가 알프레드 디 수자(Alfred D. Souza)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견해에 의하면 알프레드 디 수자가 Happiness라는 글을 쓰면서 위 글의 일부를 인용했다고 합니다. 인용된 내용은 위 글 전체는 아니며 3줄만 해당되는데요,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알프레드 디 수자의 글 중에 Author Unknown라는 부분을 보면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의 원문을 찾으면서 '영문 원본'을 찾을 수도 있을 텐데요, 다만 그것이 과연 원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영역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Dance like no one's watching,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Sing like nobody's listening
Work like you don't need money,
Live like it's heaven on earth.
[시 4] 옹이 - 류시화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할 것이 아니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디 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 참고 : 2008년 5월 7일 [낭독의 발견]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배우 추상미씨가 류시화 시인의 [옹이]를 낭녹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2012년에 출간한 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에도 이 시 "옹이"가 수록되었습니다.
[시 5] 춤 -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
나는 당신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내 손바닥에 삶의 불꽃으로 쓴 초대장을.
내게 보여 달라.
아픔 속 아픔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떨어지면서도
당신이 딩신의 가장 깊은 바람을 어떻게 따르고 있는가를.
그러면 내가 날마다 어떻게 내면에 가닿고,
또한 바깥을 향해 문을 열어 삶의 신비의 입맞춤을
어떻게 내 입술에 느끼는가를 말해 줄 테니.
당신의 가슴속에 온 세상을 담고 싶다고 말하지 말라.
다만 당신이 상처를 받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두려웠을 때
어떻게 자신을 버리지 않고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는 일로부터 등을 돌렸는가 말해 달라.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내게 삶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
그리고 내가 살아온 이야기들 속에서
내가 진정 누구인가를 보아 달라.
내게 말하지 말라.
언젠가는 멋진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그 대신 마음의 흔들림 없이 위험과 마주할 수 있는가를
내게 보여 달라.
지금 이 순간 일어난 모든 일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영웅적인 행동을 한 전사 같은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다.
하지만 벽에 부딪쳤을 때 당신이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가,
당신의 힘만으론 도저히 넘을 수 없었던 벽에 부딛쳤을 때
무엇이 당신을 벽 건너편으로 데려갔는가를
내게 말해 달라.
무엇이 자신의 연약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었는가를.
당신에게 춤추는 법을 가르쳐 준 그 장소들로
나를 데려가 달라.
세상시 당신의 가슴을 부수려고 했던 그 위험한 장소들로.
그러면 나는 내 발 아래 대지와 머리 위 별들이
내 가슴을 다시 온전하게 만들어 준 장소들로
당신을 데려가리라.
함께 나누는 고독의 긴 순간들 속에 내 옆에 앉으라.
우리의 어쩔 수 없는 홀로 있음과
또한 거부할 수 없는 함께 있음으로.
침묵 속에서, 그리고 날마다 나누는 작은 말들 속에서
나와 함께 춤을 추라.
우리 모두를 존재 속으로 내쉬는 위대한 들숨과
그 영원한 정지 속에서
나와 함께 춤을 추라.
그 공허감을 바깥의 어떤 것으로도 채우지 말고
다만 내 손을 잡고, 나와 함께 춤을 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