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한 줄도 너무 길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
“강물에 떠내려가는 / 나뭇가지 위에서 / 아직도 벌레가 노래를 하네” (이싸)
“우리 두 사람의 생애 / 그 사이에 / 벚꽃의 생애가 있다” (바쇼)
일본의 전통 정형시인 하이쿠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에 속한다. 5-7-5 열일곱 자로 된 이 한 줄짜리 시는 짧은 길이에 담긴 촌철살인의 통찰과 해학으로써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독자들을 열광시켰다. 시인 류시화씨가 엮고 옮긴 <한 줄도 너무 길다> (열림원)는 바쇼, 이싸, 부손 등 3대 하이쿠 시인들의 시를 중심으로 모두 263편을 해설과 함께 실었다. (한겨레신문, 2000/03/26)
☞ 하이쿠(俳句)란, 5-7-5의 음절로 이루어진 한 줄짜리 정형시이다. 자연과 계절을 노래하고 있다.
▣ 『한 줄도 너무 길다』/ 류시화 엮음 / 도서출판 이레 / 2000년 3월 15일 1판 1쇄 펴냄.
◉ 내용 보기
※ 이 책 『한 줄도 너무 길다』에서 간추린 하이쿠 30수입니다.
이 가을 저녁, /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 결코 가볍지 않다 (이싸)
이 덧없는 세상에서 / 저 작은 새조차도 / 집을 짓는구나 (이싸)
미타리 풀이여, / 넌 무엇에 대해 /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니? (이싸)
저 세상이 / 나를 받아들일 줄 / 미처 몰랐네 (하진)
내 앞에 있는 사람들 / 저마다 저만 안 죽는다는 / 얼굴들일세 (바쇼)
두 그루의 매화, 얼마나 보기 좋은가 / 하나는 일찍 피고 / 하나는 늦게 피고 (부손)
인간이 있는 곳 어디에나 / 파리가 있고 / 부처가 있다 (이싸)
내가 사랑으로 인해 죽으면 / 내 무덤에 와서 울어다오 / 뻐꾸기야 (오슈)
내가 경전을 읽고 있는 사이 / 이 나팔꽃은 / 최선을 다해 피었구나 (쿄로쿠)
아이들아, / 벼룩을 죽이지 마라, / 그 벼룩에게도 아이들이 있으니! (이싸)
초겨울 비가 내리네 / 내 이름은 / '방랑자' (바쇼)
밤은 길고 / 나는 누워서 / 천년 후를 생각하네 (시키)
이 늙은 벚꽃나무 / 젊었을 때는 / 소문날 정도로 사랑받았지 (이싸)
그녀가 젊었을 때는 / 벼룩에 물린 자리조차도 / 예뻤다네 (이싸)
나는 외출하니 / 맘 놓고 사랑을 나누게나, / 파리여 (이싸)
너무 울어 / 텅 비어 버렸는가, / 이 매미 허물은 (바쇼)
그물에도 걸리지 않고 / 밧줄에도 걸리지 않는 / 물 속의 달 (부손)
쌀을 뿌려 주는 것도 / 죄가 되는구나 / 닭들이 서로 다투니 (이싸)
벌레가 울고 있네 / 어제까지는 못 보던 / 벽에 난 구멍에서 (이싸)
그의 모자가 점점 멀어져 / 나비가 될 때까지 / 그를 처다보네 (치요니)
추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 / 잠들지 않으면 / 더욱 춥다 (시코)
반딧불이 반짝이며 날아가자 / '저길 봐'하고 소리칠 뻔했다 / 나 혼자인데도 (디이기)
올해의 첫 매미 울음, / 인생은 / 쓰라려, 쓰라려, 쓰라려 (이싸)
이 덧없는 세상에서 / 허수아비도 / 눈과 코를 가졌구나! (시키)
다리 위의 저 거지도 / 아들을 위해 / 반딧불을 잡으려 하네 (이싸)
재주가 없으니 / 죄 지은 것 또한 없다 / 어느 겨울날 (이싸)
이 가을, / 너의 삶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 / 이젠 다 부질없는 짓이니 (바쇼)
파리가 자꾸만 달려든다 / 이 주름진 손에서 / 무엇을 원하는 걸까? (이싸)
반딧불을 쫓는 이들에게 / 반딧불이 / 불을 비춰 주네 (오에마루)
땔감으로 쓰려고 / 잘라다 놓은 나무에 / 삭이 돋았네 (본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