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월간) 작은 이야기』에 수록된 명상일기 목록
※ 류시화의 이 명상일기는 월간 『작은 이야기』(현재 폐간)에 1999년 11월부터 2000년 6월까지 연재된 내용입니다.
▣ 월간 [작은 이야기] 1999년 11월호 : 말하는 잎사귀
▣ 월간 [작은 이야기] 1999년 12월호 : 행복한 물고기
▣ 월간 [작은 이야기] 2000년 01월호 : 잠시 후면 넌
▣ 월간 [작은 이야기] 2000년 02월호 : 아무도 잘못 산 인생은 없다
▣ 월간 [작은 이야기] 2000년 03월호 : 나 또한 그렇게 살기 위해
▣ 월간 [작은 이야기] 2000년 04월호 : 첫 민들레에게
▣ 월간 [작은 이야기] 2000년 05월호 : 나비의 물음표
▣ 월간 [작은 이야기] 2000년 06월호 : (제목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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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작은 이야기』 1999년 11월호 - 말하는 잎사귀
- 1 -
말하는 잎사귀 1어젯밤 꿈 속에
잎사귀 하나가 내게 걸어와
내 귓가에 대고 말했다.
자기는 '말하는 잎사귀'라고.
자신의 나무에 대해,
그 나무가 서 있는 대지에 대해.
그리고 자기를 흔드는 바람에 대해
말하는 잎사귀라고.
또 그 잎사귀는 내게 말했다.
나 역시 한 장의 말하는 잎사귀라고.
나 자신에 대해,
세상의 모든 이들에 대해,
나를 흔드는 꿈과 희망에 대해
말하는 잎사귀라고.
어느 날 나무에서 떨어져내려
그 반짝이는 가을 물살에 떠내려갈 때까지
그 흙에 얼굴을 묻을 때까지
우리 모두는 한 장의
말하는 잎사귀라고.
- 2 -
말하는 잎사귀 2내 작업실 뒷마당에는 오래된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는 아침에 이 작업실로 들어서면 맨 먼저 그 나무에게로 다가가 둥치를 껴안아 보기도 하고, 잎사귀들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큰 나무가 저의 품을 열어 지붕을 덮어주고 있는 이 작업실. 이곳이 내게는 더없이 좋은 수도원이고 명상센터이다. 나만의 공간. 밤이면 전깃불마저 끄고, 인도와 티벳에서 구해 온 등불 몇 개를 켜 놓고 책을 읽는다. 때로는 내 안의 침묵을 바라보며 앉아 있기도 한다. 그러면 나무 흔들리는 소리 도 들리고 대지에 몸을 기대는 마지막 풀벌레 울음 소리도 들린다. 모두가 한 장의 '말하는 잎사귀'처럼 무슨 말인가를 내게 들려주고 있다.
나는 귀를 열고 그 소리들을 들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는 '귀 속의 귀'가 열려 그 말들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사물의 속 이야기를 듣는 것, 그것이 곧 명상과 기도의 순간이다.
한 사람이 교회에 가서 많은 시간을 기도하며 앉아 있었다. 교회의 목사가 그 사람에게 물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하느님께 어떤 얘기를 하셨습니까?"
그가 말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느님이 하시는 얘기를 귀기울여 듣고 있었을 뿐입니다."
목사가 놀라서 물었다.
"그럼 하느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다.
"그분도 아무 말씀을 안 하시던데요. 우린 그냥 침묵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 3 -
뜰에 심어 놓은 파초의 넓은 잎사귀 위로 가을비가 후두둑 떨어져내린다. 올해는 내 작업실 뜰에서 두 그루의 파초가 가장 먼저 빗소리를 알렸다. 한 그루는 어느 노화가의 뜰에서 옮겨다 심은 것이고, 또 한 그루는 제주도에서 '거위 아저씨'가 보내준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가을비가 그치면 아열대 식물인 파초는 잎사귀가 꺾이고, 생명을 다할 것이다. 그 뿌리를 겨울 내내 지하실의 어둡고 따뜻한 곳에 보관하리라. 이듬해 봄의 새로운 부활을 기대하면서.
마지막 가을비가 파초 잎을 너울거리게 하는 이 아침, 아일랜드 지방의 기도문을 소리내어 읽었다.
당신의 손에 언제나 할 일이 있기를,
당신의 지갑에 언제나 한두 개 동전이 남아 있기를,
당신의 집 창틀에 언제나 해가 비치기를,
이따금 당신의 길에 비가 내리더라도 곧 무지개가 뜨기를,
친구의 손길이 언제나 당신 가까이 있기를,
그리고 신께서 당신의 가슴을 기쁨으로 채우기를.
『(월간) 작은 이야기』 1999년 12월호 - 행복한 물고기
- 1 -
행복한 물고기나는 내 안에 물고기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물고기는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내 안의 푸른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고 때로는 날개 없이 하늘을 날기도 한다.
물이 부족하면 나는 물을 마신다.
내 안의 물고기를 위해. 내가 춤을 추면 물고기도 춤을 춘다.
내가 슬플 때 물고기는 돌틈에 숨어 눈을 깜박이지도 않은 채 나를 응시한다.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난다 해도 나 자신으로부터는 달아날 수 없는 것.
날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안의 물고기를 행복하게 하는 일.
나는 내 안에 행복한 한 마리 물고기를 키우고 있다.
- 2 -
나는 지금 작업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글도 쓰고 명상과 기도의 시간도 가질 겸해서 얻은 이 정원 있는 집에 법정 스님은 <시화산방>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산방은 누추한 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조금도 누추하지 않은 곳이다. 어지러운 시대에 이만한 공간이 내게 주어졌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나 스스로 이 집에 붙인 이름은 <파초의 집>이다.
어느 해부턴가 파초가 내 안에 들어와 자라기 시작했다. 잎사귀가 넓은 까닭에, 봄부터 가을까지 파초는 이 집 정원에 비쳐드는 모든 종류의 빛을 허술히 버리지 않고 온전히 내 안에 반사시켜 주었다.
일본 하이쿠 시의 대가인 바쇼는 파초를 좋아해 자신이 사는 오두막을 '파초암'이라 불렀고, 자신의 이름까지도 바쇼(芭蕉)라고 정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 역시 파초를 보고 반해 버렸다. 이곳에서 나는 글을 쓰고, 하루에 몇 분씩은 햇살 아래 앉아있곤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명상 중에 계속 졸음에 빠지는 자신을 탓하는 한 수행자에게 스승이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도 조는 사이사이에 계속 깨어나지 않는가. 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주 안 깨어나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 매번 잠들어 있더라도 어느 순간 자신이 잠들어 있음을 알고 깨어나는 일, 그것이 삶에서 중요한 일이리라. 한 선사는 늘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보게 류시화!"
"예!"
"졸지 말게!"
"예!"
아침에 나는 이곳의 뜰에 서 있고, 저녁에도 서 있다. 어떤 날은 인도 음악이 집안에 울려 퍼지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인가는 바람이 사정없이 집 구석구석을 흔들며 지나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와서 이 정원에 잠시 머물렀다 가곤 한다. 문을 열고 내다보는 파초 잎사귀의 빛도 그렇지만, 내 안에 응시되는 또다른 빛도 그만이다. 어떤 때는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해질 무렵, 정원에 서서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뒷마당의 느티나무가 흔들리고, 이따금 붉은 나뭇잎들이 어둔 하늘에 소용돌이쳤다. 어디선가 지난 여름에 빠져나간 매미 허물이 바람에 헛울음을 흉내내고 있었다. 바람은 그렇게 오래도록 내 집 지붕 위에서 돌아다녔다.
어느 노승이 한 말.
"바람은 허공을 얻어 자유롭게 다니네."
나는 이제 곧 또다시 인도 여행을 떠난다. 내년 봄에야 이 작업실로 돌아올 것이다. 그동안 이 집은 땅 속의 구근들처럼 침묵하리라. 짐가방은 필요 없다. 내게는 그 노승의 말처럼 자유로이 허공을 얻는 일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 3 -
어떤 날은 그 행복한 물고기가 내 안에서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물을 마셔 봐도, 내 안에 물고기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모든 것이 공허해졌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내가 나에게 낯설어지는 순간, 내 삶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순간. 내 안에서 사라진 그 물고기를 찾기 위해 나는 먼 나라 인도에도 가고, 티베트 고원을 헤매기도 했다.
길은 또다른 길로 이어지고, 나는 수많은 문 을 두드려야 했다. 어떤 날은 먼지 날리는 나무 밑에서 잠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과연 무엇을 발견했는가. 내 안의 행복한 물고기를 되찾았는가. 하시디즘(유태교 신비주의)에는 이런 글이 있다.
"이 생을 마치고 신 앞에 나아갔을 때 신은 우리 에게 너는 왜 구세주가 되지 못했는가, 왜 뛰어난 수학자가 되지 못했는가, 그리고 왜 훌륭한 치료법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하고 묻지 않는다. 그대신 신은 우리에게, 왜 너는 진정한 너 자신이 되지 못했는가, 왜 너는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는가 하고 물을 것이다."
『(월간) 작은 이야기』 2000년 1월호 - 잠시 후면 넌
- 1 -
잠시 후면 넌잠시 후면 넌 눈을 감을 것이다.
그때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으며, 자신이 살아온 삶이 자신의 삶이 아니었음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잠시 후면 넌 태양 물고기가 바다에서 헤엄치는 걸 보게 되리라.
넌 어렸을 때 이미 삶을 다 알아버렸다.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 보라.
다만 넌 그것을 잊어버렸다. 잠시 후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지도 모른다.
잠시 후면 넌 혼자 서 있게 되리라. 모두가 널 그냥 스쳐지나가리라. 그러나 잠시 후면 넌 사랑이 두 팔로 껴안는 것만이 아니며 삶이 무엇을 손에 넣기 위한 것만이 아님을 알기 시작하리라.
그리고 잠시 후면 넌 빛의 터널 속에 서 있게 되리라.
- 2 -
영혼과의 통신이나 사후세계를 다루는 책들은 지 구가 하나의 교실이라고 증언한다.
우리는 여러 배 움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 여행을 왔다는 것이다.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큰 자아로 성장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에서 만남을 가졌던 영혼 들이 전부 한 자리에 모인다고 한다.
그들은 이 생 에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돌아보며 서로의 배움을 나누기도 하는데, 때로는 자신들이 너무 심각하게 살았던 것에 대해 농담을 하며 한바탕 웃는다고 한다.
삶이 하나의 놀이이며 잠시 지구라는 별에 소 풍을 온 것인데도, 매순간 그것을 잊은 채 소유하 고 집착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너무도 심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는 좀더 재미있고, 삶을 경 험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다짐을 한다는 것이다.
체리 스코트는 「인생이 하나의 놀이라면, 이것 이 그 놀이의 규칙이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 고 있다.
당신에게 육체는 주어질 것이다. 당신은 경험을 통해 배울 것이다. 실패는 없다. 오직 배움만이 있을 뿐이다.
충분히 배우지 못하면, 당신에게는 그 경험이 반 복될 것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이곳'보다 더 나은 '그곳'은 없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당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어떤 삶을 만들 것인가는 전적으로 당신 자신에 게 달려 있다. 당신에게 필요한 해답은 모두 당신 안에 있다. 그리고 태어나는 순간 당신은 이 모든 사실을 잊 을 것이다.
- 3 -
또다시 나는 여행길에 서 있다.
월간 [작은 이야기]
한 해의 첫 날을 히말라야나 갠지스 강에서 보내기 시작한 지도 여러 해가 되었다. 그럼으로써 나 자신이 이 삶에 여 행을 왔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삶 역시 하나의 여행이 아닌가. 여행을 망치지 않으려면 몇 가지 규칙을 따라야 할 것이다. 특히 문명의 뒤안길인 오지를 여행할 때는 더욱 그렇다. 함부로 물을 마시지 말 것. 고산병을 조심할 것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행 장소에서 맞닥뜨리는 것들에 집착하거나 얽매여서는 안 되리라.
그는 곧 떠나야만 하는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삶에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규 칙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규칙은 우리가 이곳 에 여행을 왔으며, 그 여행을 통해 배움을 얻고 있 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 예수를 말하다」에서 티벳의 종 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한 다.
두 수도승이 있었다. 그들은 스승과 제자였다. 어느 날 스승은 열심히 일하는 제자를 격려하기 위 해 이렇게 말했다.
"하루 날을 잡아 소풍을 가기로 하자." 며칠이 지나도 스승은 그 약속을 잊은 듯 소풍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자는 할 수 없이 스승에 게 약속을 일깨웠다. 그러자 스승은 자신이 너무 바빠 당분간은 소풍을 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소풍은 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제자는 스승을 일깨웠다.
"그 대단한 소풍은 언제쯤 가는 거죠?" 스승은 말했다. "지금은 안 된다. 난 지금 너무 바쁘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자가 마당에 서서 사람들이 시 신을 운반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데, 스승이 와서 물었다.
"무슨 일이냐?" 그러자 제자가 대답했다.
"저 불쌍한 남자가 이제서야 소풍을 가고 있군요!"
『(월간) 작은 이야기』 2000년 2월호 - 아무도 잘못 산 인생은 없다
- 1 -
아무도 잘못 산 인생은 없다태양, 돌, 나무
그런 것들이 내게 말한다, 내가 걸어갈 때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 그냥 살아 있다는 것은
나무들
해시계의 그림자를 만드는
한낮의 태양
꼬리를 버린 채 달아나는
늙은 도마뱀
그런 것들이 또 내게 말한다, 내가 지나갈 때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하다는 걸
떠돌이새들은 아는 걸까
저녁에 언덕으로 가면 새들이
또 내 귀에 대고
질문을 퍼붓는다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어디를 가나 내가 나라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어디를 가나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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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에서 내가 고민한 것들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었다. 현실 속 고통에 부딪치기보다는 상상 속의 고민이 더 많은 시간을 빼앗아갔다. 남미의 과테말라 인디언들에게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워리 돌 (Worry Doll)' 인형이라는 것이 있다.
나의 고민을 대신해 주는 인형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인디언 물건을 파는 상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도 1달러를 넘지 않는다.
천과 실로 만든 대여섯 개의 손톱만한 인형들이 작은 주머니와 상자 안에 들어 있다. 그 인디언 부족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고민을 이 워리 돌 인형에게 말하라. 그리고 그 인형을 베개 밑에 넣고 자라. 그러면 그 인형이 밤새 너의 고민을 대신해 줄 것이다. 그러니 넌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워리 돌 인형에는 인디언 부족의 지혜가 담겨 있다. 삶에는 많은 고민이 찾아오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실제로는 일어나지도 않는 일이라는 것이다. 고민하는 대신 생의 열정을 가져라. 그리고 마음 속에는 평화와 침묵의 향기를 간직하라. 아리조나 주에서 워리 돌 인형을 처음 발견한 이 후로 나는 미국을 여행할 때마다 그것들을 몇 개씩 사다가 사람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고민하지 않는 삶은 가볍다. 청춘의 고민은 그의 발길을 낯선 미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고민하라, 매순간을 다해! 서둘러 해답을 찾으려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그러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아닌, 어리석은 문제들에 집착하는데서 얻어지는 고민은 삶의 열정이나 창조성을 다 사라지게 한다.
- 3 -
나는 청춘을 인도 여행에 바쳤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는 데 내 자신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누구처럼 인도에서 여러 해 동안 생활을 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낼 수 있을 때마다 나는 인도로 떠났다.
그래서 지금까지 미국을 제외하고는 가 본 나라가 없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청춘을 인도에 바쳤는가.
그 나라를 더 자세히 알기위해 그토록 많은 여행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낯선 인종에 대한 호기심이나 지식을 충족시키기 위함도 아니었다.
언제까지나 자유를 만끽하려는 충동에 이끌림도 아니었다. 다만 나는 인생에 대해 고민했고, 내 청춘이 다가기 전에 그 해답을 얻고자 했다.
인도 여행은 내게 그 해답을 안겨 줄 것처럼 보였다. 여행은 고독했고, 자주 나를 절망케 했으며, 때로는 이 모든 것이 무의미한 시간들이 아닌가 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시체를 덮은 꽃들이 떠다니는 갠지스 강가에서, 아무것도 없는 끝없는 들판에서, 새벽이 밝아오는 낯선 기차역에서 이제 그만 이 여행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지금 나는 깨닫는다.
그 쉽지 않은 여행들이가 능했던 것은 내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방안에서 나 자신과 씨름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대신 아열대의 태양이 떠 있는 눈부신 세계 속으로 걸어나갔기 때문이라는 걸.
내가 불면의 잠을 깨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행길에 나서는 그 순간부터 이미 나는 달라져 있었고, 내 얼굴은 새벽의 미명 속에 희미한 희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일은 헤르만 헤세의 [기도시]를 다시 읽는 일이다.
신이여, 나를 절망하게 하소서. 당신에게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절망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모든 방황의 슬픔을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경험하게 하소서.
온갖 모욕을 겪도록 하시고 내가 스스로 해나갈 수 있도록 돕지 마시고 내가 발전하는 것도 돕지 마소서.
그러나 나의 모든 자아가 깨어지거든 그때는 나에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당신이 내게 불꽃과 고뇌를 안겨 주었다는 것을. 나는 기쁘게 망하고 기쁘게 죽겠으나 오직 당신의 품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월간) 작은 이야기』 2000년 3월호 - 나 또한 그렇게 살기 위해
- 1 -
나 또한 그렇게 살기 위해그동안 내가 먹은 동물들을 위해 기도합시다.우직한 소와 돼지를 위해뾰족 부리를 가진 닭을 위해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며 배고프다는 이유로 잡아먹은 순박한 눈의 검은 염소를 위해그동안 내가 마구 더럽힌 물을 위해 내 발 아래 파헤쳐진 어머니 대지를 위해 기도합시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갑게 등 돌린 사람들을 위해 ㅡ 내가 묵묵히 지켜보기만 한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을 위해 나 자신도 모르게 헛되이 써 버린 그 많은 시간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이제부터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내게 겨울마다 양식이 되어 준 고구마에게 여름의 주먹 쥔 감자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매순간 가슴을 채워준 신선한 공기에게 내 영혼이 보다 순수해지도록 도와 준 처녀 채소들에게 얼굴을 비춰 주는 무심한 개울물에게 언제나 웃는 꽃에게고마움을 전합니다.
추운 겨울을 지내고도 순백으로 피어나는 목련에게 내 안의 단순성을 일깨워 주는 첫 민들레에게.나 또한 그렇게 살기 위해.
- 2 -
며칠만에 비가 와, 대지를 적시고 있다. 오늘 아침 머리 위로 지나가는 큰 회색 구름들을 바라보며 작업실로 걸어왔다. 작업실 문에 도착할 무렵 어느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빗소리를 감상하기 위해 빈 깡통 하나를 들고 정원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처마 밑에 깡통을 엎어놓고 그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있었다.
두런두런, 비와 깡통이 어울려 내는 화음은 어느새 마음을 평온한 세계로 채워 주었다. 마치 빗소리들이 작은 불꽃들처럼 내 안에 하나씩 켜지는 것이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마음의 눈을 뜨고 있으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귀를 기울이고 마음의 눈을 뜨고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빗소리이고 바람이고 나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밖에는 다른 진리가 없다는것을.
티벳의 달라이 라마가 1982년에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였다.
그는 나이가 매우 많은 제10대 파워 린포체와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두 사람은 티벳에서 살던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며 최근에 세상을 떠난 어느 고승의 환생에 대한 예측을 주고받았다.
바로 그때 파워 린포체가 식당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를 발견했다. 개미는 미끄러운 마룻바닥 위를 힘겹게 기어가고 있었다. 파워 린포체는 너무 늙어 이미 두 다리를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달라이 라마에게 대신 그 작은 생명체를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노승의 부탁을 박은 달라이 라마는 조심스럽게 개미를 집어들어 축복의 말을 속삭인 다음 햇빛이 드는 뜰에 안전하게 옮겨 주었다.
그리고는 식탁으로 돌아와 유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말씀대로 했습니다. 린포체 님. 당신의 눈은 이미 노안이 되었지만 마음의 눈은 제 눈보다 훨씬 밝군요."
그후 달라이 라마는 프랑스 전역에 순회 강연을다니면서, 작은 생명체를 눈여겨 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비의 정신임을 일깨웠다.
비는 하루 종일 내리고. 한낮이 지나 뜰에 엎어놓은 깡통을 뒤집어 보니 그 안에 어느새 작은 벌레 하나가 들어와 비를 피하고 있었다.
깡통 뚜껑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마음 속이 밝아진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벌레의 내면에는 어떤 불이 켜졌을까.
- 3 -
미국 작가 엘레인 제임스는 「내적인 단순성」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권하고 있다.
'하루에 한 번씩은 자연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 삶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할 것. 식사 시간에는 침묵을 지킬 것. 속도를 늦추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것. 매순간을 느끼되,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원치 않는지 분명히 할 것. 우주에 대해 도움을 청할 것. 하루를 돌아볼 것.'
그밖에도 내적인 단순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많이 웃을 것과, 어린 시절에 믿었던 것을 다시 떠올릴것, 이따금 일상에서 과감히 탈출할 것 등을 말하고 있다.
『(월간) 작은 이야기』 2000년 4월호 -첫 민들레에게
- 1 -
첫 민들레에게
나는 무덤 앞에 첫 민들레가 피어 있기를 희망하였다.
민들레와도 같은 짧은생을 나는 살았으나 겨울 끝에는 언제나 봄 햇살 아래서 있고자 노력했다.
그것만으로도 내 삶은 가치있는 것이었다. 인생의 시련기 중 한때에 민들레와도 같은 작은 소망이 나를 붙들었으니 또한 민들레처럼 언땅에 얼굴을 비비며 나는 소생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는 하룻밤새 몸이 가벼워져 먼 영토로 날아갈 것을 잊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때로 첫 민들레를 바라보는 일과 같은 것 내 무덤 앞에는 봄마다 새로이 피어나는 민들레의 묘비명이 꽂혀 있기를 나는 희망하였다.
- 2 -
오늘 나는 깨닫는다. 내가 지나온 모든 길이 하나의 과정이었음을. 내게 필요했기 때문에 그 많은 일들이 일어났음을. 한때 나는 어리석었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으며, 내가 받은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했다. 실패를 거듭했으며, 어떤 때는 너무 오래 망설이다가, 바람의 방향을 잘못 탄거미처럼 엉뚱한 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과정이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로 나를 데려오기 위한 필연적인 단계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길 외에 다른 길은 있을 수 없었다. 마르타 스목의 시처럼, 내가 지나 온 그 길들은 내게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 상처 그 두려움이 없었다면 나는 이처럼 성장하지도 못했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갖지 못했으리라.
또한 삶의 고비고비마다 영적인 안내자들이 나타나 내게 필요한 길로 나를 인도해 주고자 노력했다. 영혼에 대해 연구한 사람들은 우리들 각자에게 영적인 안내자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의 생을 지켜보며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이다. 때로는 그 안내자가 우리를 돕기 위해 육체를 갖고 태어나 인생길을 함께 가기도 한다.
그 안내자는 자신이 도와주는 그 영혼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 동기와 용기를 일깨워 주는 일, 그것이 영적인 안내자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영적인 안내자는 첫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 눈을 바라보는 순간, 마치 지금까지 오래 알았던 것처럼 느낌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때로 그는 친구나 배우자가 되어 옆에서 보호해 주고, 안내해 준다. 그 안내자는 하나일 수도 있고 때로는 여럿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삶을 살아가면서 결코 혼자인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느 순간에나 그 영적인 안내자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를 늘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어떤 과정이든 그것은 영적인 성장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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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와, 사방에 민들레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때로 첫 민들레를 아무 감정없이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살아온 날들이 쉽지 않았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제프 크네히트는 <초월하라>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모든 꽃이 시들듯이 청춘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인생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덕망도 피었다지는 꽃처럼 영원하지는 앟으리.
생의 외침을 들을 때마다 생의 외침을 들을 때마다 새로이 다른 길로 걸어가듯이 무릇 일의 시작에는 신비스러운 힘이 깃들려 있다네. 우주의 정신은 우리를 구속하려하지 않고 우리를 한 단계높이며 넓히려 하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습관에서 벗어나리라.
우리를 부르는 생의 외침은 결코 그치는 일이 없으리라. 그러면 좋아,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라.
『(월간) 작은 이야기』 2000년 5월호 - 나비의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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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물음표
언제 소금은 짠 맛을 내주고 / 자신을 버릴까.
언제 민들레는 노란색을 버리고 / 하얗게 돌아설까.
언제 나비는 날개를 접고 / 진흙으로 돌아갈까.
언제 별들은 은빛을 버리고 / 먼지가 될까.
언제 내 입술은 노래를 멈추고 / 모래로 돌아갈까.
언제 내 혼은 육체를 버리고 /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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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우리집 마룻바닥에서 수피 춤을 추었다. 인도의 명상센터에서 배운 이 춤은 구제프라는 러시아 명상가가 서양에 소개한 것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명상법이다.
수세기 동안 아랍의 수피(회교 신비주의자)들이 그 춤을 추어왔다. 수피 춤에는 두 팔을 벌리고 회전하는 동작이 있다. 마치 어렸을 때 마당에서 두 팔을 벌리고 빙글 빙글 돌 듯이 계속 회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회전 명상'이라고 한다. 회전 명상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이 명상을 하기 전에는 세 시간 동안 무엇을 먹거나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을 정도다. 강렬한 몸의 회전으로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지켜야할 사항이 많다.
회전할 때는 반드시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회전 명상의 핵심은 무엇인가. 몸이 회전함에 따라 주위 풍경도 회전한다. 그러나 자신의 의식은 태풍의 눈처럼 그 회전의 중심에 고요히 머물러 있어야 한다.
'회전하라. 하나의 바퀴처럼, 또는 도자기 굽는 사람이 굴리는 회전판처럼. 그러나 자신의 존재는 그 중심에 고요히 머물러 있으라.; 이것이 수피 춤 속에 담긴 의미다.
삶에서 일어 나는 일들이 매순간 주위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삶에는 언제나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흔들림 없이 고요한 중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쁘고 슬픈 일, 이룬 일과 이루지 못한 일, 얻 는 일과 잃는 일, 껴안는 일과 멀어지는 일 들이 일어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러나 수피의 현자들은 때로 그 모든 일들을 눈앞에서 회전하는 풍경이라 여기고 자기 자신은 고요히 중심에 머물 라고 요구한다. '세상 속에 살라.
그러나 세상의 소유가 되지는 말라.' 이것이 수피 명상의 가르침이다. 한편 하다시즘 (유태교 신비주의)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천국 입구에 있는 '슬픔의 나무'라는 큰 나무 아래로 가서 자신이 이 생에서 겪은 모든 슬프고 고통스런 일들을 종이 에 적어 나뭇가지에 걸어 놓는다고 한다.
그런 다음 천사가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나무 주위를 돌며,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인생들 중에서 자신의 인생보다 덜 불행하고 덜 고통스러워 보이는 인생이 있으면 그것을 자신의 것과 바꿀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음 생에 그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누구든지 결국에는 다른 사람의 인생이 아닌 자신의 불행과 고통을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자신의 인생이 덜 슬프고 덜 불행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각의 사람은 그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한결 지혜로워져서 '슬픔의 나무' 밑을 떠난다고 한다.
- 3 -
오늘 오랜만에 수피 춤을 추고 나서 구약성서 전 말을 읽었다.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
하늘 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다 정해진 때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참을 때가 있으면 심은 것은 뽑을 때가 있다. 부술 때가 있으면 세울 때가 있고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다.
슬퍼할 때가 있으면 춤출 때가 있다. 껴안을 때가 있으면 껴안는 것으로부터 멀어질 얻을 때가 있으면 잃을 때가 있다…….
아마도 이 구약성서의 현자는 이 말 끝에 이렇게 게 일어나는 이 모든 일을 경험하되 너 자신은 흔직하라. 모든 것은 다만 너에게 일어날 뿐이니. 그 신의 영혼까지 그것에 소유당하지는 말라.'
『(월간) 작은 이야기』 2000년 6월호 - (제목 미확인)
- 1 -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 아무것도
뭘 원해? / 아무것도
인도에 가서는 뭘 봤지? / 아무것도
그럼 뭘 하러 거길 갔었지? / 그냥
귀를 기울여 봐요 / 내 지나온 삶을 들려줄 테니
귀를 기울여 봐요 / 내 여행한 나라들을 들려줄 테니
귀를 기울여 봐요 / 귀 속의 또다른 귀를
- 2 -
북인도 바라나시 뒷골목에 있는 어느 레코드 가게가 생각난다.
우연히 그곳을 발견한 나는 코딱지 만한 가게를 지키고 있는 인도인 청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가게에 어떤 명상 음악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 인도인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명상 음악이라니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인동에서 음반 가게를 하고 있으면서 명상 음악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니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잘난 체하며 명상 음악이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자 그 청년은 대뜸 가게 안의 모든 싸구려 테 이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만일 이 중에서 당신이 말하는 명상 음악이 아닌 것이 있으면 한 개라도 골라 보시오."
그 순간에는 잘난 체하는 그 인도인을 아래위로 째려보며 지나갔지만, 사실 그것은 내가 명상 음악에 눈을 뜨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그 일 이후 많은 소리와 음악들이 '명상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빗소리, 바람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평원 음악이나 아프리카의 땀땀북 소리도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매순간 명상으로 나 자신을 인도하고 있다. 헛된 잡념을 일순간 멈추고 진정한 나 자신으로 돌아가게 한다.
중국의 어떤 선사는 산길을 걷다가 기왓장 깨지는 소리에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지 않는가. 또 어떤 선승은 나무 꼭대기에 앉은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듣고 한순간 무지를 벗어던졌다고 한다. 미국 버클리에 있는 어느 선원을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첫날부터 나는 혼란에 직면했다.
접수를 하고 방을 배정받은 뒤 잠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위층 방에서 전자 기타와 드럼 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참선을 지도하는 곳에서 한밤중에 록 음악이라니! 순간 이곳에 온 것이 후회가 되고 당장 짐을 챙겨 떠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아침에 나는 옆방에서 나오는 다른 늙은 수행자에게 그런 내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는 나를 숙소 뒤쪽의 채소밭으로 데려가 말했다.
"이 밭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보십시오. 간밤의 그 시끄러운 소음이 없었다면 이 평화와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당신은 이곳에 참선을 하러 온 것입니다. 따라서 주위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 모든 것을 참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스승들은 산속이 아닌 시장 한복판에서 명상하라고 가르쳤다. 자기 내면의 흔들림없는 중심에 가까워지기 위해 일부러 어지러운 소음 속에 서있어 보라고.
카톨릭에는 <성 베네딕토의 수도원 규칙>이라는 것이 있다. 사막에서 흩어져 수행하던 초기 기독교 수행자들이 차츰 수도원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게 되자 그곳에 필요한 규칙을 세운 것이다. 그런데 베네딕토 성인은 그 첫번째 규칙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들으라 (listen)!' 자신의 말을 하는 것보다 귀를 열고 남의 말을 듣는 것, 주위의 소리를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수행 규칙인가를 성인은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인파가 많기로 유명한 인도의 올드 델리 시장을 걷고 있을 때였다. 그곳 은 그야말로 온갖 소음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사람들 떠드는 소리에서부터 우마차 쩔렁거리는 소리, 릭샤 운전수의 고함소리, 쓸모도 없는 물건을 비싸게 사가라고 어거지쓰는 장사꾼들의 외침 등이 합쳐져 그야말로 혼이 나갈 정도였다. 너무 시끄러워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십 분쯤 그곳에 머물러 있자니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왜 이 곳을 걷고 있을까.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을까. 인간의 삶이란 이처럼 시끄럽고 경쟁적인 걸까. 누구나 예외없이 이 물결에 휩쓸려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그렇게 도리질하고 있는데 문득 향신료 파는 가게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두 (힌두 탁발승)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남루한 오렌지색 수도복을 걸치고 이삼십 년 동안 깎지 않은 장발을 둘둘 말 아 머리꼭지에 얹은 채 그는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나는 잠시 그 사두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차츰 주위의 온갖 소음과 움직임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몇 순간만에 내 안에 평화가 깃들이고, 강물을 바라보듯이 거리를 두고 주의의 복잡한 흐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나는 그 자그다쉬 바비와 함께 기차도 타고 버스도 타면 서 바라나시까지 여행을 했다.
눈곱이 끼고 가진 것이라고는 아침마다 이마 한가운데 신의 문양을 그릴 빨갛고 노란 물감밖에 없었지만, 그 사두의 탁월한 능력은 다름아닌 '듣는 능력'이었다. 그는 하루 종일 몇 마디 말밖에 하지 않고 늘 '귀 속의 또다른 귀'로 주위의 소리들을 듣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갑자기 그 소리들 너머의 세계로 가 있곤 했다. 사실 우리는 하루종일 끊임없이 생각을 하고 있 으며, 그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 사념의 강에서 걸어나와 가끔씩 강둑에 앉아 그 강물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곧 명상이다. 한 여인이 교회에 가서 많은 시간을 기도하며 앉 아 있었다. 교회목사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하느님께 어떤 얘기를 하셨습니까?" 여인이 말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느님이 하시는 얘기를 듣고 있었을 뿐입니다." 목사가 놀라서 물었다. "그럼 하느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여인이 말했다. "그분도 아무 말씀을 안 하시던데요. 우린 그냥 침묵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