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
"서문(序文)"
한때 모든 길은 나에게로 왔고, 또다른 한때 많은 길들이 나로부터 출발했었다. 여기 한데 모은 글들은, 나에게로 온 길과 나로부터 풀어져나갔던 길에 관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이 글들에는 그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더운 후회와 차가운 반성들이 몇 겹씩 겹쳐진다. 잠시 나는 서서, 저 몇 겹의 길들이 하나씩 분명하게 떠오르는 풍경을 본다. 그것은 아, 다름아닌 나의 스승들이었다. 길, 나의 스승들을 이제 저 세상 속으로 보낸다. 저마다의 '나'를 만나기 위해 지금도 길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길은 순해져 있다.
단순해지기 위해 버릴 때는 아프다. 버리고 나서야 가득해지는 단순함은 크다. 무목(無目)을 믿기로 해야 한다. 단순해지지 못할때 나는 늘 이명 같은 목소리를 들어왔으니 "넌 왜 아직도 왜 여기에 있느냐? 왜 아직도 안 떠나고 있어"라는 내 최초의 '계시'가 윙윙대는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다시 떠나는 것이다.
1993년 겨울, 다시 밖으로 떠나며
류시화
▣ 산문집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 / 류시화 / 문학동네 / 1994년 1월 10일 초판 발행.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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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의 길, 흰구름의 길 (11~22쪽)
1
누구에게나 계시의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경우는 그것이 하나의 섬광처럼 지나가고 또다른 경우에 있어서는 꿈처럼 어렴풋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일생을 실아가노라면 누구나 그러한 계시의 순간과 마주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얼굴 속에 묻혀 있는 여러 개의 얼굴을 지나 어린 시절로 떠나기만 하면 쉽사리 그 계시의 순간과 만날 수가 있다.
어느 봄날이었다. 그때 나는 일곱 살도 채 안 된 어린 나이였고,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마을에는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미친 여자 하나가 있어서 곧잘 산 아래쪽에 있는 우리집으로 놀러오곤 했다. 어머니는 마당에서 나물을 다듬고 있었고, 나는 그 뒤켠에서 놀고 있었다.
미친 여자는 우리집에 오면 우리집 식구들의 그해 운세를 점쳐주는 것이 일이었다. 그리고는 기분이 좋아진 어머니에게서 밥을 얻어먹곤 했다. 그날 나는 여느 해보다 일찍 찾아온 봄햇살 속에 앉아 어머니가 일하시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문득 그 미친 여자가 마당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아는 체를 하고 나서 그해의 운세 따위를 중얼거리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느닷없이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아니, 이 아이가 왜 여기에 있어요? 왜 여기에 있을까? 이 아이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왜 떠나지 않는 거야?"
나는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고, 햇살에 눈이 부셔서 미친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햇살 속에서 마냥 어른거렸다.
어머니는 그녀가 하는 말을 미친 여자의 헛소리 정도로 여겨 곧 잊어버렸지만, 그 말은 얼음조각처럼 내 가슴에 와서 박혀버렸다. 그리고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녹아 없어지지 않았다. 그 미친 여자의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나는 내가 언젠가는 떠나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더 이상 그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다시는 그 이전처럼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세계로 회귀할 수가 없었다.
2
누구나 그렇듯이 그러한 계시의 순간은 갑자기 창아와서 한 인간의 세계를 온통 휘저어놓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도 그러한 것이었으니, 칠레의 작가 미구엘 세라노는 자신이 맞이한 계시의 순간에 대해 [궁극의 꽃(The Ultimate Flower)]의 서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어린 시절을 나는 시골에서 보냈다. 우리집은 눈 쌓인 안데스 산맥이 바라보이는 산 기슭에 있었다. 집 안쪽으로는 정원이 있었는데, 나는 그 정원에서 뛰놀곤 했다. 내 첫번째 친구들은 정원에 자라는 꽃과 식물들이었다.
어느 날 나는 꽃 속에서 손 하나가 솟아올라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나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꽃 속에서 손이 나타나는 것을 하나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걱정스러웠던 것은 손이 나더러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오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꽃 속으로 들어가기엔 내 몸집이 너무 컷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꽃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자 갑자기 꽃은 시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꽃을 떠받치고 있던 이파리들과 꽃잎들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나는 꽃을 살리기 위해 꽃잎들을 주워 제자리에 갖다 붙이려고 해보았지만 당연히 헛수고일 뿐이었다.
그때 나는 최초로 종이꽃을 만들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하루 온종일 색색가지의 종이를 오려붙여 꽃 한 송이를 만들었다. 나는 그것을 갖고 정원으로 가서 시든 꽃이 있던 자리에 꽂았다. 내가 바랬던 것은 그 종이꽃이 진짜꽃처럼 완벽해서 다시금 그 손에서 손이 솟아올랐으면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손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만든 꽃이 신(神)이 만든 정원의 꽃들에 비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바로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정원의 꽃이나 식물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나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신과의 경쟁 세계에 들어갓던 것이고, 자연과의 원초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버렸던 것이다.
3
누구에게나 일생에 한 번씩은, 혹은 여러 번씩 계시의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계시의 순간은 아무리 반복된다 해도 그 빛을 잃지 않는다. 두번째로 나에게 찾아온 계시의 순간은 마치 약속이나 했던 것처럼 시간의 퇴적층 속에서 갑자기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나에게 최초의 스승이 있었다. 인생의 모든 기초를 나는 그 스승으로부터 배웠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햇볕이 호박씨를 말린다는 것도 그 스승에게서 배웠고, 그림자가 계속 나를 쫓아오지만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사라진다는 것도 나는 배웠다.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나 욕설까지도 그 스승에게서 배웠다.
그 스승의 이름은 소희(素姬)였다. 소희는 우리 옆집에 사는 계집아이였다. 나는 이제 막 국민학교에 들어갔고, 소희는 5학년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마을 뒤의 언덕에 올라가 풀밭에 누워 있었는데, 언덕 위로는 이리저리 구름들이 흘러다녔다. 그때 풀대궁을 꺾어 물어뜯던 소희가 흰구름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난 언젠가 떠날 거야. 떠나서, 멀리 멀리 가버릴 거야."
나 역시 풀대궁을 물어뜯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뭐라구? 다시 한번 말해봐."
"난 떠날 거라니까. 학교만 졸업하면 멀리 멀리 가서 돌아오지 않을 거야."
나는 또다시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 몸의 한구석으로 바람이 새어들어와 나를 어떤 무중력의 세계로 들어올리는 듯했다. 나는 지상에서 떠올라 흰구름들 곁으로 멀어져가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너 또한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나만이 아니었구나.
무중력 상태가 되어 허공으로 떠밀려가는 나에게 나의 스승 소희는 엄숙하게 말했다.
"아무한테도 이 사실을 말하면 안 돼. 이건 절대 비밀이야."
첫번째 계시의 순간이 찾아온 이후부터 그것은 나 자신의 비밀이기도 했으므로 난 새삼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비밀은 머지않아 공개된 비밀이 되어버렸다. 이듬해 국민학교를 졸업한 소희는 중학교를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고 집을 나가 어디론가 가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다들 놀랐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후로 그녀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그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서 소희는 무엇이 되었을까. 누군가와 결혼해서 가정을 가졌을까, 아니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위해 흰구름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더 먼 곳으로 떠났을까.
아루나찰라의 성자로 유명한 라마나 마라리쉬는 [마하리쉬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의 본분은 존재하는 것이지 이런 모습이나 저런 모습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4
어디 라마나 마하리쉬뿐이랴.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훌륭한 여행자는 자신의 발자취를 뒤에 남기지 않는다."
내가 세번째로 맞이한 생의 계시는 휼륭한 여행자에 대한 추억과 관련지워져 있다. 그리고 그 추억은 봄날 마을의 뒷산을 뒤덮던 붉은 복사꽃들에 관한 추억으로 이어진다.
내가 생애 최초로 만난 휼륭한 여행자는 나의 외할아버지였다. 외할아버지는 노자의 말마따나 더없이 훌륭한 여행자였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어디론가 사라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식구들이 아무리 수소문해도 그는 아무런 발자취를 남기지 않았기에 그를 찾는 일이 불가능했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말 그래도 거지였다. 자유분방한 생활로 재산을 다 날려버린 그는 에순 살이 넘어서부터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의 어머니는 맏딸이었고, 그래서 겨울이 다가올 무렵이면 외할아버지는 추위를 피해 우리집으로 찾아들었다. 그리고는 겨울나기를 하는 늙은 동물처럼 우리집 안방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봄이 되면 다시 길 떠날 차비를 하곤 했다.
때에 절은 양복에다가 모자를 쓰고 단장을 짚은 외할아버지가 마을 입구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이면 나는 어린 나이에도 겨울이 곧 다가오리란 걸 에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 영락없이 추운 북서풍이 뜰앞의 나뭇가지를 휘어뜨렸다. 그리고 다시 같은 차림으로 외할아버지가 마을 입구를 떠나가면 그때는 봄이어서 이내 복사꽃들이 산 전체를 온통 붉게 물들였다.
그렇게 몇 해 동안 내 어린 시절의 예민했던 시간들을 지배하면서 외할아버지는 겨울과 함께 왔다가 봄과 함께 홀연히 떠나갔다. 그가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는 떠남을 늘그막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더없이 초연했다. 그의 얼굴은 이미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집착을 초월해 있었다. 그러니 노숙(露宿)의 고통이나 여정의 피로함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겨울이 되면 돌아왔다가 봄이 되면 떠나갔다.
브라츠라프의 랍비 나하만의 유명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느 날 왕이 궁정 대신을 불러서 근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
"어젯밤에 내가 별자리점으로 미래를 내다보았더니 큰 액운이 이 나라에 덮져오고 있었다. 올해의 농작물을 수확새서 먹는 순간 우리 모두가 미쳐버린다는 것을 점괘가 말해주었다. 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이 대답했다.
"작년에 거둔 농작물이 아직 남아 있으니 그것들을 징발하면 됩니다. 폐하께서 드시기엔 충분합니다. 저까지도 먹을 수 있구요."
"그럼 다른 사람들은?"
왕이 꾸짖었다.
"내 왕국의 시민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 나라의 충실한 신하들은? 그들에 대해선 잊어버리란 말인가? 또 어린아이들도 있지 않은가?"
"잊어버리란 말씀이 아닙니다. 다만 모든 사람을 보호할 만큼 식량이 충분치 않으니까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폐하께서 드실 만큼밖에 안 되거든요. 저도 먹을 만큼은 되구요."
왕은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며 말했다.
"그대의 해결책은 훌륭한 것이 아니다. 다른 해결책은 없단 말인가? 어쨌든 나는 나 혼자서 온전하기 위해 노력할 순 없다. 또한 온 세상이 미쳤는데 그대와 나 둘이서만 온전한 사람으로 남아있다면 국민들은 오히려 우리 두 사람을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나 또한 국민과 더불어 올해의 농작물을 먹고 미쳐버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의 이 결정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어떻게 말입니까? 폐하?"
"우리가 기억을 하고만 있다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왕은 궁정 대신에 어깨에 팔을 두르면서 말했다.
"그대와 나는 우리가 미쳤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이마에 표시를 해두자. 이마의 표시는 우리가 서로를 바로볼 때마다 그대와 나, 우리 모두가 미쳤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마치 자신의 이마에, 자기는 이곳에서 안주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는 표시가 찍혀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늘 떠나곤 했다. 그리고 그 떠남에 비추어볼 때, 마을사람들은 자기가 미쳤다는 사실을 잊은 사람들과 같았다. 그들은 자기가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가 떠난다는 사실을 잊은 채 영원히 안주할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겨울이 왔는가 하고 먼 산을 내다볼라치면 또 어김없이 봄이 찾아와 산에는 붉은 꽃들이 만발하고 어린 나는 어김없이 떠나가는 외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지워버릴 수 없는 계시의 순간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후로 내가 맞이한 수많은 사건들의 퇴적층 속에서도 그 계시의 순간만큼은 언제라도 다시금 내 앞에 떠올라 나에게 손짓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 아이가 왜 여기에 있지? 왜 여기에 있을가? 아니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왜 떠나지 않는 거야?"
복사꽃이 피고 마을 사람들은 씨앗을 부리러 들로 향할 때 한 소년과 노인은 마을의 끄트머리에서 그렇게 작별의 손을 흔들곤 했었다. 그리고 어느 핸가는 겨울이 되어도 외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다. 잎이 지는 늦가을부터 물이 어는 달이 십이월까지, 또 눈송이에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이듬해 일월이 다 가도록 기다렸지만 끝내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뒤로도 몇 번의 추운 겨울이 더 지나갔고, 나와 어머니는 기다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 유한한 세상에서의 기다림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어머니는 마침내 길에서 객사를 하셨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나는 그 말이 실감나지 않아서 회할아버지가 언제고 단장을 짚고 다시금 마을 입구로 들어설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고, 봄은 왔으나 이미 이전의 봄빛이 이니었다.
그러나 아주 사라져버리기 전에 외할아버지가 나에게 일개워준 말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해 봄 마을의 끄트머리에서 헤어지면서 문득 내게로 다가와 내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한 말이었다.
"넌 가슴을 잃지 말아라. 네가 가슴을 잃으면 잃는 것은 가슴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잃는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가슴을 잃으면 잃게 되는 것은 가슴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임을 나는 먼 훗날에야 깨닫게 되었다. 외할아버지는 아직 어린 나이이긴 했지만 더 늦기 전에 나에게 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실을 일깨워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훗날에 이르러 청춘의 방황을 거친 끝에야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외할아버지는 그날 그 한 마디로 많은 것을 말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네가 신(神)을 잃어버리면, 잃는 것은 신이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이란다. 네가 순수한 것을 잃으면, 잃는 것은 순수한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이지. 이것을 잊지 말아라. 네가 사랑을 잃으면, 잃는 것은 사랑이 아니야. 바로 너 자신을 잃는 것이지.
그 말들이 아직도 내 귀에 메아리친다. 나는 내가 맞이한 세번째 게시의 순간에 전해들은 그 말들을 다시금 내 입술 위에 떠올리면서 매순간 그것과 하나가 되고자 한다. 사람에서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거라. 소중한 것들을 잃으면 잃게 되는 것은 그 소중한 것들이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이지. 결국에 가산 너 자신을 잃고 말아.
나는 외할아버지가 한때 자유분방한 생활로 자신을 탕진했지만 신(神)은 그를 용서하리라 믿는다. 말년에 이르러 그분은 이미 세상에 있는 것들을 관조할 줄 알게 되엇으니까. 설령 그렇게 되지 않았을지라도 이탈리아 화가 페루긴의 말대로 신은 용서하는 것이 직업이므로 최선을 다해 용서했을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와 나의 기다림 속에 한 해의 겨울이 가고 뒤이어 여러 번의 겨울이 쏜살같이 지나갔으며 나는 어른이 되었고 이 생에서 다시는 외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내가 잃은 것은 외할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한 부분이었음을 나는 깨달았다.
[2] 나는 인도에 갔었다, 머리 속에 불이 났기에 (23~34쪽)
끝없는 거친 들판·인간, 인간들
들판 저 끄트머리에 불이 켜졌다. 그 불빛이 차갑게 흔들린다. 그곳에 사람이 사고 있다는 신호다. 이 끝없는 거친 들판. 나는 오랫동안 그 너머를 바라본다. 나무마저 없고 가시덤불만 굴러 다니는 곳. 먼지 묻은 이슬 내리고 짐승의 발자국조차 없는 곳. 그곳을 나는 지나왔므며 그곳에 사는 인간들을 만난 적이 있다. 어느 목적 없는 여행길, 무목(無目)의 방랑길에서였다. 그들은 나는 만났고, 생의 노정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가졌었다.
우리 텅 빈 인간들
우리 박제인간들
머리는 볏짚으로 꽉 찼고
함께 기대고 있는, 아 슬프다!
우리의 메마른 목소리는
함께 속삭일 때면 무의미하다.
마치 마른 풀 위를 스치는 바람처럼.
형상 없는 형체, 실체 없는 그림자
미미한 힘, 행동 없는 몸짓.
- T.S. 엘리어트 [텅 빈 인간]
너 어디로 가는가? 끝없는 거친 들판에서 내가 만난 그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 묻지도 않았다. 봄이면 때묻은 양복에 모자를 쓰고서 복사꽃 피어난 신작로길을 떠나던 외할아버지처럼 내 여행길에는 목적지가 없었다. 그것은 떠남 그 자체를 위한 떠남이었다. 어머니나 나는 외할아버지에게 그렇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어디로 가세요? 어디로 가서 밤을 지낼 건가요? 세상의 것들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러한 물음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특히나 떠남 그 자체를 위해 떠나는 사람에게 목적지란 무의미한 것.
수피(회교 신비주의)의 성자 바야지드 알 비스타마는 말한다.
"네가 향해 가고 있는 목적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네가 걸어가고 있는 길, 햇빛이 내리비치는 그 길 위에서의 촌각촌각이 중요한 것이다. 만일 너에게 목적지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신(神)이나 너 자신을 목적지로 삼으러."
첫 번째 인도 여행 때 나는 일행과 헤어져 혼자가 되었다. 타지마할 무덤이 있는 아그라 시에서였다. 나는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뉴델리로 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기나긴 기차 여행에 몸을 실었다.
그러다가 도중에서 기차를 내렸다. 이름도 처음 듣는 간이역이었다. 기차가 역에 정차했다가 느릿느릿 출발할 때였는데 나는 갑자기 충동에 휘말려 가방을 찾아들고 플랫폼으로 뛰어내렸다. 어디서 내린다 한들 그것이 무슨 차이가 있으랴.
낡은 역사(驛舍)가 오전의 투명한 햇살 속에 졸고 있고 해바라기를 닮은 노란 꽃들이 둘레에 몇 그루 자라 있는 작은 간이역이었다. 나는 역을 빠져나가 주변의 인도 마을을 잠시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역을 빠져나가자 나를 맞이한 것은 끝없는 들판이었다. 그곳에 마을이란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철로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역건물과 몇 채 안 되는 낡은 양철통집이 전부였다. 그리고는 사방이 끝없는 들판, 들판이었다. 나는 예기치 않게 들판 한가운데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제 다음 기차가 언제쯤이나 이 간이역에 멈출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해바라기를 닮은 노란 꽃 아래 잠시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멀리 들판 끄트머리까지 내다보았다.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광활한 들판이었다. 이따금 바냔나무인지 보리수인지 모를 커다란 나무가 삼사백 미터 간격으로 서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이 들판을 지나가면 마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두 번째로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곧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을로 가기 위해 가방을 둘러메고 일직선으로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가기 시작했다. 등뒤에서 역 건물이 점차 멀어지고 해는 더 뜨거워졌다. 도중에 다시 역으로 돌아가 다음 기차를 기다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때까지 걸어온 시간이 아까웠다. 그리하여 나는 어느덧 아무 것도 없는 들판 한가운데 홀로 서 있게 되었다.
있는 것이라고 노란 해와 드문드문 서 있는 큰 나무들, 그리고 나 자신뿐. 나는 대학 다닐 때 잠시 연극활동에 몰입한 적이 있었으나, 이처럼 아무런 소도구도 없는 무대 위에 내 자신이 던져지기란 처음이었다. 그곳에선 내 자신이 하나의 소도구로 전략할 위험성은 없었다. 원래 다른 소도구들에 묻혀 우리 자신마저도 하나의 소도구로 전락해버리는 경우를 허다하게 체험하게 된다. 내 자신이 아무리 소도구가 아니라 주인공이라고 외친다 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그렇게 두 시간을 걷고 세 시간을 걸어도 마을은 나타나지 않았고 들판은 끝이 없었다. 이따금 나무 위에서 까마귀인 듯한 검은새가 나를 노려보다가 휙 하고 날아갔다. 나는 목이 말랐고 이러다가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는다면 아무도 내가 죽은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며 까마귀들이 나를 뜯어먹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이란 얼마나 이상한 것인가.
한 여행자가 사막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가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곧 죽게 되었다. 힘없는 다리를 이끌고 모래언덕을 올라가다가 그는 모래 속에서 튀어나온 마른 나뭇가지에 걸려 쓰러졌다. 다시 일어날 기운조차 없었다. 그는 생의 희망을 포기한 채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그렇게 누워 있던 그는 최초로 사막의 침묵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그의 귀는 어떤 흐릿한 소리를 들었다. 그는 문득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침묵 속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가.
나는 이따금씩 들판에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 아래 앉아 있곤 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어느 방향이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 어디로 가는가? 그렇게 물어올 사람도 없고, 생의 모든 것 ---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역 건물은 보이지도 않았다. 이젠 돌아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돌아가기에 너무 늦다. 하나의 숙명처럼. 나는 점점 무거워지는 가방을 도중의 커다란 나무에 걸어놓았다. 어차피 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고, 돌아갈 때 가져가면 되는 일이었다.
나무 밑에서 다리를 쉰 것까지 합해 다섯 시간 정도를 걸었을 때였다. 그래도 사방의 들판은 변함이 없었다. 그때 나는 지평선 끝에서 어렴풋이 한 무리의 검은 점을 보았다. 지열 속에서 몇 개의 점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검은 점들을 향해 뛰어갔다.
어디든지 가보라. 지구의 어느 곳이든 가서 보라.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가. 그 들판에서 들짐승들을 만났다면 난 오히려 놀라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광활한 들판, 굳이 문학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시공간이 흔적 없이 지워진 듯한 그 외진 들판에 몇 명의 인간이 있어서 검은 염소떼와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들판에서 해와 달이 뜨고 짐을 보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어느 곳에서 생을 마쳤을까.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 침침해진 눈동자로 무엇을 보았을까. 별? 혹은 바람? 그리고 나의 최초의 스승 소희(素姬)는 어느 곳을 얼마큼이나 여행했을까. 무엇을 보고 무엇을 살았을까. 거리와 집? 혹은 사람들?
북경(北京)에 파견된 어떤 목사가 레스토랑에 갔다. 그곳에서 한 웨이터를 붙잡고 중국사람들이 종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문을 했다.
웨이터는 목사를 데리고 발코니 밖으로 나가더니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무엇이 보입니까. 선생님?"
"거리와 집, 그리고 행인들과 부지런히 움직이는 버스와 택시들이 보이는데."
"그 밖에 다른 것도 보입니까?"
"나무들이 보이는군."
"그것뿐입니까?"
"바람이 불고 있고."
그러자 그 중국 청년은 두 팔을 크게 벌려 보이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것들이 모두 종교입니다. 선생님."
뜨거운 태양 아래 무려 다섯 시간 정도를 걸어 들판 어느 곳에 이러렀을 때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작은 집단의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검은 염소를 여럿 가지고 있었으며, 집이라곤 누더기 천조각을 이어붙인 천막이 고작이었다. 움푹하게 땅을 파고서 움막처럼 세워 놓은 천막이 모두 다섯 개였다.
그 다섯 개의 천막이 기적처럼 들판 끄트머리에 나타나자 나는 기운을 얻어 그곳으로 달려갔다. 약 백 걸음 정도 앞에 이러럿을 때 한 인도 여자아이가 내쪽으로 걸어왔다. 그 소녀는 나를 보자 대뜸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무엇이 보여요?"
무엇이 보이냐구? 나는 순간 당황했다. 끝없는 들판을 걸어온 나그네 앞에 한 인도 여자아이가 나타나 느닷없이 무엇이 보이느냐고 묻는다고 상상해보라. 그때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어리둥절해 하며 서 있지 소녀아니는 다시 물었다.
"무엇을 보았지요? 우리 식구들이 염소들을 데려오려고 저쪽으로 갔는데 혹시 못 보았나요?"
나는 그제서여 질문의 뜻을 알았다. 소녀는 영어 실력이 형편없어서 대충 아무렇게나 물었던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대답하자 소녀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가 걸어온 쪽으로 가버렸다.
이윽고 저녁이 오고 해가 붉은 색조와 함께 서쪽 지평선 너머로 도망쳤다. 유목민들이 염소를 데리고 돌아와서 천막 앞에 모닥불을 지폈다. 그리고 처음에 만났던 소녀아이가 어떻게 발견했는지 나무에 걸어놓았던 내 가방을 들고 낑낑거리며 돌아왔다.
사람들은 모닥불 주위에 앉아 차를 마시고 더러운 손으로 빈대떡처럼 생긴 짜파티(인도인들의 주식)를 먹었다. 그들은 소리없이 그것들을 내게 건네주었다. 소리없이 건네주는 그 아름다움, 그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느닷없이 들판 한가운데 나타난 이국인,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안항T다. 나는 갑자기 추워지는 들판의 한기를 피해 옷가지를 어깨에 두르고서 차를 얻어 마시고 짜파티를 먹었다.
그때 나는 어떤 이상한 것을 보았다. 거대하고 둥근 빛 하나가 들판 끄트머리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아, 그것은 보름달이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거대한 달을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다. 모닥불의 불빛을 무색케 하는 휘황한 보름달이 지평선 위로 덩실 솟아올랐다. 달빛은 무차별하게 들판의 나무와 까마귀와 누더기 천막 위로 쏟아져내렸다.
나는 가방에서 피리를 꺼내 불기 시작했다. 달빛의 정취에 감정을 이길 수 없었는지 자꾸만 피리소리가 끊어졌다. 인도인들의 커다란 눈동자에 비쳐 모닥불이 어른거렸다. 내가 피리불기를 마치자 맞은편에 앉은 노인이 소리없이 웃었다. 나는 피리를 가방에 집어넣고 그 노인에게 노래 한 곡을 청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그 노랫소리를 잊지 못한다. 무슨 내용의 노래였을까. 생의 회환과 끝없는 여정을 노래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젊은 처녀의 가슴 울리는 사랑 노래였을까. 다만 내 눈이 잊지 못하는 것은 그 들판 위로 떠오른 커다란 달과 사그라드는 모닥불, 그리고 노래부르던 그 노인의 몸짓이었다. 그는 한쪽 손이 기형이어서 손가락이 엄지와 검지밖에 남아 있지 않은 조막손이었다. 그 조막손을 연신 허공에 쳐들어 보이며 그는 쉰 듯한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 인도 노래가 들판 멀리까지 퍼져 나가다가 멈추고 다시 퍼져나갔다.
그 사이 달은 빠르게 들판 위 하늘을 가로지르고, 나는 유목민과 염소떼들과 함게 모닥불 옆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한 꿈을 꾸었다. 땅과 하늘의 구분조차 없는 막막한 공간을 나 혼자 방랑하는 꿈이었다. 시간마저 지워진 하얀 지평선을 향해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도 없고, 반향되어오는 메아리나 그림자도 없는 세계였다. 나는 다만 그 적막함 속에 홀연히 등장하여 하얀 지평선을 목적지 삼아 끝없이 걸었다. 그 끝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고 내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청년의 모습으로 방랑을 시작한 나는 어느덧 머리가 허연 노인의 모습으로 길 위에 서 있었다.
나는 청년시절에 추구하던 깨달음의 세계에 늙은 내가 도달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 노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때 노인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하얀 지평선도 일순간에 지워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어느새 아침이 찾아와서 또다시 동쪽 지평선에서 태양이 떠올랐다. 태양은 간밤에 들판 가득히 뿌려진 달빛을 모두 증발시켜버리는 듯 더 거대한 크기로 떠올랐다. 유목민들은 어느새 일어나 염소떼를 풀들이 자란 곳에다 방목하고 돌아왔다.
나는 다시 차를 얻어마시고 그들과 헤어졌다. 인도어에서 '손님'이란 단어는 '약속하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이란 아름다운 뜻을 갖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손님이었다. 하룻밤 머물고 떠나는 손님.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온 손님이 아닌가.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고서 왔다가 곧 어디론가 떠날 뿐이다.
내가 가방을 둘러메고 떠날 차비를 하자 소녀아이와 노인과 나머지 인도인들이 작별인사차 천막 앞에 나란히 섰다. 어떤 작별의 인사를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들도 일제히 네게 손을 들어 보였다.
나는 돌아서서 어제 걸었던 들판을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도회지에서의 헤어짐이란 더할 수 없이 간단하다. 작별인사를 나누고 현관을 나서거나 모퉁이를 돌아가면 끝이다. 그러나 들판 한가운데서 떠나는 나를 가려줄 현관문도 모퉁이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자꾸만 그들을 뒤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들판을 오십 미터쯤 걸어가서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그때까지 천막 앞에 나란히 서서 내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손을 들어 보이고 나서 걸음을 재촉했다. 백 걸음쯤 걸어가서 뒤돌아보니 여전히 그들은 그 자세로 서 있었다. 나는 다시 손을 흔들어 보이고 돌아서서 걸어갔다.
다시 백 걸음을 걸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변함없이 손을 든 채로 천막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야트막한 둔덕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서 뒤돌아보니 그때도 그들은 손을 들고 서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작은 점이 되어 시야에서 사라져버릴 때까지 졸곧 나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누가 내게 그토록 긴 작별의 손을 들어 보일 것인가.
나는 어제 가방을 걸어두었던 나무 밑을 지나 간이역 쪽을 향해 계속해서 걸어갔다. 내 등뒤에선 염소떼를 데리고 사는 그 유목민들이 영원히 나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고 서 있을 것만 같았다. 간이역에 도착해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손을 들고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이 내 눈동자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여기 중국의 현대작가 다이 호우밍의 글귀가 있다.
누구나 다 변해간다. 변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다. 저마다 '인간'의 재료에서부터 진정한 인간으로 변해간다. 다른 인생길이 다른 인간을 만들어내고, 다른 인간이 또다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어떤 길에나 인간이 있고 어떤 인간 뒤에도 길이 있다. 길에는 우여곡절이 있고 인간에게는 부침(浮沈)이 있다. 길은 서로 교차되고 인간은 서로 부딪친다. 그것이 인생이다.
[3] 겨울나그네 - 점치는 여인의 눈을 나는 보았다. (35~43쪽)
1
다른 행성에도 인간을 닮은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곳에도 내가 사는 이 행성과 마찬가지로 점치는 여인이 존재할까. 그래서 외계인들의 인생 과거를 쪽집게 처럼 알아맞추고, 신비한 눈빛과 어조로 미래를 예언하여 사람들을 섬칫하게 만들까. 외계인의 존재 여부에 대한 의문만큼이나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커다란 의문이다.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따금씩 그러한 것들을 궁금해 한다.
저마다 일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쯤은 계시의 순간을 맞이하듯 누구나 점치는 여인과 조우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는 그녀가 하는 말을 믿어야할지 어쩔지 망설인 적이 있으리라.
나 또한 그러한 순간이 있었다. 나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대학 졸업을 두어 달 앞두고 있었다. 그날 나는 어떤 일이 있어서 몇사람과 함께 이른 새벽에 학교 앞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저만치 앞에 한 여자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다가가서 보니 얼굴 화장까지 곱게 한 여자가 길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서 앉아 있었다. 나는 어른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녀에게 왜 그곳에 앉아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는 점치는 사람이며, 사람들의 점을 쳐주기 위해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아서, 지금이 새벽 다섯 시밖에 안 됐는데 누가 점을 본다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대뜸 나를 노려보며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당신 점을 보려구!"
그때 만일 내가 그 여자를 정신이상자 정도로 여겨 그냥 지나쳤다면 나는 삶의 신비에 대해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으리라. 나는 어떤 야릇한 기분에 이끌려 일행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여자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새벽점을 보기 시작했다.
왜 점치는 여인들은 다들 그러한 눈빛을 갖고 있는 걸까. 그들은 점치는 여인들만 사는 어떤 다른 별에서 이 행성으로 파견되어 오기라도 한 걸까. 어렸을 때 우리집에 가끔씩 들르던 마을의 미친 여자도 그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엇다. 한 번은 소풍을 가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그 미친 여자가 물통을 어깨에 두른 내 손을 잡고 마구 끌고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또다시 그렇게 소리쳤었다.
"넌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느냐? 왜 아직도 안 떠나고 있어?"
다른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미친 여자에게 손목이 잡힌 채 오월의 들길 쪽으로 끌려갔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그녀의 말이 기정사실화되어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2
"당신은 바람이야. 바람으로 이 세상에 와서 바람처럼 떠돌다가기 때문에 발 붙일 데가 아무 곳에도 없어."
그날 새벽 다섯 시에 길거리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던 점치는 여인이 바닥에 엽전 다섯 개를 휙 내던지며 내게 한 첫마디 말이었다.
"그러니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해. 집, 가정, 부, 친구, 명예, 평판,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이 허무에 지나지 않음을 보게 될 거야."
그 무렵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이제 세상 속에서 내 삶이 나아가야 할 바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었다. 나는 돈을 벌어야 했고 남들처럼 직장을 가질 생각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내앞에 나타난 한 점쟁이가 허무하기 짝이 없는 말들을 읊조리고 있었다.
그녀는 우선 내 지나온 과거의 일들을, 내 자신이 기억 못하던 것까지 밝혀냈다. 그리고 나선 앞으로의 내 인생행로를 세세히 말하기 시작했다. 결혼은 누구와 하게 될 것이고 아들은 언제 낳을 것이며, 내가 인도라는 나라에 가고 싶어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며 서른 살이 되어야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했다.
그 당시 나는 점술(占術)이나 예언 따위에 대해 별다른 믿음이나 이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여인이 하는 말을 대부분 건성으로 흘려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어리석게도 왜 그렇게 했을까. 훗날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떤 중요한 사건과 직면할 때마다 나는 여인의 예언이 적중했을을 알아차리고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나는 그녀가 예언한 대로 결혼을 했고, 그녀가 예언한대로 미국을 갔으며, 그녀가 예언한 대로 첫 번째 시집(詩集)을 냈다. 그녀가 예언한대로 사람들을 만났고, 그녀가 예언한 대로 겨울나그네처럼 정처없이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그 무렵 나는 아직 세상의 신비에 눈뜨지 못했을뿐더러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생의 초월을 꿈꾸고 있긴 했지만 동시에 생을 어떻게 살아나가리라는 설계 또한 굉장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제와서 그녀가 예언한 내용을 세세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후회해야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의 어떤 구절들은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다. 마치 그녀가 콩알만한 난쟁이가 되어 내 귓전에 달라붙어 따라다니면서 계속해서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당신은 내 말을 우습게 들으면 안돼. 당신이 어느 것에 집착해서 안주하게 되면 당신은 죽게 돼. 그것도 아주 외로운 섬에서 살다가 죽게 될지도 몰라. 아무도 당신이 죽은 걸 모를테구. 당신이 무엇에 집착하는 것은 자기의 입술에 입맞추려는 것과 같고 자기의 다리로부터 달아나려는 것과 같아. 하지만 당신은 이 세상에서 많은 걸 배우려고 왔어. 먼 훗날 당신은 인생의 큰 것을 깨닫게 돼. 그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해."
여인은 다섯 개의 엽전을 다시 땅바닥에 휙 내던지며 나를 노려보았다.
"당신의 머리를 믿지마. 당신은 가슴으로 살아가야할 사람이야 가슴을 잃으면 당신은 문학도 못하고 늙은 호박처럼 외롭게 쪼그라들어."
그 말이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마치 알 수 없는 어떤 세계의 빛에 세례를 받은 사람처럼 할 말을 잃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탓에 발이 저려왔다. 아침이 왔고 행인들이 부지런히 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일어서자 점치는 여인도 보따리를 싸들고 함께 일어서는 것이었다. 가려는 것이냐고 묻자 여인은 다시금 나를 노려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 점을 봤고, 이제 내 할 일을 했으니 돌아가야지."
그러더니 그녀는 나를 제치고 서둘러 행인들 속으로 떠나가버렸다. 나는 한참동안 그녀의 뒷모습을 쫓다가 일행과 함께 내 갈 길로 걸어갔다. 그것이 그녀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으며, 그 만남은 내 생에 일어난 신비한 일 중의 하나로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삶이 새롭게 시작되었음을 나는 훗날에야 알았다.
다시금 나는 진정한 겨울 나그네였던 나의 외할아버지가 떠나면서 내게 해준 말로 돌아온다.
"네 가슴을 잃지 말아라. 네가 가슴을 잃으면 잃는 것은 가슴이 아니다."
그 말은 어느 사이에 점치는 여인의 말과 더불어 내 삶의 변치않는 지침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몇 년 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점치는 여인의 예언에 따라 최초로 인도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3
1993년 8월, 나는 네 번째 미국 여행에서 돌아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정신세계를 담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만들었다. 그 책에서 체로키 족 인디언 작은나무(리틀 트리)는 마음과 영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마음의 하나는 육신의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것들과 관계된 것이다. 우리는 그 마음을 사용해 먹을 곳이나 잠잘 곳, 그리고 그밖에 우리의 육신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얻는 방법을 생가해낸다. 남녀가 짝을 짓고 아이를 갖는 등의 행위를 하는데도 그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생존해나가려면 당연히 그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일들과 전혀 무관한 또다른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마음, 곧 영혼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작은나무의 할머니 인디언은, 만일 우리가 육신의 삶을 담당하는 마음을 발달시켜 탐욕스럽고 천박스런 생각에만 몰두한다면, 또 만일 우리가 항시 그 마음을 통해 남을 공격하고 남에게서 물질적인 이익을 취할 방법을 계산하는 데만 몰두한다면... 그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우리의 영적인 마음은 히코리 열매의 크기로 쪼그라들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육신이 죽으면 우리 육신의 삶과 관계된 마음도 함께 소멸되어버린다. 그리하여 만일 당신이 평생동안 육신의 마음으로 삶을 이끌었다면 당신에게 남는 것은 히코리 열매만한 영혼뿐일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모든 것이 죽을 때 결국 살아남는 것은 영혼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 다음에 또다른 육체로 태어날 때 --- 모든 인간은 다시 태어나게끔 되어 있다 --- 당신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히코리 열매만한 영혼을 갖고 태어나게 된다.
만일 다시 태어나서도 육신의 삶과 관계된 마음이 여전히 당신의 인생을 지배하게 된다면 영혼은 다시 완두콩 크기만큼 쪼그라들어버리거나 아예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럴 경우 당신은 당신의 영혼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만다. 그 결과 당신은 살아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죽은 인간이 된다.
할머니는 우리가 죽은 인간들을 손쉽게 가려낼 수 있다고 하셨다. 죽은 인간들은 눈이 멀었기 때문에 여자를 볼 때도 추한 것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타인을 볼 때도 나쁜 면밖에 볼 줄 모르고, 나무를 볼 때도 아름다움은 잊은 채 목재로 여겨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이득밖에 볼 줄 모르게 된다.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세상을 걸어다니지만 사실은 죽은 인간이다.
작은나무의 할머니인 이 늙은 인디언의 말을 빌리면 영혼과 관계된 마음은 근육과 똑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자주 사용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다. 영혼을 크고 강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를 갖는 것뿐이라고 작은 나무의 할머니는 말한다. 그러나 당신이 언제까지나 육신의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계속하는 한 영혼으로 이르는 문은 열리지 않는다고.
다행히 영혼으로 이르는 문을 열었을 경우 이때부터 당신은 이해의 길에 들어서게 되며, 당신이 이해의 길을 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당신의 영혼과 관계된 마음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나는 앞으로 내가 눈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리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히코리 열매의 크기만한 영혼을 갖고서 삶을 살아가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할머니는 나의 영혼이 더욱 크고 깊어지게 되면 어느 날엔가 내 과거의 육신들이 거쳐온 삶의 과정을 남김없이 알게 될 것이며 차츰 육신의 죽음에 대해서 초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를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가슴을 잃어버리고 영혼이 히코리 열매만한 크기로 줄어들려고 할 때마다, 또한 내가 어떤 것에 집착하거나 안주하여 내 자신의 본성을 잊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다시금 이들의 말에 귀기울이며 이들의 세계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나의 외할아버지와 길에서 만난 점치는 여인, 그리고 늙은 체로키 족 인디언 할머니의 세계로.
[4]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풍경 (199~202쪽)
나는 아마도 전생에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아니었나 싶다.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풍경들을 구경했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늘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다.
오늘도 나는 산책을 나가서 동쪽 중산간 지대의 키 큰 삼나무들 사이로 바라보이는 풍경을 구경했다. 오랜만에 그림을 그려볼 양으로 화구(畵具)를 챙겨 나섰지만 봄햇살을 맞으며 막연히 돌무더기 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흡족했다. 가끔씩 오가는 허름한 차림의 농부들이 평화로움을 더해주었다.
많은 예기치 않은 일들이 찾아오는 것이 삶이긴 하나 시간의 흐름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 어느덧 나는 이 섬에 와서 한 해를 보냈다. 그러는 동안 저 나무들 사이로 많은 것들이 지나갔다. 그 중에는 눈에 보이는 것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차츰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의 자리를 가로채 버렸다.
지난 겨울에는 무릎까지 쌓이는 폭설이 내려서 저 나무들을 포함한 들판 전체를 온통 하얗게 뒤덮곤 했었다. 그럴 때면 눈밭에서 들쥐들이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 눈에 띄기도 했다. 나는 나무들 사이에 서서 들쥐들의 발자국을 헤아려보기도 하고 멀리까지 눈덮인 들판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어떤 계절이라 해도 일렬로 늘어선 이 삼나무들이 없으면 그 멋이 덜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종이 위에 나무들부터 그렸다. 그 다음에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들판과 돌무덤과 언덕빼기를 그려넣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이 해는 언덕 아래의 움막을 그늘에 잠기게 하고 그 대신 건너편 물웅덩이를 명랑하게 일깨웠다.
그림을 대충 끝내고 나서도 나는 나무들 사이로 바라보이는 풍경을 앞에 두고 한참동안 돌무더기 위에 앉아 있었다.
삶은 많은 요소에서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라고 요구한다. 멀리 있으면 안 된다. 더 가까이 오라. 그렇게 온갖 것들이 자신의 가치를 호소하고, 욕망은 그 대상에 더 가까이 가지 못해 아쉬워 한다. 그래서 욕망을 가로막는 중간지대의 장애물을 걷어내는 일이 누구에게나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나 또한 그런 위험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일은 중간지대에 나무들을 배치하는 일이다. 그리고는 그 나무들 사이로 내 욕망의 대상들을 바라본다. 나무들 사이를 지나가 그 대상에게로 다가설 순 있지만, 나무들이 있기에 무작정 달려가진 못한다. 한번쯤은 잠깐이라도 멈춰 서야 한다. 중간에 서 있는 나무들은 욕망의 풍경 속으로 내달리는 나를 잠깐이라도 멈추게 하고, 그 틈에 한번이라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사물은 때로 가까이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으나, 욕망의 대상은 오히려 거리를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나에게 일깨워주는 것도 그것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나는 한 달에 두세 번은 꼭 중산간 지대의 들판으로 걸어나가서 나무들의 풍경을 마주하겠노라고 마음먹는다. 그것은 내 마음에 평화를 주고, 때로는 한낮의 햇살 속에서 욕망이나 욕망의 대상이 사라진 세계로 나를 이끌어간다. 온전히 내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곳, 이름도 없고 언어도 없이 진정한 나의 세계와 마주할 수 있는 곳으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마주하고 서 있으면서 나는 인간이 자연과 본래의 관계로 다시 돌아가야 함을 일깨우는 것이 종교와 문학의 사명이라고 알게 되었다. 종교와 예술은 결국 내 자신속의 자연, 내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게 하는 '나무들 사이의 풍경' 같은 것이라고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없다. 사람들은 들판의 나무를 베어넘기듯이 욕망과 자기 자신 사이에 세워져 있는 방풍림까지 모두 다 베어버렸다.
마음이 한가롭지 못하고 듯없는 사념이 머리를 어지럽힐 때,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린 듯할 때, 그럴 때면 나는 오늘처럼 중산간 지대의 나무가 있는 풍경 속으로 산책을 떠난다. 산책은 나 자신을 만나러 가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산책의 끝에 이르러서는 들판의 돌무덤 위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나는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풍경과 하나가 된다. 그곳으로 하늘도 보이고 바다고 보인다. 흰 구름이 들판에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더없이 한가롭고, 내 본래의 모습에게로 다가서게 된다. 생의 한때에 찾아오는 충일함이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아마도 전생에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아니었나 생각해보는 것이다.
◉ [이문재 시인의 해설] 섬세함과 '파격'의 두 얼굴 (254~255쪽)
(전반부 생략)
그의 산문집은, 그의 시의 행간을 풀어 쓴 것에 다름아니다. 버려진 사람들, 낮은 삶,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곤충과 벌레들, 바람들, 등불(전깃불이 아니라), 아무도 걸어들어가려 하지 않는 깨달음의 길들을 그는 보고 있다.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관찰은 명상이고, 그의 명상은 이내 사라지고 마는 애틋한 존재, 풍경 같은 것들과 하나가 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의 글이 싫다. 그의 글을 가능하면 읽지 않으려고 애쓴다. 류시화도 나의 글은 읽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그의 글을 멀리 하려는 이유와 그가 내 글을 멀리 하려는 연유는 서로 다르다. 그는 내 글을 읽을 때 저러한 옛 생각들이 간섭해 못 읽겠다는 것이지만, 나는 사정이 다르다. 내가 그의 글을 기피하는 까닭은, 그가 나보다 늘 한 발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 이건 내가 썼어야 하는 것인데, 하며 나는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그의 글을 읽고 '분발'하던 열정도 사그라든 지금, 그의 글을 읽는 나의 심사는 참담하다.
류시화는 곧 중국과 티베트를 거쳐 또 인도를 다녀온다고 제주도에서 전화를 걸어 왔다. 내가 '날개도 없이' 현실로 추락을 하는 동안, 그 추락에 엄청난 가속도가 붙는 동안, 그는 현실 밖으로 나아갔다. 현실 안에서 현실을 이야기하며 밥을 벌고 있는 나에게, 현실 밖으로 나아가 현실을 이야기하는 그의 삶과 글은 그 자체로 충고이고 격려이다.
나에게 작은 꿈이 있다면, 저 노천극장에서 내가 '끌려 다닌 일'을 한번 복수하는 것이다. 거기에 다른 방법은 없다. 류시화로 하여금 '이거 괜찮은데'라며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는 시 한 편을 쓰는 일밖에 다른 수가 없다. 유일한 방법은, 무한한 가능성이기도 하지만, 더 없는 절망이기도 하다.
오래 살아야 한다. 아니 치열하게 살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