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페이지에서는 칼릴 지브란 관련 국내 논문 또는 국내 학술 잡지, 그리고 신문 기사와 잡지 기사 일부를 소개합니다. 그러나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아니며, 오래된 자료 일부를 일종의 아카이브(보관)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이 점 착오없으시기 바랍니다.
◉ 칼릴 지브란 관련 논문과 국내 학술 잡지
데이타베이스명 | 제목 | 저자명 | 발행사항 | 구분 |
석박사학위논문 | ‘칼릴 지브란’의 사상변천 硏究 : 작품 속에 나타난 사상을 중심으로 | 李鍾和 |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198702 | 학위논문(석사) |
석박사학위논문 | 칼릴 지브란의 작품에 나타난 저항정신의 변화에 관한 고찰 | 朴炯德 | 한국외국어대, 19830226 | 학위논문(석사) |
국내학술잡지 | 시인(詩人) 지브란 칼릴 지브란 연구 (145~160쪽 : 총 16쪽) | 임병필 | 지중해지역연구 제4권 제1호 | 지중해지역연구 제4권 제1호 (2002.02) |
국내학술잡지 | 영혼의 예언자 (pp.436-442) | 이종화 | 한국외대 중동연구 17,2 (특집호) |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1998.12.31 |
국내학술잡지 | ‘이주문학’ 연구 - 지브란 칼릴 지브란을 중심으로 | 趙熙善 | 인문과학연구논총 16호 (pp.319-354) | 명지대학교 부설 인문과학연구소, 1997.12.30 |
국내학술잡지 | 지브란 칼릴 지브란의 생애와 작품 세계 (총 27쪽) | 趙熙善 | 아랍어와 아랍문학, 제1호 | 1997.01. |
◉ 칼릴 지브란 관련 신문 기사
► 1997.05.28. : 칼릴 지브란 「예언자」
예언자(강은교 옮김) 아랍계 화가겸 철학자의 영문시… '현대의 성서'로 각광
'예언자'는 레바논 출신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한 시인 화가 철학자였던 칼릴 지브란(1883 ∼1931)이 영어로 기록한 산문시다. 사랑, 결혼, 베풂, 일, 우정, 집, 법, 이성, 시간, 종교, 죽음, 선악 등 근본적인 삶의 문제를 제기하고 또 이에 대답을 시도한 이 책은 '현대의 성서'라는 별칭에서 드러나듯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국내에선 1975년 연말 출간된 문예출판사의 번역본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책은 70년대 중반 국내 독서계에 칼릴 지브란붐을 불러 일으켰고, '눈물과 미소', '부러진 화살', '영혼의 거울' 등 지브란의 저서가 잇달아 번역 출간됐다.
가정적으로 또 국가적으로 아랍과 비아랍, 이슬람과 기독교, 레바논과 뉴욕 등으로 이질적 두 세계를 넘나들었던 저자는 글 속에서 특유의 이중적 세계관으로 독자들에게 시공을 초월하는 깊은 울림을 전한다.
'예언자'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것은 월간 '씨ㅇ·ㄹ의 소리'.이 잡지는 함석헌 선생의 번역으로 '예언자'를 70년대초 매달 부분부분 연재했다.
그후 잡지에서 '예언자'를 감명깊게 읽었던 문예출판사 전병석 사장이 그 글들을 단행본으로 펴냈다. 그전에도 정음사가 '세계시인선'을 통해 영문학자 유영 당시 연세대 교수 번역의 '예언자'를 선보였으나 별다른 호응을 얻지못하고 묻혀버렸지만 문예출판사의 새 번역본은 출간 직후 1만여권이 팔리는 빅히트였다. 요즘도 매년 판매량은 5천∼6천부정도.
"정음사의 번역본이 처음 나왔을 때 좋은 책인데도 팔리지않아 아쉬움이 컸다"고 밝히는 전사장은 "출판 기획에서 특히 유의한 점이 새 세대를 의식한 번역과 책 꾸밈이었다"고 회고한다. 젊은 감각의 번역에다 시인의 감성을 더하자는 의도에서 출판사측이 발굴한 번역자는 당시 연세대 영문과출신의 시인으로 대학원 국문과에 재학중이던 강은교(현재 부산 동아대 국문과 교수)씨였다.
표지그림은 당시 초상화그림 1인자로 꼽혀 박정희 대통령부부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던 '그림복제의 귀재' 이민환씨(미국거주)가 맡았으며, 책 중간중간에 화가였던 저자의 그림들을 수록했다.
번역자 강교수는 "그때 처음으로 번역 일을 맡고는 너무 기뻐서 동숭동 학림다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켰을 정도였다"면서 "번역하는 동안 줄곧 그 책을 껴안고 다녔고 원문을 외우는등 번역에 빠져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서로 사랑하라, 허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말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사이엔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우되 어느 한편의 잔만을 마시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는 고독하게 하라' 이와 같은 지브란의 결혼관이 그렇듯, 사물과 명제에 내재하는 상반되는 두 얼굴이 어우러진 저자 특유의 메시지는 젊은층뿐 아니라 새롭게 인생을 반추해보는 중년층에게서 폭넓은 호응을 얻어왔다. (문화일보 / 신세미 기자)
► 2000.08.28. : 예수와 마호메트 함께 품은 가장 급진적인 예언가
칼릴 지브란이란 이름은 묘한 울림을 남긴다. 꿈꾸는 듯 물기 촉촉한 큼직한 눈, 영적인 아우라를 퐁기는 그 남자 얼굴이 표지를 장식했던 '예언자'는 헤세의 '데미안'이나 카뮈의 '이방인'처럼 모든 것에 회의를 품었던 젊은 한 시절을 불러오는 주문같은 책이다.
성경을 제쳐놓는다면 20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꼽히는 '예언자'의 작가, '이상한 작은 책'을 쓴 이 아웃사이더를 말하는 전기 '칼릴 지브란' (수헤일 부쉬루이.조 젠킨스 지음)은 그 매혹적인 얼굴과 잠언으로 폐부를 찌르던 문구들에 사로잡혔던 독자들을 다시한번 그때로 데려간다.
칼릴 지브란(1883~1931)은 레바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죽은 시인이자 철학자이며 화가다. "가슴의 반쪽에는 예수를, 다른 반쪽에는 마호메트를 품고" 있었던 그는 이슬람의 수피와 그리스도교의 유산을 '인간 영혼의 신비함'이란 공통점으로 묶으려 했던 인물이었다.
지브란은 물질 세계를 대표하는 미국에서 자진해 사위어가며, 그 딴딴한 세계를 의미있게 만들고 그것에 품위를 부여하는 영적 생활을 전 인류가 누렸으면 하는 열망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다.
동양과 서양의 영적 전통을 문학적이고도 철학적으로 결합하려던 그의 야심은 '예언자'에서 낭만적인 열매를 맺었다. "나의 작품이 쉴 수 있는 이상적인 자리는 예수의 인격이다.
그의 생애는 인본주의의 상징이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항상 신비로움, 열정, 사랑, 상상력, 비극, 아름다움, 로맨스, 진실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지브란이 예수를 '폭풍'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인간의 자유를 질식시키려는 모든 굴레로부터 인간 본능을 해방해 영혼의 참됨을 회복시켜준 그 건강한 시각 때문이었던 거 같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를 닮은 이 '동방의 블레이크'는 인간이 걸어 갈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이고도 아름다운 길을 일찌감치 내다본 예언자였다. (한겨레 / 정재숙 기자)
► 2001.2.14. :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
누이에게, 연인에게, 그리고 어머니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서간집 세권이 최근 나란히 나와서 소개드립니다. <카프카의 엽서>(솔 펴냄/ 1만2천원), <칼릴 지브란의 러브레터>(명진출판 펴냄/ 8500원), <사랑하는 싱싱>(청아출판사/ 8천원)이 그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사랑하는 싱싱>은 어머니와 딸의 아름다운 우정을 보여줍니다. <사람아! 아, 사람아!>를 지은 다이호우잉은 딸을 하나 두었는데, 딸 다이싱은 미국에 유학가서 어머니를 그리며 중국으로 편지를 띄웠다고 합니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것입니다.
다이싱의 편지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해결해야할 문제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돈 문제, 버거운 공부, 갑작스런 결혼, 진로선택까지, 그가 겪는 고뇌는 유학간 한국인들이 겪는 고민과 다르지 않다고 보입니다. 한편 50대의 이 엄격한 어머니는 좀더 큰 안목으로 세상을 볼 것을 주문하지요.
이 책의 내용은 얼핏 필립 체스터필드의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를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체스터필드의 책이 “고상한 몸가짐을 익혀라”, “젊었을 때 이를 돌봐야 나이먹어서 편하다”는 실용적인 충고들이 주종을 이룬다면 다이호우잉은 “너희들은 중국을 발전시켜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중국의 희망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식으로 자식이 가져야할 이상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덧붙이자면 다이싱은 대학원을 다니면서 어머니에게 “지금 내가 이 나이에 이룬 성과와 엄마가 내 나이였을 때 이룬 성과를 비교하면 누가 더 나아요? 내가 더 낫죠?”라고 묻곤 했다고 합니다.대단한 자부심이지요. 이에 대해 다이호우잉은 “그래! 네가 더 낫다”고 격려했다는군요. 다이호우잉과 다이싱은 서로를 채찍질하고 존중하는, 투쟁적이면서도 생산적인 모녀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다른 따뜻한 가족관계를 보여주는 책 <카프카의 엽서>는 제목 그대로 카프카가 막내여동생에게 보낸 엽서를 모은 책입니다. 그는 주변 인물 중 막내누이를 가장 신뢰해서 사소한 문제도 의논하곤 했으므로, 이 서간집에서는 “인간적인 카프카”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또한 120통에 달하는 엽서를 추적해서 일일이 번호를 붙여 카프카를 탐구하고자 한 원 편집자 하르트무트 빈더의 집요함에는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위 두 책의 문체가 상대적으로 소박한 반면 <칼릴 지브란의 러브레터>의 문장은 휘황한 편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러브레터이기 때문이겠죠. 1883년 레바논에서 태어난 칼릴 지브란은 영어와 아랍어 양쪽에 능한 작가로, 영국과 파리, 미국에서 활동했습니다. 그에게는 1912년부터 20년 넘게 지극히 사랑한 연인, 마이 지아다가 있었으니 이 책은 바로 칼릴 지브란쪽에서 보낸 편지를 엮은 것입니다.
마이 지아다는 1886년에 역시 레바논에서 태어나 주로 이집트에서 활동하며 여성운동가이자 작가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집티언 메일>, <알-마루사> 등 신문에 서평을 쓰다가 칼릴 지브란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들의 연애편지에 호기심을 갖는 이유는 두 사람이 단 한번도 얼굴을 맞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미국과 이집트를 오가는 편지로만 유지되는 관계이기에, 칼릴 지브란은 종종 “어젯밤 제가 편지를 부쳐달라고 애걸하는 전보를 칠 뻔했다면 이해하시겠습니까?”라며 마이 지아다의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이 서신집은 단순히 마이 지아다에 대한 칼릴 지브란의 사랑편지가 아닙니다. 때때로 그것은 신에 대한 인간의 사랑, 문학에 대한 작가의 사랑을 호소하는 편지가 됩니다.즉 칼릴 지브란에게 있어 마이 지아다는 뮤즈였으며, 동양의 여신이었고, 인생의 다른 측면을 일깨워주는 영혼의 반쪽이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칼릴 지브란이 쓴 구절은 사랑에 대한 잠언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구절을 하나 적어볼까 합니다.
“오늘 저는 욕망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대 잠시만 제 감옥에 함께 있어주시겠습니까?”(칼릴 지브란)
이런 편지를 받는다면 웬만해선 저항하기가 힘들 것 같군요. / (인터넷 한겨레 / 이민아 기자)
► 2003.04.18. : [그림으로 읽는 책]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삽화가 빠진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상상할 수 있을까.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열림원)도 마찬가지다. ‘현대의 성서’라는 유명세 덕에 국내에 여러번 소개됐지만 이 책의 묘미는 그림에 있을 듯 싶다. 칼릴 지브란이 직접 그린 명상 그림들은 그의 탁월한 시와 너무나도 절묘하게 어울린다.
오르팰리스라는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서 열두 해를 기거해 온 철인 알무스타파는 이 마을을 떠나는 배를 앞에 두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진리를 말해달라는 청을 받는다. 사람들은 사랑,결혼,아이들,주는 일,먹고 마심,일,기쁨과 슬픔,집,옷,사고 팖,가르침,대화,시간,선과 악,기도,쾌락,미,그리고 죽음에 대해 물어본다.
예언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노래해 준다. 여성 예언자 알미트라가 결혼에 대해서 묻자 이렇듯 담백하게 말한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으니. 그리고 그대들의 자유는 족쇄에서 풀려나는 순간 더 큰 자유의 족쇄가되어 버리는 것을”. 그는 또 말한다. “그대에게 기쁨을 주었던 바로 그것 때문에 그대가 지금 울고 있음을”.
언뜻 예언자의 목소리는 이 시대에 전혀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기를 품에 안은 여인에서 노인,부자,여관주인,농부,석공,직공,상인,재판관,법률가,웅변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끝없이 갈등한다. 고통 속에서 철인의 말은 힘을 갖는다. 삶의 근원적인 진리를 전하는 예언자의 지혜와 통찰은 곧 철학자 칼릴 지브란의 메시지. 시인은 사랑과 고통,기쁨과 슬픔,삶과 죽음이 결국은 하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은 영혼에 눈뜨는 과정에서 비로소 살아있음을 깨닫는다고 인도한다. 시인은 앞만 보고 달리는 현대인이 간과해 버리는 ‘영혼’과 ‘감동’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는 슬프도록 고독하다. 그러나 그 뒤에는 무한으로 이어지는 힘이 암시되어 있다. 마치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 자궁 속에서 홀로 꿈틀거리며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할까. 예언자는 노래한다. 진리는 결코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고.
혼란한 시대에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칼릴 지브란은 사랑과 진리의 등대를 비춰 앞길을 밝혀준다. 우리 모두가 인생이란 무한한 바다를 떠돌다 맑은 영혼이 시작된 근원으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국민일보 / 화가 정은미)
► 2004.11.06. : [나를 깨운 이 한권의 책] '삶의 계명' 칼릴 지브란 '예언자'
"그대가 기쁠 때 그대 가슴 속을 깊이 들여다보라. 그대에게 슬픔을 주었던 그것이 오늘 그대에게 기쁨을 주고 있음을 알리라. 그대가 슬플 때 그대 가슴 속을 다시 들여다보라. 그대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그것으로 인하여 지금 그대가 울고 있음을 알리라."
학창 시절 윌리엄 터너의 그림을 어느 달력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28년 전 뉴욕의 한 책방에서 이 책을 만났을 때 나는 솔직히 칼릴 지브란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전(?)의 정도가 더 심했는지 모른다. 그날 이후 지브란의 대표작 '예언자'의 각 구절은 나 스스로에게는 물론 나의 가족 사이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계명이 되어 버렸다.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그대의 사랑은 주되 그대의 생각을 주지는 말라… 아이들의 육신과는 한집에 살되 아이들의 영혼과는 한집에서 살려 하지 말라. 아이들의 영혼은, 그대는 꿈에서조차 방문할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뉴욕에서 출산한 첫 아이가 불과 6개월 되었을 시기였다. 나는 1976년5월7일 어머니날에 맞추어 첫 아이의 이름으로 이 책을 아내에게 선사했다. 부모로서 우리의 일은 화살을 쫓아다니며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하는 대신 힘껏 몸을 구부려 멀리 높은 곳을 향하여 아이들을 쏘아 보내는 창조주의 일에 동참하는 것뿐임을 그때 일찍이 깨달았던 것일까.
그리고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외국생활을 하며 어려운 고비를 맞을 때마다 "그대의 포도주를 담은 그 잔은 도공의 불가마에서 태워졌던 바로 그 잔이 아니던가? 그대의 마음을 달래는 그 피리는 칼을 대어 구멍을 팠던 바로 그 나무토막이 아니던가" 등의 영어로 된 구절을 골라서 편지와 함께 보내주기도 했다.
이 책은 지브란이 40세 되던 1923년에 뉴욕에서 영어로 첫 출간되었는데 내가 구입한 것은 무려 92번째 판이었다. 지브란 자신의 작품인 열두개의 삽화들은 남녀의 벗은 모습들을 로댕의 조각과도 같이, 윌리엄 블레이크의 드로잉과도 같이 가장 신비스럽고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레바논 출신의 이민 1세 예술가 지브란은 보스턴의 헤스켈 여학교 교장인 10년 연상의 메리 헤스켈과의 결혼을 생각했으나 헤스켈은 이 결혼을 거절했고 그 대신 지브란이 48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그를 재정적.정신적으로 후원했다.
그래서였을까. 지브란의 '예언자'는 결혼에 대하여 묻는 알미트라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구속하지 말라. 함께 서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있지는 말라."
"바람 위에서의 잠시의 휴식, 그러면 또 다른 여인이 나를 잉태하리라"고 한 '알무스타파'의 마지막 예언은 지금 이 순간도 정말로 나를 깨어나게 한다. (경향신문 / 김국주 제주은행장)
► 2008.04.10. : [오늘의 책] 예언자 ( 칼릴 지브란 / 열림원)
1931년 4월 10일 <예언자>의 시인이자 화가인 칼릴 지브란이 뉴욕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48세였다. 사인은 간경화와 결핵 초기 증세, 독신으로 살았던 그가 술로 외로움과 육체의 고통을 달래려 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는 레바논 태생이다. <예언자>에는 그 영향이 짙다. 12살 때 가족과 미국 보스턴으로 이민 갔던 지브란은 이후 귀국과 미국행을 반복하며 아랍과 서구, 이슬람과 기독교, 조국의 고대 예언자의 세계와 현대 물질문명의 이질성을 넘나드는 체험을 한다. 25살 때는 파리로 가 2년 동안 미술 공부를 하며 로댕을 만났다. 그의 유해가 레바논으로 돌아갔을 때, 베이루트 항에는 개항 이래 최대의 인파가 그들의 나라가 낳은 천재를 조문하기 위해 몰려들었다고 한다.
지브란이 1923년 영어로 발표한 <예언자>는 흔히 ‘20세기에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 혹은 ‘현대의 성서’로 불린다. 그가 15살 때부터 구상해 25년 만에 완성했다는 책이다. 오르팰리스라는 가상의 성을 떠나는 예언자 알무스타파가 여자 예언자 알미트라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본 모든 것’을 결혼, 아이들, 일, 슬픔과 기쁨, 종교, 죽음 등 26가지 주제로 나눠 이야기한다. 지브란은 시공에 관계없이 인류에게 공통적인 삶의 지혜를 절제된 표현, 깊은 비유의 산문시 형식에 담았다.
<예언자>는 한국에서도 1960년대부터 사상가 함석헌, 시인 강은교 등 많은 역자에 의해 수십여종의 번역본이 나왔다. 1970년대 말 이 책이 한창 베스트셀러일 때 기자가 읽었던 건 누구의 번역이었는지도 잊었지만 “사랑하라, 그러나 서로 구속하지는 말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에 일렁이는 바다를 두라”는 구절만은 지금도 입에 맴돈다. 시인 류시화 번역의 열림원 판(2002년)은 최초로 지브란의 그림을 수록한 번역본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성화 혹은 로댕의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담박한 수채화들은 지브란의 글과 그림이 하나임을 보여준다. (한국일보 하종오 기자)
◉ 칼릴 지브란 관련 잡지 기사
► 2000.02.21. : 칼릴 지브란의 <방랑자> 시대를 초월한 영혼의 목소리
누추한 과거는 늘 예견하지 못한 틈새 사이로 화들짝 다가오게 되어 있다. 그날도 책방을 어슬렁거리다 이상한 낌새의 책 3권을 한꺼번에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칼릴 지브란의 <방랑자>를 보는 순간 나는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에 직면했다. 그것은 짝사랑하던 여자를 들킨 기분에 비견될만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로 크게 알려져 있다. 그 책은 대체로 1960년대 함석헌이 <씨알의 소리>에 번역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대중의 폭발적인 환호를 받기 시작한 것은 정작 76년 강은교 시인의 번역으로 문예출판사에서 출간하면서부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이 잠언집 비슷한 것을 처음 접한 기억이 있는데, 그것은 순전히 그때의 풍토, 그러니까 당시 극성스럽게 유행하던 연애 편지 쓰기때문이었다.
어떤 강요에 의해 마치 <신곡>을 처음 읽을 때의 씁쓸한 기억처럼, 거의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자기가 ‘찍은’ 여학생의 마음을 기필코 돌려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브란의 원래 경구에 쓰인 어휘들을 살짝 개칠하면서까지 밤새워 편지를 쓰던 기억은 이제 음화의 흉물스러움으로 퇴색해 있다. 너무 가파른 시간의 퇴적이 많은 것을 잡아 삼켜버렸다.
그리고 그 책은 다시 이상한 인연에 의해 빛 바랜 시렁 속에서 꺼내졌는데, 그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은 문학에의 열병 비슷한 것 때문이었다. 정확하게 군대 시절로 기억되는 80년대 초 문학이라는 신열에 시달리던 내게 그의 경구들은 말 그대로 이상한 마력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연애 편지를 쓰기 위해 차용하던 그때의 그것들과 달리 좀 심각한 인생의 문제들로 나와의 대화를 요청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대화의 내용은 대체로 지금 생각하면 허망하고 가소로운 것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죽음과 삶, 영혼과 육체, 사랑과 증오, 선과 악, 부와 가난 같은 쉽게 이겨낼 수 없는 아주 난삽한 주제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시적인 비유와 잠언투의 메타포는 그 자체로 맑은 영혼을 위한 시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울한 한 실존의 자기 최면을 위한 방향제가 되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최면의 바다였다. 안개 속 실존의 피난처를 위한 최대의 위안이 그의 아포리즘 속에 빽빽히 들어차 있었다고 하는 것이 적당한 표현이 될 것이다.
이번에 책방에서 들켜버린 그의 목소리가 다시 재현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적 풍요와 값싼 허무, 마니아와 댄디적 패션이 젊음의 감성을 사로잡고, 삶은 항상 가볍고 개그적인 것들로 가득차 있는 이 시대에 그의 언어들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발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아마도 그런 시대적 정서를 역으로 추산한 출판 기획의 발상이 작용할 수도 있긴 하겠다.
진리는 영원할 수 있다는 믿음은 모든 지적인 관심의 근본이 되어야 할 터이다. 지브란의 목소리가 가난한 젊은 영혼에게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흡수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그것은 그의 산문시 혹은 우화시 형태들이 내포하고 있는 기묘한 울림 때문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울림은 어떤 교훈을 줄 만한 우화의 형태로 혹은 시적인 비유가 묻어나는 높은 단계의 인간 정신에 대한 강조로 수렴된다. 영혼에 대한 시인의 집착은 자신의 삶이 그림자 지워준 현실의 누추함에 대한 반작용이나 승화로부터 기인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데, 그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여린 감성의 젊음들에게는 의지할 만한 경구가 될 수도 있다. 그 경구로 채워진 메타포를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다시 접해볼 수 있는 기회를 하나 얻었다. (뉴스메이커 / 신철하 문학평론가)
► 2000.06.05. : "나 정형근, 전혀 다른 정형근!"
'정형근 형은 언더그라운드에서도 재야다.' 80년대 활동했던 가수 고 김현식은 이런 말을 했었다. 물론 국회의원 정형근씨를 두고 한 말은 아니다. 김씨가 말한 정형근(55)씨는 가수다. 79년 공무원 생활을 그만 두고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올해로 음악활동이 스무해를 맞았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87년 오랫동안 준비해 발표했던 1집 앨범 <호수에 던진 돌>이 '창법 미숙'이라는 어이없는 이유로 금지곡이 된 바람에 그의 활동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까지는 4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정씨는 이번에 2집 앨범 <I’m your Fool>과 함께 20년 음악활동의 결산이라고 할만한 두 장짜리 CD를 발표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노래한 <Prophet>가 그것이다. 이 음반에는 '사랑에 관하여', '결혼에 관하여', '기쁨과 슬픔에 관하여' 등 28개의 주제가 영어 가사로 담겨 있다.
"76년 함석헌 선생이 번역한 <예언자>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음악활동을 시작하면서 이 책을 음악으로 만들기 시작했어요. 제작한 데모 테이프만도 수십개가 될 겁니다."
포크 가수인 그는 처음에는 우리말 가사와 포크 스타일로 작곡했다가 만들어 놓은 곡을 모두 엎었다. 84년 백남준씨의 비디오 퍼포먼스 공연을 본 직후였다. 이후로 그의 음악은 아방가르드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예언자>는 그의 아방가르드적인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전세계의 민속악기와 테크노, 힙합같은 90년대의 음악적 스타일이 파열음을 일으키고 영어로 읊조리는 노래는 퍼포먼스를 연상시킨다. 전위적 실험성 때문에 그는 결국 제작사를 구하지 못했다. 녹음에서 믹싱, 앨범 자켓 디자인은 물론 음반을 찍기까지 전 공정이 그의 손을 통해 이뤄졌다. 유통 역시 인터넷(www.prophetsong.com)을 통해 그가 직접 주문받아 판매한다.
“세상의 본질적인 문제들은 천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겁니다. 제 음반은 다음 세대들이 세상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예습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지금 인기를 얻거나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에 가치가 있는 음악을 만드는 거예요.”
음반과 함께 시집 <개 잡아먹는 법>도 발간한 정씨는 오는 8월26일부터 시집과 같은 제목의 콘서트도 연다. 공연이 끝나면 노자의 <도덕경>을 음악으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김은형 기자>(한겨레21 제312호)
► 2000.09.04 . 부꾸 (서평 전문 웹진) : 지브란의 삶과 사랑, 사상을 담은 평전
영혼의 위로자이며 치유자였던 칼릴 지브란. 그는 20세기의 예언자로 불린다. 이 책은 지브란에 대한 10년간의 연구의 결실로 최초의 권위 있는 평전이다. 지브란은 「예언자」라는 그의 책을 통해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에 대한 소개는 많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지브란의 모든 것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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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2000/09/04] 1883년 오토만 투르크 치하의 레바논에서 태어난 지브란은 12세에 미국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48세라는 길지 않은 삶이었지만 그가 끼친 영향은 '신화' 또는 '전설'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다.
20세기의 예언자 지브란
시인이자 철학자이며, 또 화가로서 살았던 지브란은 우리에게 「예언자」로 알려져 있다. 「예언자」는 서양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는 책이며, 지브란 숭배자만도 미국에서 500여 만 명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아랍 세계에서는 동시대의 천재로 인식되었고, 서양에서는 그의 작품이 블레이크, 단테, 타고르, 니체, 미켈란젤로, 로댕의 작품과 비교되었다. 이는 동양출신으로 유례없는 평가였으며, 그의 작품 「예언자」는 엘리어트와 예이츠에 이어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집이다.
이토록 그의 작품이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단편적으로 말한다면 그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영성과 물질주의, 동과 서를 결합한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지브란 스스로도 "가슴의 반쪽에는 예수를, 다른 반쪽에는 마호메트를 품고 있다"고 말하고 있듯이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동시에 이슬람 문명의 보편적 인간상을 상징하기도 하는 '알무스타파'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훌륭히 표현했다.
이 책은 지브란의 생애를 관통하는 영성적 관점, 신비주의적 입장과 더불어 그가 지나온 정신적인 순례의 과정을 소상히 밝혀낸다.
지은이인 수헤일 부쉬루이 교수는 최고의 지브란 권위자로 현재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칼리 지브란 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지브란에 대한 거의 모든 자료를 집대성하고 10년간에 걸친 연구의 결실이라는 데서 이 책이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겠다.
니체와 지브란
지브란은 젊은 시절의 작품인 「계곡의 님프」「반항하는 영혼」등의 작품에서 권력과 돈에 집착하는 교회와 정부를 비판했고, 모든 형태의 불의와 극단주의, 제도화된 폭력을 비판했다. 그는 '반항하는 정신'이 되었고, 남녀 사이에 존재하는 사악한 불평등, 종교적 극단주의와 봉건주의 등 전통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 끈질기게 싸웠다.
이는 지브란이 니체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지브란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를, 또 윌리엄 블레이크로부터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요즘 니체가 부활하는 사상적 풍토에서 지브란의 삶과 사상을 그 연장에서 읽을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이 주는 숨은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지브란이 환경 또는 자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브란이 "우리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서로 의지하고 산다" 또 "인간의 몸과 환경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듯이 인간의 운명이 우주의 운명과 연결된다는 그의 사상은 큰 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지브란의 삶에서 동행했던 여인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루지 못한 젊은 시절의 할라와의 사랑, 지브란을 '지브란'으로 만들었던 메리 하스겔, 미모의 여류시인 J. P 피바디와의 만남, 지브란의 모델이 되었던 미셸린, 영적으로 하나가 되었던 아랍 여성 마이 지아다 등.
평전을 읽는 즐거움은 그 사람의 모든 영역을 큰 그림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지브란의 생애와 작품 그리고 사상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지브란의 작품과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지브란에 관심 있는 초보독자들에게는 안내서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며, 작품으로만 대했던 독자들은 지브란의 전체적인 모습을 통해 새롭게 지브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조성길 기자)
► 2001.02.08. 부꾸 (서평 전문 웹진) : 얼굴 한 번 보지않고 사랑할 수 있을까?
얼굴 한 번 마주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을까? '예언자' 칼릴 지브란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랍어권 여성 문필가이며 여성해방운동가인 마이 지아다에게 보낸 러브레터들인 동시에 그 자신의 생각들을 온전히 드러낸 한 권의 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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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 지브란의 러브레터
그대여,
무엇보다도 멋진 일은
그대와 나,
늘 손에 손을 잡고 거닐고 있다는 것,
타인들이 알지 못하는
경이롭고도 아름다운 세계 속을.
우리는 둘 다 손잡지 않은 다른 한 손을 뻗어
그 손을 통해 삶을 빨아들입니다.
삶은 이만큼이나 넉넉한 것입니다
(칼릴 지브란의 시 '그대여, 무엇보다도 멋진 일은' 중에서)
나의 벗 마이에게
이 책 「칼릴 지브란의 러브레터」(칼릴 지브란 지음·명진출판 펴냄)에서 '러브레터'라는 단어에 홀려 열렬한 애정의 표현으로 가득찬 러브레터를 상상한다면 예상은 좀 어긋날 것이다. 이 책은 한 순간 불타올랐다가 사그러든 그런 사랑의 기록이 아니다. 칼릴 지브란이 아랍어권 여성 문필가이자 여성해방운동가인 마이 지아다에게 보낸 편지글 모음이다.
그들의 묘한 관계는 얼굴한 번 마주하지 않은 채 무려 20년 간 지속되었다. 플라토닉한 사랑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걸까?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들은 편지를 통해 여러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의견, 삶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었다. 지아다의 글에서 생각이나 문체가 지브란의 흔적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말들에 대해 지브란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모든 영혼은 독립이라는 지점을 향해 가고 있으며 참나무와 버드나무가 서로의 그늘 아래서는 자라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으니 문득 섣불리 평가하기 조심스러워 진다.
그러나 두 사람은 오랜 동안 생각을 나누었기에 그들의 글 속에서 공유의 지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그들은 사랑을 나누었다기 보다는 삶을 나누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듯 하다.
멀리 있기에 더 선명한 사람
편지글 곳곳에서 지브란이 자신의 글과, 인생 그리고 명성 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또 한편으로 지브란은 그녀가 오랫동안 자신의 편지에 답하지 않음을 한탄하고 조바심내기도 하고 그녀가 오래간만에 보낸 편지에 덜렁 시 한편만이 적혀있음을 불평하며 자신도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하겠다고 하는 등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웃음짓게 한다.
'그들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고 직접 서로를 만나지도 못했는데 과연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지브란의 말로써 대신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산속에 사는 사람보다는 계곡을 지나는 이에게 산이 더 영감을 주고 분명하게 보이지 않던가요?"
자신을 7천길의 깊이와 7천길의 넓이의 인생의 잔을 가졌기에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자아를 깨우칠 수 있는 선각자로 인식했던 지브란은 그녀 지아다를 자신과 같은 부류의 인간으로 생각했다.
그에게 무엇보다 멋진 일은 한 손으로 받아들인 삶을 그녀와 맞잡은 다른 한 손으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칼릴 지브란 특유의 명상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으로 쓰여진, 그의 삶과 사랑이 녹아있는 문장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김현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