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릴 지브란의 삶과 여성
칼릴 지브란의 생(生)과 그의 작품은 여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가 만났던 모든 여성들은 그를 사랑했고 그에게 헌신하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여자 친구였던 바바라 영은 자신을 포함하여 그를 알았던 모든 여성들이 그를 ‘맹목적’으로 사랑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 특히 어머니와 여동생 또한 지브란의 작품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가족 외의 여성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칼릴 지브란과 인연이 있었던 여성들은
⑴ 지브란이 레바논에서 공부할 때 만났던 고향 처녀 할라 알-다히르(Hala El-daher),
⑵ 지브란에게 끊임 없는 도움을 주었던 메리 헤스켈(Mary E. Haskell),
⑶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인 에밀 미셸(Emile Michel),
⑷ 레바논 출생으로 이집트에서 활동하던 여성 작가 마이 지아다(May Ziadah),
⑸ 지브란의 마지막 7년 동안 헌신적으로 그를 도왔던 바바라 영(Babara Young)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Emile Michel(애칭으론 미슐린 Micheline)에 대해서는 자료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일부 전기 작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Michel은 메리 헤스켈 학교의 프랑스어 교사로 젊고 아름다운 프랑스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지브란과 깊은 관계를 맺고 결혼까지 생각했으나, 지브란의 거부로 이루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Hala El-daher는 『부러진 날개』의 주인공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지브란 자신은 그녀와 『부러진 날개』의 연관성을 직접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아래에서는 에밀 미셸(Emile Michel)과 할라 알-다히르(Hala El-daher)를 제외한 메리 헤스켈(Mary E. Haskell), 마이 지아다(May Ziadah), 바바라 영(Babara Young)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 칼릴 지브란과 메리 헤스켈(Mary E. Haskell)
1910년경 사실 메리 헤스켈(M.E.H)과 지브란의 관계는 널리 알려져 있기에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내에서 지브란과 그녀의 러브레터를 묶은 책들을 보면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정은하 엮음, 진선출판사), [사랑은 자유하는 삶입니다](정은하 옮김, 진선출판사), [하나의 노래가 되어 하나의 침묵이 되어](김인환 옮김, 늘푸른집, 1990), [당신의 그림자이고 싶습니다](권영선 옮김, 카나리아, 1991),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너무 작습니다](이순미 옮김, 예지원, 1991), [고독속에는 더 많은 공존이 있습니다](최진 옮김, 평단문화사, 1990), [들리지 않는 가락이 고요 속에 있습니다](정희수 엮음, 을지출판사, 1990) 등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까지 출판되고 있는 책은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정은하 엮음, 진선출판사)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추측컨대 저작권 문제인듯 합니다.
메리 헤스켈은 지브란보다 나이가 많은 연상의 여인으로 1904년 열렸던 지브란의 그림 전시회를 참관한 후 그의 예술과 천재성을 사랑하여 평생 그를 돌보아 준 여인입니다. 그녀는 한 여자 고등학교의 교장이었으며, 지브란이 미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파리 유학을 재정적으로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브란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데 힘썼습니다.
1910년 보스턴으로 돌아 온 지브란은 메리 헤스켈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심정으로 메리에게 청혼하였으나 메리는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이로써 지브란은 메리 헤스켈에 대한 부담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나 그녀와 플라토닉한 사랑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지브란은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를 '하늘', '천사'로 부를 정도로 그녀에 대한 고마움을 항상 간직하였습니다. 그는 죽기 전 메리 헤스켈을 자신의 유산 관리인으로 정하였고, 그 결과 지브란이 그린 대부분의 그림을 후에 메리 헤스켈이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생전에도 지브란은 그녀의 헌신적 사랑에 답하고자 [부러진 날개], [눈물과 미소] 등의 작품을 그녀에게 헌정했습니다.
△ Mary Haskell (종이에 연필로 그림, 1908년).
► 칼릴 지브란과 마이 지아다(May Ziadah)
마이 지아다(메이 지아다, May Ziadah)와 칼릴 지브란의 관계는 메리 헤스켈과는 다릅니다. 지브란과 그녀는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채 서신으로 서로의 예술과 문학을 존경하며 사랑을 나누던 관계였습니다. 국내에서 이들의 관계를 다룬 책은 [내 영혼 가장 가까이에 그대가 있습니다](이태학 엮음, 도서출판 태명), [칼릴 지브란의 러브레터](수헤일 부쉬루이 엮음, 명진출판) 등이 있습니다.
지브란과 마이 지아다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1912년 지브란이 [부러진 날개]를 출간한 이후부터입니다. [부러진 날개]로 지브란이 아랍 세계에서 명성이 높아지자 마이 지아다의 눈길을 끌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이 지아다는 금세기 아랍어 문학계에서 가장 뛰어난 여성 작가 중의 한 명입니다. 1886년 팔레스틴의 나자렛 근처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생의 대부분을 카이로에서 보냈으며, 그곳에서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운동에 깊이 관여했으며, 1941년 카이로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 인용글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 중 310-311쪽 :
"지브란과 May Ziadeh의 관계는 M.E.H와는 다른 것이다. 지브란은 M.E.H를 지식의 동반자이며 사랑스럽고 따뜻한 영혼의 소유자로 생각했다. 그녀에 대해 감정이 격해질 때조차도 기본적인 느낌은 그녀가 그에게 베풀어 준 친절과 후원에 보답할 방도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감사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지브란과 May Ziadeh의 관계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비록 그들의 사랑이 영적이며 플라토닉한 요소를 포함하긴 했지만 뭐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결코 얼굴를 마주 대할 수 없는 운명의 지브란과 May는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 갔으며, '신적 자아', '푸른 불꽃', '변함없이 타오르면서 변화시켜가지만 변화되지는 않는 초월적 요소'를 향해 나아갔다."
► 칼릴 지브란과 바바라 영(Babara Young)
바바라 영은 지브란의 마지막 7년 동안 헌신적으로 지브란을 도왔던 여인입니다. 영어 교사로 책방을 경영하던 그녀는 지브란의 임종을 지켰으며 후에 그의 유품을 고향 Bsharri로 보내는 역할을 떠맡았습니다. 그녀는 1944년 지브란의 전기 [레바논에서 온 사람(The Man From Lebanon)]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으며, 지브란의 유고를 모아 그의 마지막 작품집이 된 [예언자의 정원(동산)]을 출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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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바바라 영은 [예언자]의 낭송을 듣고 지브란에게 찬탄을 표현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녀는 스튜디오로 와서 시에 관해 토론도 하고, 그림들도 감상하라는 그의 친절한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갔다"고 그녀는 쓰고 있습니다. "그 넓은 웨스트 텐스(West Tehtn) 가(街) 건물로. 그리고 네 개의 층계를 올라가 그 곳에서, 마치 우리가 진정 오랜 친구인 양, 미소지으며 나를 환영하는 그를 발견했다."
바바라는 지브란보다 키가 컸고, 밝은 안색에 몸매가 아름답게 잡힌 여자였습니다. 그의 가족은 영국 데본(Devon)의 비드포드 출신이었습니다. 그녀가 네 개의 층계를 올라갔던 그날 이후 그녀는 평생 동안 지브란에 관한 강연활동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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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동안 얼마나 가까운 관계가 지속되었는가는 바바라의 글에서 발췌한 내용으로부터 부분적으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바라는 결코 지브란과 함께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녀는 뉴욕시에 자신의 아파트를 갖고 있었습니다. 바바라에 따르면,
『어느 일요일, 지브란으로부터 초청을 받고 스튜디오로 갔다. 지브란은 글을 쓰고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지브란이 시를 쓸 때는 대개 마루를 오락가락 하다가 다시 앉아 한두 줄 쓰곤 했다.
나는 그가 쓰다가 일어나 걷곤 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내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가 다음번에 일어나 걷고 있을 때, 나는 그의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그의 연필을 들었다. 그가 돌아섰을 때, 그는 그곳에 있는 나를 보았다.
"당신은 시를 지으세요. 그러면 제가 그것을 받아쓰겠어요."
나는 말했다.
한참 동안 사양하다가 지브란은 그렇게 하기로 동의했다. 그는 그같은 경험을 즐거워했다.
"이제, 당신과 나는 함께 일하는 두 시인이오."
그는 말을 중단했다. 잠깐 동안 침묵한 후, 그는 말했다.
"우리는 친구요. 나는 당신으로부터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도 내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이 후 바바라와 지브란은 함께 일했고, 바바라는 지브란의 사고방식과 작품에 익숙해짐에 따라 그때부터 지브란에 관한 책을 쓸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 자료참조 : 『신부의 침대(원본 : The Treasured Writings of Kahlil Gibran)』 (홍성희 옮김, 知文社, 1990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