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릴 지브란의 작품 세계 (1/5) : 조셉 P.구가시안
※ 출처 :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게는 우는 날이 많았습니다』 중 113-118쪽 (문학수첩 / 1994년 11월 26일 발행 / 서정윤 엮음)
칼릴 지브란의 작품 세계
지브란은 다양한 문학 형식을 통해서 자기 사상을 표현했고, 시집, 격언집, 짧은 희곡, 비유, 수필, 소설 등 많은 책을 저술했다.
지브란이 작가로서 제일 먼저 주는 인상은 '조직'이라고 하는 모든 것에 대해 실망하고 또 거기 저항하는 젊은이라는 점이다. [반항하는 정신]은 파리에서 공부하던 1903년에 아랍어로 쓴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이 만든 사회의 법은 물론이고 교회의 제도화된 법도 개인의 자아 확립을 위한 발전을 방해하기 때문에 부패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항하는 정신]은 출간이 되자마자 베이루트의 중심가에서 불태워졌다. 지브란을 마론파 카톨릭교회가 파문했고, 터키 제국의 관료들은 레바논에서 추방했다.
그러나 1908년 니야지의 지휘 아래 '젊은 터키인들'이 압둘 하미드 2세 술탄을 타도하고, 새로운 정권을 수립했으며, 지브란을 포함해서 추방당한 사람 전체를 사면했다. 그때 지브란은 파리에서 오귀스뜨 로댕과 함께 그림 공부를 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내놓은 소설이 [부러진 날개](1912)다. 지브란은 "이 책이 나의 저서 가운데 최고의 작품이다"라고 기록했다. 최고의 작품이라는 말에는 전적으로 찬동할 수 없지만, 걸작이라고 인정할 수는 있다. [예언자]가 아직 출간되기 전이기 때문이다.
지브란이 서술한 이야기는 자서전적인 내용이다. 레바논에서 공부할 때 만난 자신의 첫사랑 할라 다헤르 양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다헤르 양의 아버지가 반대해서 결혼이 성사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을의 주교가 방해를 놓았기 때문이다. 주교는 다헤르 양과 그 아버지의 의사를 힘으로 누르고는 자기 조카와 결혼하라고 명령했다. 그 조카는 무책임한 청년이었고, 주교는 다헤르 집안의 재산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어쨌든, [부러진 날개]는 영화화되었다.
[눈물과 미소](1914)는 인간 존재가 기쁨과 고통이라는 두 가지 형이상학적인 곤경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이라고 운문시와 산문시를 통해서 주장한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인간의 차원을 표현하고, 인간 존재의 핵심을 이룬다는 측면에서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삶은 '눈물'임과 동시에 '미소'다. 눈물에는 내면적이거나 외면적인 동기가 있다.
사랑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르고, 장미에는 반드시 가시가 있으며, 쓴맛의 잔으로 물을 마신 다음에 비로소 영혼이 행복을 맛본다. 하여간, 인간의 사람이 기쁨과 우정과 행복을 전혀 모른다고 하는 말이 오류이듯이, 정신적 긴장이 전혀 없는 세상을 원하는 것도 망상이라고 이 책은 제시한다.
지브란은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를 많이 모방했고, 이 책의 전반적인 색채는 오히려 블레이크의 시와 비슷하다.
나이 35세가 되던 1918년에 지브란은 명상의 결과를 [행렬]에서 총정리했다. 이 [행렬]은 아랍어로 쓴 시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젊은이와 노인의 대화로 되어 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지혜로운 노인은, 만일 자기에게 젊음이 주어진다면, 대자연 속에서 마음것 자유롭게 뛰어다니겠다고 맹세한다.
이 작품은 선천적으로 선한 인간 본성을 문명이 나쁜 충동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서 형성시킨 썩은 본성과 대조한 장 쟈크 루소를 연상시켜 준다.
영어로 발표한 지브란의 첫 작품은 시와 비유를 모은 [미친 사람](1918)이다. 여기서 니체의 영향이 지브란의 문체에 나타난다. 니체와 마찬가지로, 지브란은 비유를 통해서 말한다. 지브란은 미친 사람도 차라투스트라처럼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고함'을 친다. 차라투스트라의 외침은 신들의 죽음의 선언이었다. 그러나 지브란의 미친 사람은 신들의 죽음을 선언하지 않고, 창조에 관하여 인간과 신 사이의 협력 관계를 강조한다. 책갈피를 넘기면서 우리는 역설과 냉소의 태도가 점점 노골화되다가 마지막 비유인 '완전한 세계'에서 그 절정에 이르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된다. 이 글은 '타락한 영혼들의 어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위선적 형태를 다시 한번 단죄한다.
[선구자](1920)를 발표함으로써 지브란은 더욱 신비롭고, 더욱 완숙한 철학자의 면모를 과시한다. 이 작품의 제목은 비유를 통해서 전달하는 지브란의 철학 사상에 적합한 것이다.
[예언자]는 지브란의 최고 걸작으로서 독자들에게는 제2의 성서가 되었다. 사제들도 미사 때 이 책을 기꺼이 인용한다. 예를 들면, 제임즈 캐버너는, 카톨릭 신부로 있을 때, 혼배미사를 집전하면서 미사경본의 구절 대신에 [예언자]의 구절을 사용했다.
이제 우리는 지브란이 [예언자]에 관해서 오랫동안 구상을 하고, 세 번이나 고쳐 썼다는 사실을 안다. 최초의 원고를 지브란은 15세 때 썼다. 20세 때에는 아랍어로 다시 고쳤다. 그리고 중병에 걸린 자기 어머니에게 그 원고를 가지고 가서, 자기가 젊은 알무스타파(희곡의 주인공)에 관한 글을 썼다고 말하면서 낭독해 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들을 친절하게 돌보아온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지브란아, 참 잘 쓴 글이다. 그러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우니, 치워 두어라."
지브란은 그 말에 복종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의 풋내기 젊음에 관해서 나보다도 어머니가 훨씬 잘 알고 있었다."
그후 1917-1922년 사이에 세 번째로 수정하여 드디어 1923년에 출판했다. 지브란의 작품 가운데 특히 [예언자]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문체를 고스란히 모방한 것이다. 그러나 알무스타파는 인간의 능력에 관해서 냉소하고 비관적인 차라투스라의 철학을 조금도 닮지 않았다.
[예언자의 정원]은 인간이 대자연과 맺는 관계(움벨트)를 분석한다. 그리고 '환경'과 '환경 문제'를 과학적인 시각이 아니라 시적인 관점에서 강조한다. 지브란은 대자연과 야생계의 숭배자다. 과학의 발명가들이 어느 정도로 우리의 대기를 요염시키고 강물을 썩혔는지 지브란이 오래 살아남아서 보았다면, 무기력한 대자연에 대한 폭군적인 인간의 태도를 분명히 통탄했을 것이다. 지브란이 이 책에서 제시한 우주론은 매우 인간중심적인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대자연에서 빌려온 개념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지상의 신들]은 신이 인간과 맺는 관계(고테스벨트)를 설명한다. 인간은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욕망이 있다. 지브란의 철학에 따르면, 인간은 오로지 사랑 '안에서', 사랑을 '통하여' 그리고 사랑과 '함께' 신에게 올라갈 수가 있다. 이 작품은 세 가지 신이 주고받는 대화인데, 두 가지 신은 '인간이 신들의 먹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신들의 영광과 계획을 위한 제물이고, 신들의 변덕을 만족시키는 장난감이라는 것이다.
끝으로, 나머지 작품들은 먼저 출간한 작품들에게 밝힌 사상을 다시금 묘사한 것이다. [방랑자](1932)는 사후에 50편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고, [마음의 비밀](1947)은 단편 소설의 집합체인데, 이 가운데 "폭풍우"는 니체식으로 현대 사회가 결핍한 정신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다. [계곡의 요정](1948)은 사회적·종교적 착취에 관한 공격을 되풀이 한다. [스승의 목소리](1959)는 절친한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것이다. [사상과 명상](1961), [정신적 명언](1962)이 그 후에 나왔고, [사랑의 예언자](1972)는 메리 해스켈과 주고 받은 편지, 그리고 메리 헤스켈의 일기가 들어 있다.
나는 지브란의 책을 출판한 사람들과 상당히 의견을 달리한다. 레바논에서 태어난 지브란의 저서가 학자와 일반 독자 사이에 광범위하게 읽혀져 내려온다. 그러나 전문 연구가든 일반 독자든 지브란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지브란의 추종자를 수없이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놀라운 사실은, 지브란이 인류에게 전달하려고 한 내용에 관해서 모두가 막연하고 상충되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지브란의 메세기를 충분히 알아듣지 못하는 마지막 이유는 지브란이 너무나 시적이고 음악적인 용어를 구사한 데 있다. 수많은 사람이 지브란의 작품을 낭독할 대, 자기 만족의 아름다눈 음악회에서 잠이 들어버리고, 그 운율 밑에 숨어 있는 깊은 철학적 의미를 명상하지 않는다.
나는 이 해설이 독자들의 이해력을 흐리게 하는 고질적인 무지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내가 지브란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여기서 설명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목적에 있는 것이다.
◉ 칼릴 지브란의 작품세계 (2/5) : 신현철
※ 출처 : 『세월』(칼릴지브란 지음. 신현철 옮김) 중 111-116쪽 (서교출판사 / 1998년 10월 20일 발행)
상처받은 자유의 영혼 - 칼릴 지브란의 시세계
모든 예술작품은 현실을 바탕으로 새롭게 짜여진, 전체성을 지니는 하나의 창조된 세계이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정서를 이끌어가는 상상력이다. 가변적이고 혼란스러운 표면의 세계를 잘 정제된 내면적 질서의 공간으로 정착시키는 것은 객관적 현실과는 또 다른 미학적 공간을 획득하는 일이며 상상력의 변용으로 현실을 새롭게 재현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삶의 비극과 황페한 인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는 칼릴지브란은 1883년 12월 6일 신과 예언자의 나라인 레바논에 있는 작은 산촌 베챠리에서 태어났다. 아랍지역에서 가장 아름답고 기후조건이 좋은 나라인 레바논은 종교분쟁과 외세의 지배로 고통을 받고 있던 지역이라는 그 자체로서 특수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서 읽을 수 있는 기독교적인 묵시의 시상과 동방의 인도적인 신비주의의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속해 있던 마로나이트파는 전통적인 시리아식의 예배의식을 가진 일종의 동방기독교의 하나였다. 교회 목사의 딸이였던 어머니 카밀라와 교육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부유한 목축업자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지브란은 어머니에게 음악과 미술 등의 교양을 익혔으며 아랍어, 프랑스어를 배우게 되었고 종교적 분위기로 이끌림을 받게 되었다. 그가 열한 살 때 아버지를 남기고 가족들은 모두 미국으로 이주를 하여 보스턴에 정착하게 되었다. 보스턴에서 학교를 다닌 그는 2년 후 혼자 레바논으로 다시 돌아와 학교를 졸업한 후 전국을 여행하면서 문학과 미술에 전념하였으며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나라를 여행하였다. 1908년에 그는 파리로 건너가 그림공부에 전념하기도 하였는데, 이때에 로뎅은 그의 예술적 재능을 보고 많은 격려와 찬사를 보내기도 하였다. 1921년에는 뉴욕에서 남은 여생을 독신으로 보내며 예술 활동에 전념하였다.
칼릴 지브란의 시들은 마치 예언자와도 같이 생명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와 행위를 버리고 긍정으로 놓여진 아름다움의 질서를 회복할 수 있게 해준다. 순결한 영혼을 지니고 있는 한 사람이 자기가 태어나고 자라난 곳을 떠나 유배지와도 같은 낳선 곳을 떠돌면서 어떠한 대상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온 여정을 맑고 투명한 언어로 보여준다. 우리가 그의 시에서 무거운 질감이나 투박한 언어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하다. {사색}에 실려있는 시들은 면을 메우고 있는 시행들보다 오히려 그 행간의 여백에 감추어진 것들에서 더 많은 감동을 던져주고 있는데,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도덕적 기율이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질서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칼릴 지브란에 있어 시로 쓰여지는 대상은 그 상상력 안에서 현실과의 모든 관계나 속성들로부터 자유로운 것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자유로움의 구조는 과학적 경험 세계나 일상의 사적 체험과는 다른 모습을 그 내부에 지니고 있다. 즉, 대상과 이성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관계는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유보되어 있는 것이다. 시적 대상을 다분히 현상학적인 가치의 질서로 억압하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로 해방시켜 주는 이러한 경험은 상상력의 자유로운 의미가치이다. 여기에서 그의 삶의 주변을 이루는 공간은 새로운 의미에서 자유롭게 변화되어 가꾸어 진다. 존재에 대한 태도에서의 이러한 변화로부터 대상이 그 자신을 드러내는 형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미의식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의 순수형식 pure form은 다양한 것의 통일-그들 자신의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운동이나 관계들의 일치-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대상의 있음과 존재의 순수한 표현 양식이다. 따라서 현실을 이루고 있는 물적 대상의 순수형식은 곧 아름다움의 현현인 것이다. 시쓰기의 의미는 칼릴 지브란에게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움과 존엄성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기들로 바라볼 수 있다.
아름다움의 질서는 현실의 대상을 배타적이지 않게 수용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얻게 하여 주는데, 이 질서는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자유인 법칙에 따른다. 그 법칙들은 강요되어지거나 특정한 목적을 위해 강요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자유로움의 구조는 그에게 있어 존재 자체의 순수형식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서 별다른 반성없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칼릴 지브란에게는 그 자신만의 독특한 모습을 가진 것들로 나타난다. 숨겨져 있던 사물들의 가리워진 비밀이 자신의 베일을 벗는 순간이다. 시의 소재를 이루고 있는 여러 사물들의 현상적 의미 뒤편에 잠자고 있던 내밀한 영혼의 의미가 드러난다. 우리의 사람에 대하여 그가 진실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이다. 그 의미의 여운은 작지만 넓게 퍼진다.
인간의 삶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의 보편적인 문제들, 즉 고통과 외로움, 죽음, 고독 그리고 슬픔 들의 실제적인 일들에 대하여 깊은 성찰을 노래하고 있는 그가 서 있는 자리는 상처받은 자의 치유의 자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결한 슬픔을 거치고 난 이후 도달하게 되는 사람은 범속한 것을 지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를 감싸고 있는 사랑의 향기는 시인 자신의 삶과 영혼이 상처받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시인 스스로 상처받았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고독이 없이는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너무 교훈적이고 도덕성만을 강조하는 시들이 빠지기 쉬운 감상주의나 엄숙주의에 빠지지 않고 시의 향기로움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시인 자산의 상처받은 영혼과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 신현철(문학평론가)
◉ 칼릴 지브란의 작품세계 (3/5) : 나희덕
※ 출처 :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칼릴지브란 지음. 나희덕 옮김) 중 108-118쪽 (진선출판사 / 1989년 9월 25일 1판 발행)
영혼의 외로운 순례자 지브란의 세계
지브란의 시를 읽다보면, 마치 차를 타고 어딘가 낯익은 거리를 달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로수와 늘어선 집들, 갖가지 군상(群像) 속에서 반짝, 하는 것을 발견한다. 눈길을 멈추고 보려고 하면, 그 순간 이미 스쳐 지나가버리고, 내게는 그 그림자들만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익숙하면서도 아주 낯선 여운으로.
그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은밀한 곳을 향하여 떠나는 순례자이다. 시끄러운 도시를 벗어나 고요한 들판으로, 산 자들의 아우성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주검의 침묵 속으로, 때로는 망망한 바다로 그는 떠나간다. 결국 그의 생각의 배는, 무한한 바다와 무한한 하늘 사이를 떠도는 에언자의 모습으로, 어느 항구에도 정박하기를 거부하는 자유의 정신인 것이다.
얼핏 보면 그의 '자유'는 현실과는 유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소개된 산문시들 속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오히려 현실 속에서 끝없이 갈등하는 한 인간을 보여준다. 그 갈등의 과정을 잘 살펴보면 작품마다 공통적으로 찾아떠나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 년이 지나고서 다시금
내 생각의 배에 올라 바다로 나갔네.
-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 중에서
내 영혼이 사람에 대해 지긋지긋해지고
낮의 얼굴을 보기에도 지치면
지나가버린 세대의 그림자들이 잠들어 있는
먼 들판을 찾아갔었네.
- [밤] 중에서
혼잡한 도시를 피하여
고요한 들판으로 나갔던 것은
불과 어제였네.
- [주검의 도시에서] 중에서
이렇게 찾아떠나는 행위로써 그는 우리를 인도해간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 자체가 동적인 것은 아니다. 움직이고 있는 것은, 그가 아니라 수많은 군상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영혼의 외로운 나무그늘 아래 앉아, 또는 삶의 작은 창을 통하여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 관찰의 포충망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어린 아이에서 등이 굽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자에서 부유한 자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의 형상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형상들은 어떠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혼돈과 고통을 안겨줄 뿐이다. 그 동안의 삶이 잘못되어 왔다는 것, 세상의 옳지 못한 것과 자유롭지 못한 것들에 대한 탄식, 보이는 것에 얽매어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울부짖음이 그것이다. 그는 고통에 못이겨 소리를 지른다. 답을 얻기 위하여 그 덧없는 형상들에게 매달린다. 그 순간 형상들은 안개와 같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붙잡으려 하는 순간
그들은 내게서 빠져나가
다만 연기와도 같이 사라져버리네.
- [시인] 중에서
그 바위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으나
하늘 위로 떠오르는 향기로운 기둥
그 위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네.
- [묵시록] 중에서
마침내 혼자만 남게 되고, 거기서 그는 어떤 음성을 듣게 된다. 절대자의 소리이기도 하고, 자연의 소리이기도 하고, 자신의 내부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그 동안 흩어졌던 메시지들이 집결하면서 통일된 하나의 극적 구조를 완성하게 된다. [시인]에서 그는 말하고 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쫓겨난 사람.
나는 시인
삶의 산문 속에 흩어놓은 것을
시 속에 모으기도 하고
또 삶이 시 속에 모은 것들을
산문 속에 흩어놓기도 하네.
이리하여 나는 쫓겨난 사람
죽음이 나를 들어올려
내 고향으로 데리고 갈 때까지
영원히 추방자로 남아 있다네.
한 편의 산문처럼 장황하고 혼란스러웠던 시상을 마지막 한 마디의 음성을 통하여 집약, 통일시킬 수 있는 것이 시인의 역량이라고 한다면, 이런 점에서 그의 시인다움은 확인되고도 남든다. 비교적 긴 산문시일수록 그의 이러한 힘은 잘 발휘되고 있는데, 거의 결말론에 나타나는 그 음성은, 갈등으로 갈갈이 찢겨진 영혼들에게 평화를 기원한다.
평화가 함께 하기를,
눈물에 젖어 있는 동안데도
평화에 갈채를 보내는 마음이여!
평화가 함께 하기를,
쓰디쓴 빵을 먹으면서도
평화를 말하는 입술이여!
- [내가 태어난 날에] 중에서
그리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된 영원의 세계를 제시한다.
바로 저기에 있다.
- [주검의 도시에서] 중에서
신적(神的)인 것으로 느껴지는 그 음성에서, 우리는 기독교적인 성격을 느낄 수도 있다. 성서와 유사한 이미지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어릴 때부터 기독교적 전통해 접했기 때문이다.
사랑을 말하려고 성스로운 불길에
내 입술을 씻었네.
- [사원의 문 앞에서] 중에서
사원에 들어서긴 전, 세상의 말과 편견에 더렵혀진 자신의 입술을 씻음받고자 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것은 다음 이사야 6장에 이사야의 부르심 장면을 연상케 한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숲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곳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 [이사야 6장 5-7절]에서
또한 [주검의 도시]에서, 가난한 한 여인과 개가, 초라한 장례행렬로 등장하는데, 이것은 비천한 여인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 앞에서 흐느끼는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사원의 문 앞에서] 중에서는 다섯 살밖에 안되는 한 아이가 뛰어다니며 외친다.
사랑은 나의 아버지, 사랑은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말고는
아무도 사랑을 알 수 없어요.
앞서 여러 사람이 사랑에 대하여 말하였지만, 가장 순수하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 아이에게 구원이 있음을 역설한 예수의 말이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영혼]에서는,
... 그리고 여러 신 중의 신께서
영혼을 지으시고 아름답게 하셨으니
라고 시작하여, 사람의 육체와 영혼이 창조되는 과정과 그 의미를 창세기보다도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부분적인 이미지들을 성서와 연관시킬 수도 있지만, 작품 전편에 흐르고 있는 이원적 세계관은 기독교적 소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브란에게 있어서 대상은 둘로 분리되어 나타난다. 모든 것은, 젊음과 늙음, 육체와 영혼, 힘 있는 자와 없는 자,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얼어붙은 시냇물과 타오르는 불길, 슬픔과 즐거움, 밤과 낮, 삶과 죽음 등으로 그의 눈에 비쳐진다. 지브란의 작품이 지나치게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이렇게 두 가지 상반된 요소들이 완벽하게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세계는, 서구 또는 서구의 종교가 가진 이분법적인 사고와는 다른 데가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시적 요소들을 통합시켜내는 시인적 역량이기도 하며, 그의 고향 레바논의 풍경과 역사가 담고 있는 동양적 요소의 덕택이기도 하다.
동양적이라 함은, 분리된 것을 분리된 것으로 놓아두지 않는 힘을 말한다. 언어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에 의한 통합을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끝없는 방황과 사랑이, 현실적이고 민족적인 것과 무한하지만은 않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오랫동안 터어키의 지배를 받아온 그의 조국과 억눌린 사람들, 그래서 세계곳곳에서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과 하나되려는 몸부림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전에는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생각했지
비웃거나 불쌍히 여겨야 할 약한 사람들과
복종하거나 아니면 저항해야 할 힘센 사람들.
그러나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같은 흙으로 지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네
나를 이루는 요소가 그들의 요소이기도 하고
나의 내적 자아가 그들의 자아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의 갈등이 그들의 갈등이기도 하며
그들의 순례길이 나 자신의 것이기도 하네.
- [내 영혼이 나에게 충고했네] 중에서
그래서 사람들과는 일체감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참으로 사랑하게 된 것이다. 삶을 사랑함과 동시에 그 그림자인 죽음조차 즐겁게 여기게 되었고, 자유를 사랑함과 동시에 자유를 빼앗긴 노예들까지도 소중히 여기게 된 것이다.
삶을 저주하는 이
그 불행함으로 나는 그를 사랑하고
삶을 축복하는 이
그 은혜 때문에 사랑하며
삶을 관조하는 이
그 지혜로 해서 그를 사랑한다네.
- [내가 태어난 날에] 중에서
그의 찾아떠나기의 종점은 여기이다. 그러나 종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로이 찾아떠나는 시작이 있을 뿐이다. 위대한 영혼이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향하여 던지는 새로운 질문이 여기에 있다.
◉ 칼릴 지브란의 작품세계 (4/5) : 강은교
※ 출처 : 『예언자』 (칼릴지브란, 강은교 옮김) 중 113-126쪽 (문예출판사 / 1975년 12월 25일 초판 발행)
칼릴 지브란의 생애와 작품세계
가령 이런 꿈을 꾼다 - 키 큰 삼(杉)나무 밑에 한 사람이 서 있다. 그는 자기 앞에 펼쳐진 세계의 저편을 바라본다. 이윽고 희미하게 그의 눈앞엔 돛이 펄럭이는 하나의 배가 나타난다. 배에는 그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타고 있다. 그는 말없이 배의 돛을 바라보고, 그리고 그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아 버린다. 그러나 이제 그는 결코 놀라서 뛰거나 달아나려 애쓰거나 또는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않는다. 죽음, 그것은 또 다른 세계로의 출발 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그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엔 펄럭이는 돛이 있고 핸들을 쥔 채 앞길을 응시하고 있는 키잡이가 있다. 그는 즐거이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떠나간다. 또 하나의 세계, 없는 세계를 향하여, 그러면서 뒤에 예수와도 같이, 또는 석가와도 같이 몇 마디의 진실을 남기는 것이다.
「잠깐, 바람 위에 일순의 휴식이 오며, 그러면 또다른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라고.
뛰어난 화가이며 또 시인, 철학자였던 신비스러운 인간, 칼릴 지브란의 산문시 《예언자(豫言者)》의 마지막 구절을 덮으면서 내게 자연스레 회상된 「풍경」이다.
물론 그것은 죽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브란의 한 친구의 말대로 《예언자》에 나오는 「고향섬(Isle of his birth)」이란 그의 고향 레바논을 가리키며, 첫 구절에 나오는 「열 두 해」란 지브란이 뉴욕에서 살아 온 햇수를, 또 「올펄레즈(Orphakese)」라는 가상의 마을은 바로 뉴욕을 가리킨다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죽음이든 신이든 또는 완전한 기쁨이든, 읽는 사람에 의해서 무수한 자기대로의 이상(理想)의 모습으로 바뀔 수 있음으로 해서 「예언자」는 영원히 감동을 주는 신비스런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늘 나에게 놀라움과 의문으로 생각되는 것이지만, 지브란은 20세기라는 무시무시한 문명의 한가운데서, 아마도 제트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전기 스탠드 아래서 글을 썼을, 더욱이 글을 쓰는 창 앞으로는 뉴욕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숨쉬고 있었을 그의 스튜디오에서 어떻게, 마치 옛 예언자의 말과도 같이 놀랍고도 생생한, 그러나 결국은 올바를 수밖에 없으며 지혜에 찬 구절들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렇다. 어떻게 보면 그의 《예언자》는 모순투성이이며 환상과 비약투성이여서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그는 최고도로 발달된 현대의 인간들을 고대(古代)로 퇴화시키려는 듯도 보이며, 전혀 쓸모없는 노랫가락을 읊고 있는 듯도 보인다. 그러나 거기엔 「무엇인가」가 있다. 현대인이 어느새 잊어 버리고 있는,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영혼」이 그것이다. 인간을 인간에게로 돌리며, 그렇게 함으로써 「신」에게로 돌리는, 형식적인 기도 문구가 아닌 진실한 욕구가 있는 것이다.
모든 문학이 그렇지만 지브란에게 있어서도 그가 살았던 장소와 그를 만든 피[血]의 특수성, 그런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문학이란 어느 시대에도 그 사회와 인간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또 생성되지도 않기 때문에. 또한 그의 배경을 생각해 보면 볼수록 그의 시의 종교성, 예언자적 외침, 깊은 저항 정신, 그런 것들이 필연적으로 이해가 가는 것이다.
혈통
그는 말하자면 두 개의 세계 사이에서 살았다. 좀더 분석적으로 말하면 즉, 아랍이라는 세계와 서구라는 세계, 또 레바논과 아메리카, 삼나무(레바논의 심벌 마크로서 국기의 한가운데 그려져 있음)와 마천루, 그리고 페니키아의 고대 예언자의 세계와 냉혈로 가득 찬 현대라는 세계가 그것이다.
그 사이에서 그는 현대의 아무도 생각지 않는 곳을 바라보았고 오랫동안 묵묵히 방황하였으며 그 결과 태어난 것들이 그의 작품인 것이다.
지브란은 가정적으로나 또 국가적으로 무척 특수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그가 태어난 나라 레바논은 아랍 세계 중에서도 묘하고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나라이다. 요즘 우파 기독교도와 좌파 모슬렘 교도간에 처절한 종교 분쟁을 일으킴으로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레바논은 그 자체 특수한 역사를 구성해 왔다.
14세기경부터 350년 동안 터키 제국의 지배를 받아 온 레바논은 그 국민의 대부분이 기독교도와 모슬렘의 두 파로 나뉘어져 외세가 밀랴 들 때마다 서로를 적대하고 피로 싸우는 전통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뿐 아니라 그때마다 피압박자가 된 편은 산중으로 피신하거나 그러지 못한 일부는 이집트, 미국, 유럽 국가 등지로 추방당하거나 이주했던 것이다. 레바논의 산등성이에는 일정한 높이의 언덕에 마을들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하는데 그 마을들은 물론 두 개의 종교 집단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런 마을은 물론 피신자들이 이루어 온 것이었다.
터키가 점령했을 때는 미처 피신하지 못한 사람들이 광장에서 무참히 교수형을 당하기도 했으며, 터키 군대에 여자와 세금을 바쳤고, 나라는 터키 군대의 감독 아래 그들이 지명한 감독관이 감독하였다. 지브란을 얘기할 때 이 터키의 점령을 빼놓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의 근원적인 자유주의 정신, 저항 정신, 그리고 만년의 신비주의에 이르기까지 그를 몰고 간 정신의 많은 부분은 이런 끝없는 종족의 추방과 레지스탕스로 점철되어 온 조국의 역사와 영향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 군대는 물론 이런 레지스탕스를 제일 싫어했고, 무서워했으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유럽에 자유주의가 만연되자, 이 물결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추방당한 많은 「예수회(Jesuit)」들이 레바논으로 들어와 살기도 했다.
레바논의 크리스찬의 대부분은 마로니 파인데(최근의 어떤 조사는 전국민의 3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고 함) 지브란의 어머니는 이 마로니 파 신부의 딸이었다. 이 마로니 파는 예수 시대의 전통을 지키면서 신부의 결혼을 허용하는 것이 큰 특징으로, 레바논에선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생애뿐 아니라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러므로 그녀가 신부의 딸이라는 사실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의 어머니는 드물게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이었으며 일찍부터 음악과 미술을 아이들에게 가르쳤고, 아들 지브란의 천재를 눈치 채고 있었다. 지브란은 작품을 쓰면 어머니에게 제일 먼저 읽어 드렸고, 《예언자》도 최초의 시기에는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강한 종교성, 또 어렸을 때부터 외할아버지의 교회에서 받은 인상, 미사곡의 음률, 이런 것들은 죽을 때까지 그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또 그녀는 예수회 계통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므로 프랑스어를 알았고 서양사를 배우기도 한 인텔리 여인이었다.
다시 말하면 지브란의 피 속에는 레바논의 오랜 종교적 전통, 피압박 민족의 눈물, 여기에 또 신부의 혈통과 고양이 동시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생애와 작품 (118p-120p 생략)
몇 개의 질문과 대답
지브란의 《예언자》를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비교하는 평자도 있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근본적인 삶의 문제들의 제기에 부딪히고 그리고 그것에 대한 가능한 대답을 듣는다.
그 질문들이란 현대에 이르러 그 누구도 던져 보기를 주저하고 있으며, 때로는 아직도 그런 것을 던지는 데 대해 심히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들이다. 즉 사랑, 결혼, 이이들이라는 존재, 베풂의 뜻, 먹고 마신다는 일, 노동, 기쁨과 슬픔, 인간의 집, 옷, 법, 자유, 자기 인식, 우정, 시간, 선과 악, 기도, 쾌락, 종교, 죽음------ 이런 문제들은 너무나 근원적이고 보편적이어서 감히 그것에 대해 주장하는 것이 이젠 두렵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는 그에 대한 해답을 내리는 것에 늘 완벽히 실패해 왔음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언자》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 자신 고독하면서도 그 때문에 더욱 감동스러운 것이다.
그는 삶과 죽음을 한 몸으로 본다. 즉 죽음이란 이미 삶의 가운데 준비되어 있는 것이며, 그러므로 죽음의 비밀을 알고자 한다면 삶의 중심을 보다 철저히 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죽는다는 것은 또 다른 삶에의 출발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삶과 죽음은 「조화」의 질서 위에서 「무한」을 꿈꾼다.
《예언자》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지브란의 이중적(二重的) 세계관이다.
그는 세계를 두 개의 얼굴로 바라본다.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기쁨과 슬픔, 자유와 속박, 출발과 도착, 영혼과 육체, 무한과 유한, 사랑과 증오, 선과 악, 부(富)와 빈(貧)······ 모든 사물과 명제에는 항상 상반되는 두 개의 방향 또는 모습이 있으며 결국 이 두 얼굴이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껴안을 때 평화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대들 자아와 한몸 되어 있을 때는 선하다.
그러나 그대들 비록 그대들의 자아와 한몸 되어 있지 않을 때라 하여도 약한 것은 아니다.
왜? 내분(內分)이 인 집이라고 해서 도둑의 동굴은 아닌 것이기에, 그것은 다만 내분이 인 집일 뿐.」선과 악에 대한 구절이다. 즉 선과 악조차도 그것은 상반되어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내분이 인, 그러나 한집일 뿐인 것이다.
그의 시가 지나치게 교훈적으로 보이는 것은 이런 점이 얼른 관용이나 중용과 연결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교훈은 너무나 맑고 생래적인, 천진한 목소리로 울려 나오므로 우리는 얼른 그것이 교훈임을 잊어버리고 그 아름다운 상상과 운율 속으로 빠져 버릴 수밖에 없다.
《예언자》에서 지브란은 신(神)마저 인간과 동떨어진 별개의 존재로 보지 않는다. 인간의 내부에는 신적 자아(God-self)와 아직 채 인간도 되지 못한 소아적(小我的) 부분이 공존하고 있다. 이 소아를 벗어나려는 끝없는 갈망이 신적 자아와 합치될 때 신의 말씀은 인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울린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특히 동양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브란의 세계는 불교의 「열반」과는 다른, 서구적 사상의 기초 위에 서 있다.
옳은 표현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저항 정신, 또는 자유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그의 문학에 그가 태어난 나라의 역사적 전통을 무엇보다 강하게 잇대어 보려는 것도 그 까닭인 것이다.
실제로 그는 《반항의 정신(反抗의 精神)》이라는 책을 써서 터키 정부로부터 젊은이들에게 위험한 사상을 불어넣어 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판금당했을 뿐 아니라 베이루트에서 책들은 붙태워지고, 자신은 교회와 국가로부터 추방당했던 것이다.
그는 인간이 만든 법이란 모래탑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부서지고 또다시 쌓아질 운명에 있다. 어떤 인간의 법도 영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대들은 북 소리를 약하게 할 수도 있고, 수금의 줄을 늘어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 있어 과연 저 종달새에게 노래를 하지 말라고 명령할 수 있을 것인가?」
법이라는 것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인간에게, 마치 종달새에게처럼 명령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지브란은 본질적으로 자유주의자이다. 그는 자유에 대해, 진정한 자유란, 자유라는 의식조차도 벗어 버린 상태의 완전한 해방이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자유라는 것을 내세워 자기 또는 작의 주장을 뽐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경우 자유란 해방이 아니라 오히려 또 하나의 멍에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대들은 실로 자유로우리라. 욕망도 없는 밤이 아니라 근심으로 가득 찬 낮에, 또한 오히려 이 모두가 그대들의 삶을 묶고, 그리하여 그럼에도 그대를 벗어 버리고 해방되어 이들 위로 일어설 때.」
아마도 이런 지혜는 오랫동안 터득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오랜 탐구 정신과 조국애와 종교는 현실적인 자유의 싸움으로부터 이런 보다 튼 자유에로 그를 인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예언자》이후에도 계속 《Jesus the son of Man》(1928), 《The Earth Gods》, 《The Garden of the Man》 등 지브란 특유의 종교적 경향의 작품들을 내놓는다.
그리고 이들 창작과 함께 화가로서의 작업도 그는 계속해서 이 《예언자》에 낀 삽화와도 같이 아름답고 이미지에 가득차 있으며, 철학을 느끼게 하는 신비주의적 그림과 초상화들을 그렸다.
그는 젊은 시절 20달러를 빌려 파리에서 최초의 전시회를 연 이래로 파리, 뉴욕, 보스턴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1931년 4월 그는 뉴욕의 St. Vincent 병원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그의 만년의 여자 친구이자 전기작가로서 《The Man from Lebanon》을 쓴 Barbara Young의 묘사에 의하면, 가냘프고, 커다랗고 꿈꾸는 듯 기다란 속눈썹에 싸인 갈색 눈동자, 갈색의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입술 가득히 덮인 부드러운 수염의 인상적인 모습으로, 그의 유해는 베챠리로 돌아갔다. 결국 그는 죽어서 고향섬으로 돌아간 셈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지브란의 예언자가 오늘 우리에게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을 우리는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화가, 시인, 철학자, 신비주의자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그는 그 여러 이름만큼 여러 개의 면모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기억하고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그는 인간을 사랑하고, 그로써 신을 찾으려 했으며 확고한 삶의 의의를 찾으려 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에게는 어떤 의미에서든 구도자(求道者)라는 말이 어울린다. 마치 옛 시대의 성현처럼, 또는 동방박사처럼 그는 진리를 향해 아람과 유럽, 그리고 아메리카를 헤맸던 것이다.
《예언자》를 쓰고 나서 그는 이 작품을 4년간이나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영어로 썼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우선 그는 자기가 최선을 다했는가를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또 《예언자》의 최초의 구상은 이미 어렸을 때, 보스턴으로 갔다가 다시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레바논으로 돌아왔을 때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곧 집어치우고 좀더 무르익기를 기다린 것이다.
《예언자》가 지니는 성서성(聖書性), 평화의 메시지, 그것은 시대가 혼란하고 어떻게 이해해 볼 수 없이 파괴되어 갈수록 더욱 중요해질 것 같다.
(이하 생략)
1975년 11월 강은교
◉ 칼릴 지브란의 작품세계 (5/5) : 김승희
※ 출처 : 『눈물과 미소』(칼릴 지브란, 김승희 옮김) 중 117-124쪽 (문예출판사 / 1985년 10월 15일 발행)
젊은 영혼의 고백서
산문시 《예언자》의 저자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칼릴 지브란의 처녀작 《눈물과 미소》를 만나게 된 것은 옮긴이로서 커다란 기쁨과 행복이었다는 것을 먼저 고백하고 싶다. 《눈물과 미소》는 지브란의 청년 시절에 쓰여진 초기 작품들과 파리에서 지내던 스물 다섯 살 무렵에 쓰여진 산문시들의 모음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낭만적인 젊은 시인들이 그러하듯이 스물 다섯 무렵의 지브란 역시 세상의 불의와 폭력에 대항하는 강인한 저항정신과 불멸과 무한의 세계에 가득 찬 하얀 영원의 광채에 대한 청순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음을 이 책은 보여 주고 있다.
「지브란에겐 신비주의자, 철학자, 종교가, 이단자, 평화주의자, 반항아 등 수많은 상반된 명칭이 부여되고 있다」라고 지브란 연구가들은 지적하고 있거니와 그는 하나의 시인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폭넓은 철학세계를 지녔고 하나의 철학자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인류에 대한 사랑에 차 있으며 또한 성자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날카로운 비판정신이 앞섰고 반항아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숭고한 영혼의 긍정을 지닌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하나의 완전한 자였고 완전한 예술가였다.
인류의 세계에는 때때로 이런 완전한 자아, 무한에 가까운 명상가와 무한에 가까운 창조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 인간이 신을 닮은 피조물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증명해 보이곤 한다. 미켈란젤로나 다 빈치, 괴테나 윌리엄 블레이크, 그리고 지브란이나 금세기 최고의 성자라고 불려지는 라즈니쉬 같은 희귀한 영혼들이 그런 깨달음을 준다.
인간은 포유류에 지나지 않는 동물이지만 포유류 이상의 어떤 존재라는 사실, 불멸의 영혼을 가진 반짝이는 신의 혈통이라는 사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포유류에 불과한 타락한 인간들이 우리 주변엔 얼마나 많은 것일까, 아니 대체 포유류의 욕망 이외의 어떤 꿈을 우리는 아직 이 땅에서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인간이 먹고 마시고 자는 욕망만을 가진 포유류 이상의 존재라는 것은 사실일까, 등등의 시대적인 슬픈 질문에 지브란의 《눈물과 미소》는 많은 대답을 준다.
마치 달마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언어처럼 지브란의 언어는 단순하면서도 사색적이고, 사색적이면서도 음악적이고, 아름답다. 키츠의 「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Beauty is truth, truth is beauty)」이라는 시구가 그대로 들어맞는 달마의 예지와도 같은 이 책은 그 동안 영웅주의의 충혈된 부정과 상업주의의 비속한 음성으로 오염된 우리 독자들의 피로한 귀를 진실한 아름다움으로써 성결하게 닦아 주리라 믿는다.
칼릴 지브란의 그가 「영어로 이야기하는 달마」와 같은 인상을 풍기는 것에 걸맞게도 동양과 서양에 걸친 두 세계의 삶을 살았다. 그는 1883년 12월 7일(혹은 1월 7일이라는 기록도 있다)(※ IXIA : 수헤일 부쉬루이 교수에 의하면 1883년 1월 6일이다.) 레바논의 베챠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첫 남편과 결혼하여 브라질로 이민을 갔는데 거기서 첫 남편은 병을 얻어 아들 피터와 지브란의 어머니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목축업자인 지브란의 아버지와 결혼을 하게 되어 두 아이 마리아나와 술타나를 낳은 다음 칼릴을 낳았다(※ 운영자 주 : 이 부분은 오류이며, 마리아나와 술타나는 여동생임). 그녀의 어머니는 마로니트 교회의 사제인 스테판 레미의 딸로서 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자녀들에게 음악과 미술, 아랍 어, 프랑스 어를 가르쳤고 좀더 커서는 가정교사를 들여 영어를 가르쳤다. 어머니의 예술적으로 풍부한 교육은 천재적인 자질을 타고난 칼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쓰기도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나>라고 부르는 전부를 여인에게 힘입었다. 여인은 내 눈의 창을 열어 주었다. 어머니로서의 여인이 없었다면, 누이로서의 여인 또한 친구로서의 여인이 없었다면 나는 코를 골며 세계의 평온을 소란케 하는 자들 가운데 잠들어 있었을 것이다.」
지브란은 부유하고도 문화적인 분위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셈이었다. 그는 자기 조국인 레바논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서구의 시인들은 에덴 동산이 아담과 이브의 타락 이후 상실된 것과 마찬가지로 레바논 역시 다윗과 솔로몬과 선지자들이 사라진 이래론 잊혀진 하나의 전설상의 지역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구의 시인들에게 레바논이란 어휘는 산허리가 신성한 삼나무의 향내로 흠씬 젖어있는 굽이굽이 산들과 결부된 하나의 시적 표현이 되어 있다. 그것은 구리로 된 사원과 준엄하게 서 있는 난공불락의 대리석, 계루에서 풀을 뜯고 있는 한 무리의 양떼들을 그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레바논의 종교적 분위기는 지브란의 선지적 신비주의와 자연관을 형성시키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파괴된 사원들, 문명의 잔해들 속에 박혀 있는 옛 신들의 조각품들과 돌조각들은 지브란의 말세 이후의 폐허들을 바라보는 듯한 신비주의의 눈초리, 제행무상에 대한 관념, 일시적이고 덧없는 영화를 부정하고 불멸의 영혼을 섬기는 정신적 자세 등을 형성시켰다고 한다. 이런 일화가 있다.
옛 로마 사원들의 잔해가 남아 있는 어느 폐허에서 젊은 지브란은 한 고독한 사람이 무너진 사원 기둥 위에 앉아 동쪽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지브란은 한참을 바라보다가 용기를 내어 그 사람에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삶을 바라보고 있오.」 그것이 대답이었다.
「오, 그것뿐입니까?」 지브란이 물었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요?」
그 사건은 지브란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과거의 잔해 속에 앉아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보는 삶의 관찰자, 도시의 혼잡스러움과 타인들과의 충돌에서부터 빠져나와 홀로 새벽을 망보고 있는 이 관찰자는 바로 지브란의 시인에 대한 관념 바로 그것이었다.
또한 레바논의 역사와 폐허 속에 앉아 다가올 정신의 미래의 예언을 기다리는 시인의 모습 --- 그것은 바로 과거의 조국의 영광을 짐지고 사상의 미래를 기다리는 지브란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지브란이 12세가 되었을 때 그들 가족은 18세인 형 피터의 주장에 따라 미국으로 옮겨가서 보스턴에서 식료품 가게를 열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상 레바논에 머물러 있었다. 보스턴에서 학교를 다니다 14세가 되었을 때 그는 아랍 어 공부를 마치기 위해서 혼자 레바논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베리루트의 유명한 학교 알 키마프에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아라비아와 철학자, 시인들의 작품을 5년 동안 공부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중동 지방을 여행했다. 5년 후 그는 그림을 그리러 그리이스, 이탈리아, 스페인을 거쳐 파리로 갔다. 그후 그는 터어키의 지배 때문에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1908엔 파리의 미술학교 Academy Fine Arts에서 미술공부를 했는데 아마 그의 처녀 작품집인 《눈물과 미소》는 이 당시 쓰여지지 않았나 추정된다. 스물 다섯 살의 생일에 부친 시와 그 무렵의 심경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뒤 미국으로 돌아간 지브란은 자신이 순례했던 나사렛, 베들레헴, 예루살렘, 트리폴리, 바알베크, 다마스커스, 팔미라 같은 옛 도시들의 여행 체험에 대해 풍부한 사색을 하며 철학적으로 심오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 뒤 그는 1931년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독신으로 살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예언자》는 미국으로 돌아와 영어로는 최초로 쓴 책으로서 (※ IXIA 주 : 광인The Madman이 최초의 영어 작품이다.) 현대의 성서로서 널리 읽혀지고 있으며 아랍 어로 쓴 최초의 소설 《부러진 날개》와 더불어 지브란의 2대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지브란의 처녀 작품집인 《눈물과 미소》는 이러한 지브란의 동서양에 걸친 생애의 편견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지극히 동양적인 정신으로 서양적인 문화 충격에 맞선 하나의 젊은 영혼의 고백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엔 선과 악, 부자와 빈자, 죽음과 삶, 압박자와 피압박자, 죄지은 자와 구원받은 자, 사랑이 없는 자와 사랑하는 자와 같은 서양적 대립 개념들이 언제나 등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지브란이 혈통적으로 타고난 보다 동양적인 영혼에 의해 조화를 이루고 통합을 지향한다.
어떤게 보면 우화처럼 교훈이 들어 있으며 어떻게 보면 젊은 이상주의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감정적 철학(emotional philosophy)이 넘쳐 흐른다.
「내 가슴의 슬픔을 저 많은 사람들의 기쁨과 바꾸지 않으리라. 그리고 내 몸의 구석구석에서 흐르는 슬픔이 웃음으로 바꿔지는 것이라면 나는 그런 눈물 또한 흘리지 않으리라. 나는 나의 인생이 눈물과 미소를 갖기를 바라네. ……
눈물은 나를 저 부서진 가슴의 사람들에게 묶어 주고, 미소란 살아 있는 내 기쁨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네. ……
한 송이 꽃의 삶이란 그리움과 충족, 그리고 눈물과 미소. 바다의 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함께 모여서 구름이 된다. ……
구름의 생애란 작별과 만남, 그리고 눈물과 미소이지. 그렇듯이, 영혼은 더욱더 위대한 영혼으로부터 분리되어 ……」 (<눈물과 미소> 중에서)
위에서 보듯 슬픔의 눈물은 우리의 가슴을 정화시키고 기쁨의 미소는 삶의 이해로써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따라서 눈물 역시 미소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긍정적인 요소이며, 슬픔 또한 기쁨과 마찬가지의 가치를 지닌다. 인간의 영혼적인 굶주림(spiritual hunger)이야말로 사람의 목표이며 그 탐색은 그 자체가 만족일 뿐이다. 따라서 꿈을 실현한다는 것은 꿈을 잃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 만족하는 사람들은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다. 꿈에 차 있고 사랑의 비애를 알며 선한 영혼을 가지고 고뇌하는 자는 비록 이 세상에서는 슬픔에 찬 쓰디쓴 빵을 먹고 가장 낮은 곳에서 압박받더라도 그에게는 불멸의 행복이, 영혼의 지복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아시아적인 은유(asian metaphor) 속에서는 절망도 희망과 마찬가지로 긍정되며 눈물도 미소와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가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아기 예수>라는 글에서도 잘 나타난다.
내 인생은 비통한 고뇌의 이야기이지만 이제 환희로 물든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의 삶은 축복으로 변하였습니다. 아기 예수의 두 팔이 내 심장을 감싸고 내 영혼을 껴안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절들에서 우리는 「고뇌의 환희주의」라고나 해야 할 강인한 정신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기독교적 감내주의의 정신 같기도 하고 불교의 「사바 즉 극락이요, 중생 즉 부처」라는 역설의 정신을 풍기기도 한다.
우리가 삶을 전체로서 이해하기 위하여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계절을 전부 다 받아들여야만 하듯이 슬픔 또한 기쁨과 마찬가지로, 절망 또한 희망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책은 역설하고 있다. 눈물과 미소는 분리될 수 없는 신의 선물인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