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릴 지브란의 가족 관계
칼릴 지브란(Khalil Gibran, Kahlil Gibran)의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카밀라 라메), 이복형 부트로스(피터), 지브란, 여동생 마리아나, 술타나로 구성(5명)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가족들이 레바논을 떠나 미국 보스턴에 이주한 이후, 지브란의 가족사는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먼저 여동생 술타나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1902년 4월), 그 다음해 1903년 3월에는 형 부트로스가, 그리고 6월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족들이 이렇게 사망하게 된 외적 원인은 결핵이었습니다. 지브란은 당시 해외로 여행중이어서 병마를 피할 수 있었고, 여동생 마리아나는 결핵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 The Gibran family's home in Bsharri, Lebanon(출처 : Wikipedia).
▣ 아버지 : 칼릴 지브란(Khalil Sa'ad Gibran)
지브란의 아버지의 이름은 '칼릴 지브란'입니다. 지브란도 아버지로부터 이름을 물려받아 '지브란 칼릴 지브란'이었는데, 미국 보스턴으로 이주 후 공립학교를 다니면서 지금의 '칼릴 지브란'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아랍 세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칼릴 지브란'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지브란의 전기 작가들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목축업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소 중개업자였습니다. 지브란의 가족들이 보스턴으로 이주할 때 지브란의 아버지만이 레바논에 남았습니다. 지브란의 아버지는 건장한 사나이로 술, 담배, 커피를 즐기는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브란이 보스턴에서 잠시 조국 레바논으로 공부를 하러 왔을때, 지브란을 데리고 다니면서 다양한 여가 생활을 같이 하기도 했습니다.
▣ 어머니 : 카밀라 라메(카밀레 라메, Kamila Rahmeh, Kamilah Rahmeh)
마론파 신부의 딸로 두 번 결혼했는데, 지브란은 이 두 번째 남편에게서 얻은 아들입니다. 피부색이 검고 좀 여윈 그러나, 감수성이 강한, 그러면서도 항시 생각에 잠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이 여인은 그 지방에서 음악적인 소양이 가장 풍부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녀는 첫 번째 남편과 결혼하여 브라질로 이주했는데, 거기서 첫 아들 부트로스를 낳았고 남편이 병으로 죽자 친정에 돌아와 있다가 재혼을 했습니다.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는 지브란 외에도 두 딸, 마리아나와 술타나를 두었습니다.
그녀는 자식들에게 음악과 아랍어, 불어를 가르쳤고 그들이 성장함에 따라 영어를 가르치도록 가정교사를 두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자식들에게 헌신적이었고 지브란이 문학 활동을 하는 데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보스턴으로 이주 후, 열악한 환경과 고된 노동생활로 인해 중병을 앓게 됩니다. 지브란의 작은 여동생이 가장 먼저 병으로 사망했고, 장남 부트로스도 병에 걸렸습니다. 그녀는 15개월이나 몸져 누워있었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1903년 6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브란의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부러진 날개』에 자신의 언어로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어머니는 생애의 모든 것이다. 그녀는 슬플 때 위안이며, 비탄에 잠겼을 때는 희망이며, 나약한 순간에는 힘이다. 그녀는 동정과 관용과 용서의 수원(水源)이다. 어머니를 잃은 자는 그가 머리를 쉴 수 있는 가슴을, 축복해 주는 손을,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눈을 잃은 것이다.”
△ 칼릴 지브란이 그린 그의 어머니(종이에 연필로 그림).
▣ 장남 부트로스(Butros, Butrus, Boutros)
지브란의 이복형입니다. 지브란이 12세 되던 해 1895년, 그는 당시 18세였는데 가족의 생계 부담을 덜기 위해 미국으로 갈 것을 맨 처음 주장했습니다.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보스턴에 정착하게 되자, 그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책임을 다했습니다. 환경은 열악했지만 부지런히 일했고, 그런 환경 속에서도 지브란의 학업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동안 그의 건강은 무척 악화되었습니다. 여동생 술타나가 사망했을 당시 그도 결핵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의사의 요양 권고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부양을 위해 일을 계속했던 그도, 마침내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1903년 3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 여동생 마리아나(Marianna, Marinna, Maryana)
마리아나는 지브란의 여동생으로 가족의 이민에 관하여 그녀의 의견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오빠를 레바논과 유럽으로 보내는 문제에 대해서도, 아무도 그녀의 의견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행이 닥쳐 그녀의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가족의 부양자였던 큰오빠가 결핵으로 죽었을 때 오빠 지브란과 단 둘이 남게되자 오빠의 작품 활동을 위해 그녀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헌신을 하게 됩니다.
마리아나는 그녀의 오빠가 계획을 변경하거나 그의 문학활동과 미술활동에 방해가 되는 직업을 갖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과 오빠의 생활을 위하여 바느질과 뜨게질을 했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전시회를 열 만큼의 작품을 갖게 될 때까지 그림을 그리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바바라 영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지브란 사후에 바바라 영이 쓴 [레바논에서 온 사람]을 헌정받기도 했습니다.
▣ 여동생 술타나(Sultana)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보스턴으로 이주후 열악한 환경속에서 생활하다보니 건강이 약화되어 가족 중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1902년 4월 4일). 그때 그녀의 나이 14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