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시인이 2019년 3월에 출간한 산문집입니다. 서문과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40편의 산문이 실려 있습니다. 책 소개를 대신하여 출판사의 안내문을 게시합니다.
미지의 책을 펼치는 것은 작가에 대한 기대와 믿음에서다. 시집, 산문집, 여행기, 번역서로 변함없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류시화 시인의 신작. 이번 책의 주제는 ‘삶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이다.
표제작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외에 「비를 맞는 바보」 「축복을 셀 때 상처를 빼고 세지 말라」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 「불완전한 사람도 완벽한 장미를 선물할 수 있다」 「인생 만트라」 등 삶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인의 언어로 풀어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진실한 고백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좋아」, 어차피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하고 또 하고 끝까지 할 수밖에 없다는 「마법을 일으키는 비결」도 실었다.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자신은 문제보다 더 큰 존재라고. 인생의 굴곡마저 웃음과 깨달음으로 승화시키는 통찰이 엿보인다. 흔히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하지만, 어떤 붓은 쇠처럼 깊게 새기고 불처럼 마음의 불순물을 태워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을 사색하게 한다.
(이상 출판사 안내문에서 인용)
▣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 류시화 / 도서출판 더숲 / 2019년 3월 5일 발행.
◉ 내용 보기
[1] 새는 날아서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도 (20~25쪽)
한 여성이 남편을 잃고 딸과 함께 살았다. 딸은 성년이 되었지만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그녀 자신도 건강이 좋지 않아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소유한 물건들을 하나씩 팔아 생계를 이어 나갔다. 마침내는 가장 소중히 여기는, 남편 집안 대대로 물려 내려온 사파이어 보석 박힌 금목걸이마저 팔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성은 딸에게 목걸이를 주며 그 도시에서 가장 뛰어난 어느 보석상에게 가서 팔아 오라고 일렀다. 딸이 목걸이를 가져가 보여주자 그 보석상은 세밀히 감정한 후, 그것을 팔려는 이유를 물었다. 처녀가 어려운 가정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는 말했다.
“지금은 금값이 내려갔으니 팔지 않는 것이 좋다. 나중에 팔면 더 이익이다.”
그런 다음 보석상은 처녀에게 약간의 돈을 빌려주며 당분간 그 돈으로 생활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가능하면 내일부터 보석 가게에 출근해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생계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처녀는 보석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녀에게 맡겨진 임무는 보석 감정을 보조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뜻밖에도 그 일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빠른 속도로 일을 배워 얼마 안 가서 훌륭한 보석 감정가가 되었다. 그녀의 실력과 정직성이 소문나, 금이나 보석 감정이 필요한 사람들이 멀리서도 그녀를 찾아왔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보석상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하루는 보석상이 처녀에게 말했다.
“알다시피 지금 금값이 많이 올랐으니 어머니에게 말해서 그 사파이어 금목걸이를 가져오라. 지금이 그것으 팔 적기이다.”
그녀는 집으로 가서 어머니에게 목걸이를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보석상에게 가져가기 전에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그것을 감정했다. 그런데 그 금목걸이는 순금이 아니라 도금한 것이었다! 가운데에 박힌 사파이어 보석도 미세하게 균열이 간 저급한 등급에 불과했다.
이튿날 보석상에 왜 목걸이를 가져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처녀는 말했다.
“굳이 가져올 필요가 없었어요. 배운 대로 감정해 보니 전혀 값어치 없는 목걸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보석상에게, 목걸이의 품질을 처음부터 분명히 알았을 텐데 왜 진작에 말해 주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보석상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만약 내가 그때 말해 줬다면 내 말을 믿었겠느냐? 아마도 너와 네 어머니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해 내가 값을 덜 쳐주려 한다고 의심했을 것이다. 혹은 헛된 희망을 품고 더 좋은 값에 목걸이를 팔려고 보석상들을 돌아다니거나 절망해서 살아갈 의지를 잃었을 것이다. 내가 그때 진실을 말해 준다고 해서 우리가 무엇을 얻었겠는가? 아마도 네가 보석 감정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너는 보석에 대한 전문 지식을 익혔고, 나는 너의 신뢰를 얻었다.”
경험을 통해 스스로 가짜와 진짜를 알아보는 눈을 갖는 일은 어떤 조언보다 값지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의 판단력을 갖게 된 사람은 남을 의심하거나 절망하느라 삶을 낭비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그 길에 이르는 과정을 섣부른 충고나 설익은 지혜로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경험하지 않고 얻은 해답은 펼쳐져지 않는 날개와 같다. 삶의 문제는 삶으로 풀어야 한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니기 시작한 초기에 나는 네팔의 랑탕 지역에 오를 계획을 세웠다. 10월과 11월이 가장 좋은 시기이지만 장발의 여행자가 카트만두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었을 때는 1월이었다.
(중략)
삶은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경험은 우리 안의 불순물을 태워 버린다. 만약 그 친구가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면 랑탕 트레킹은 내 혼에 그토록 깊이 각인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때 그 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믿는다. 경험자들의 조언에 매달려 살아가려는 나를 직접 불확실성과 껴안게 하려고. 미지의 영역에 들어설 때 안내자가 아니라 눈앞의 실체와 만나게 하려고. 결국 삶은 답을 알려줄 것이므로. ‘새는 날아서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도 나는 법을 배운다’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2]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56~59쪽)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장차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에 친구가 모 언론사의 입사 지원서를 구해 왔다. 그는 함께 지원하자며 내게도 한 장 내밀었다. 잘하면 외국 특파원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친구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우리는 운이 좋으면 히말라야로 취재를 떠나 성자나 외계인과 인터뷰하는 특종을 터뜨릴 수 있을지 모른다고 농담을 하며 열심히 지원서를 작성했다. 그런 우스갯소리를 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잊기 위한 나름대로의 전략이었다.
필기시험은 열흘 뒤였다. 지금도 서울 북악터널 부근에 있는 국민대학교 앞을 지나갈 때면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시험장이 그곳이었다. 어떤 과목이든 자신 있다고 큰소리치면서 곰팡내 나는 월세방에서 밤새워 예상문제집을 풀었다. 드디어 시험일인 일요일, 설레는 가슴을 안고 아침 일찍 시험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학교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시험 장소를 가리키는 화살표 방향을 따라 강의실로 가니 텅 비어 있었다.
정문으로 다시 가서 물었더니 수위 아저씨가 이상한 눈으로 존레논처럼 생긴 장발의 청년을 바라보며, 시험은 “오늘이 아니라 어제.”였다고 했다. 날짜를 착각한 것이다! 망연자실 서 있다가 수위 아저씨의 눈초리가 하도 강렬해 학교 앞 골짜기에 있는 국밥집으로 가서 아침부터 혼자 술을 마셨다. 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천형을 받은 자신을 한탄하며.
인생이 첫 구간부터 막혔다는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날 정릉에서 종로까지 비틀거리며 걸어와 조계사 법당에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게 긴 머리로 가리고서 부처님께 절하는척 엎드려 잠이 들며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다른 인생을 살라는 하나의 계시라고. 세상 속에서 살되 세상에 소속되지는 말자고. 그렇게 시험 날짜를 착각해 외계인과의 인터뷰는 물거품이 되었지만 훗날 히말라야 여행은 농담처럼 현실이 되었다.
만약 우리가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다면, 전체 이야기를 안다면, 지금의 막힌 길이 언젠가는 선물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게 될까? 그것이 삶의 비밀이라는 것을.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지나간 길이 아니라 지금 다가오는 길이다.
한 남자가 큰 회사의 사환office boy직에 지원했다. 면접관이 그에게 사무실 바닥을 청소해 보라고 했다. 그의 청소하는 태도를 만족스럽게 지켜본 면접관이 말했다.
(중략)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삶의 여정에서 막힌 길은 하나의 계시이다. 길이 막히는 것은 내면에서 그 길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곤 한다. 삶이 때로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길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우리 가슴이 원하는 길이다. 파도는 그냥 치지 않는다. 어떤 파도는 축복이다. 머리로는 이 방식을 이해할 수 없으나 가슴은 안다.
[3] 우리가 찾는 것이 우리를 찾고 있다 (242~250쪽)
내 시를 영어와 폴란드어로 번역 중인 친구가 미르자 갈리브의 이행시를 편지 말미에 적어 보냈다. 19세기 델리에서 활동한 시인 갈리브에 대해 알고는 있었으나 그의 시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 시는 음악도 아니고 악기도 아니다
내 시는 나 자신이 부서지면서 내는 소리
짧은 시에 담긴 무언가가 가슴에 와닿았다. 시는 희망과 환희의 노래일 때도 있지만, 마음과 존재가 무너지고 부서질 때 내는 소리일 때도 있다. 그 소리가 크면 시를 읽은 우리의 마음도 크게 울린다. 갈리브는 인도 무굴제국의 마지막 시인으로, 주로 우르두어로 시를 써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우르두어 시인으로 꼽힌다.
그러고는 한참을 잊고 지냈는데, 여행 중에 산 엽서들을 정리하다가 아라베스크 풍의 장식 무늬가 있는 둥근 지붕 위로 비둘기들이 날아오르는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그 아래에 이행시가 적혀 있었다.
모든 것 속에 당신이 있으나
그 어떤 것도 당신과 같지 않네
역시 갈리브의 시였다. 터키석 박힌 대리석 건물이 인상적이어서 산 것인데 갈리브의 시를 그제야 읽게 되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면 눈에 보이는 사물과 풍경들이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게 한다. 흔들리는 꽃나무, 바람의 향기, 새벽에 하얗게 사라져 가는 별들도. 그러나 어떤 것도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채워 주지는 못한다. 사랑하는 이를 대신할 만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리라.
언제 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 엽서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명상 잡지 <샴발라선>을 넘기던 중 갈리브의 또 다른 이행시가 눈에 들어왔다.
새들을 허공에 날아가게 하라
너의 새는 돌아올 것이니
왜 붙잡으려고 하는가? 떠나는 것은 떠나게 하고, 끝나는 것은 끝이게 하라. 결국 너의 것이라면 언젠가는 네게로 돌아올 것이니. 고통은 너를 떠나는 것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떠나 보내지 못하는 네 마음에 있다. 놓아 버려야 할 것들을 계속 붙잡고 있는 마음에.
상류층 이슬람 전통에 따라 13세에 결혼한 갈리브는 서른 살까지 일곱 명의 자식을 얻었으나 그중 한 명도 유아기를 넘기지 못했다. 그 고통이 여러 편의 시에 담겨 있다. 편지를 많이 쓴 갈리브는 한 편지에서 자신이 갇힌 첫 번째 감옥은 인생이고, 두 번째 감옥은 결혼이라고 고백했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보내는 것처럼, 갈리브와 관련된 표식들이 그 이후에도 계속 내 앞에 나타났다. 어느 해 여름, 무더운 날씨 속에 올드델리의 미로 같은 골목을 걷고 있는데 한 중년 남자가 내게 “갈리브 하벨리?”라고 말하며 좁은 골목을 가리켜 보였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외국 여행자인 내가 그곳을 찾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골목으로 들어가자 ‘갈리브 하벨리’라고 적힌 오래된 건물 앞에서 걸인 행색을 한 노인이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노인은 적선을 청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귀 기울여 듣고 있었더니 지나가던 사람이 뜻을 알려 주었다.
손금을 보려고 하지 말라
손이 없는 자에게도 행운이 찾아올지니
갈리브 하벨리는 ‘갈리브의 집’이라는 뜻으로, 시인은 이 집에 살면서 시를 쓰고 그곳의 창문 있는 방에서 숨을 거뒀다. 벽마다 갈리브의 시가 걸려 있고, 유품과 두품한 자필 시집이 전시되어 있었다. 갈리브는 궁정시인으로 활동했으나 왕의 권위에 도전한 죄로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물방울의 기쁨은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것
고통은 그 한계를 넘을 때 스스로 치료제가 되네
올드델리를 여러 번 갔었는데도 갈리브 하벨리를 찾아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전에 알지 못했던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어떤 표식은 그렇게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것을 발견하고 놀란다.
우연이 중첩되면 필연이 된다. 내가 알고 지내는 시타르 연주자이자 수피 가수인 수자트 칸이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노래한 <천 개의 욕망>이라는 곡을 알려 주며 들어보라고 했다. 갈리브의 시를 노래로 부른 것이었다.
천 개의 욕망 모두 목숨을 걸 가치가 있으니
그중 많은 것을 이루었으나 난 여전히 더 많은 걸 원하네
오늘날 갈리브의 시는 전 세계 학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고, 많은 전통 가수들이 노래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당시는 그의 시와 행동을 이해하는 사람이 소수였으며, 늘 세상의 많은 오해와 비난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의 시에서 그것이 드러난다.
신이여, 사람들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다른 가슴을 주시든지, 아니면 차라리 내가 다른 방식으로 말하게 하소서
그 이후에도 나는 책에서, 대화에서, 게스트하우스 벽에서, 가수들(누스라트 파테 알리 칸과 자그지트 싱)의 노래에서 계속 갈리브의 시를 만났다. 콜카타에서 묵은 호텔은 우연히도 미르자 갈리브 스트리트에 있었다. 서른 살에 콜카타를 여행한 갈리브가 ‘천국 같은 도시’라고 찬사를 남긴 것을 기념해 지은 거리 이름이다.
그 거리 근처를 거닐다가 옥스퍼드 서점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갈리브의 시집이 눈에 띄었다.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마치 나에게 숨은 메시지를 전하는 화살표들처럼 계속해서 미르자 갈리브가 보였다. 내가 그것에 관심을 갖자 파동이 파동을 불러와 더 많은 표식들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 표식들은 마침내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신호가 되었다. 그래서 마침내 갈리브의 시들을 모아 한 권의 시집으로 번역하게 되었다. 나의 의도적인 결정이라기보다 숨어 있넌 표식들이 하나둘 나타나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나를 데려간 것이다.
(중략)
나날의 삶 속에서 표식을 발견하는 것이 영성이다.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표식들을 따라가면 언젠가는 해답에 이른다. 그리고 그 표식들은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음을 재확인해 준다.
예기치 않은 표식들은 우리를 가슴 띄게 만든다. 가슴이 그 번갯불 같은 표식들과 접촉하도록 허락할 때 새로운 운명이 열린다.
갈리브는 썼다.
‘번개는 나에게 쳤어야 한다.’